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메릴 스트립.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 맨 앞줄, 빨간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자주 화면에 잡혔다. <더 포스트>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메릴 스트립이다. 그날 그녀는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주인공은 아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 주최자 같은 느낌이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여성 영화인들을 위한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아래 포스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에 앞서 모든 여성 후보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서주길 부탁하며 “메릴, 당신이 먼저 일어서면 모두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메릴 스트립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가장 먼저 메릴 스트립에게 일어나주길 요청했다.

총 21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주연상 17회, 조연상 4회)에 올랐으며 3번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메릴 스트립은 명실공히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다.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더 포스트>에서 처음으로 메릴 스트립과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톰 행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메릴 스트립’ 영화에 나오고 싶었다.”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수상 소감 이후 메릴 스트립과 함께 포옹하는 (왼쪽부터) 샐리 호킨스, 시얼샤 로넌, 마고 로비.

많은 배우들이 메릴 스트립을 자신의 롤모델로 손꼽는다. 앤 헤서웨이, 나탈리 포트먼, 리즈 위더스푼, 제니퍼 로렌스 등이 대표적이다. 메릴 스트립은 지독하게 완벽한 연기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도 거침 없이 발언하는 오피니언 리더다. 지난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받으며 했던 연설은 너무나 유명하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오른 메릴 스트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자 정책과 장애인을 비하한 행동을 비판했다.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
“지금 이곳(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비난받고 있는 분야에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바로 외국인들과 미디어 종사자들이다. (중략) 
할리우드에서 외국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축출한다면 
아마도 예술이 아닌 풋볼이나 종합격투기 말고는 볼게 없을 
것이다. 그건 예술이 아니다.” 

그녀의 연설에 도널드 트럼프는 “과대평가된 여배우”라고 대응했다. 트럼프의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살펴보자.


젊은 시절 메릴 스트립.

메릴 스트립은 골든 글로브 연설에서 자신의 출신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뉴저지에서 태어나 공립학교를 다니며 성장했다”고 밝혔다. 메릴 스트립은 1949년 6월 22일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던 어머니 마리 울프 윌킨슨과 제약회사 경영진이던 아버지 해리 윌리엄 스트립 주니어의 딸로 태어났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학교 연극에 출연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치어리더로도 활동했다. 어린 시절 잠깐 성악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배우의 길을 택했다. 바사 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연극대학원에 진학했다.
 

<디어 헌터>
<크래이머 대 크레이머>
<아웃 오브 아프리카>
<소피의 선택>

메릴 스트립은 1977년 제인 폰다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주연의 <줄리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숨이 좀 가빠올 것이다. 메릴 스트립의 대표작들이 이어진다. 1978년 메릴 스트립은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에서 린다 역을 연기해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받는다. 이듬해 더스틴 호프먼과 함께 연기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다시 한번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982년에는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소피의 선택>으로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87년 <엉겅퀴 꽃>, 1988년 <어둠 속의 외침>, 1990년 <헐리웃 스토리>, 1995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8년 <원 트루 씽>, 1999년 <뮤직 오브 하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디어 헌터

감독 마이클 치미노

출연 로버트 드 니로

개봉 197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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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감독 로버트 벤튼

출연 더스틴 호프만

개봉 197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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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선택

감독 알란 파큘라

출연 메릴 스트립, 케빈 클라인

개봉 198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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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메릴 스트립이 오스카 후보에 오른 작품만 해도 이 정도다. 숨을 좀 골라야 할 듯하다. 2000년 이후에도 메릴 스트립은 꾸준히 활동했으며 눈에 띄는 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기억해야 할 영화를 몇 편 골라봤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많은 이들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기억할 것이다. 메릴 스트립은 패션지 ‘런웨이’의 악명 높은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를 연기했다.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괴팍한 은발의 미란다를 보며 그의 비서 앤드리아(앤 헤서웨이)처럼 치를 떨었던 관객들이라면 메릴 스트립이 얼마나 그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메릴 스트립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감독 데이빗 프랭클

출연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스탠리 투치

개봉 200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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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

<다우트> (2008)
<다우트>는 연기 대결의 영화다. 메릴 스트립은 브롱크스 지역, 성 니콜라스 교구의 교장 수녀 알로이시스를 연기했다. 그의 대결 상대는 급진적인 신부 플린이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연기했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비밀을 폭로하고 그를 교회에서 쫓아내려 한다.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인 만큼 두 배우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우트>에 출연한 에이미 아담스와 비올라 데이스 역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우트

감독 존 패트릭 샌리

출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개봉 200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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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철의 여인> (2011)
메릴 스트립은 실존 인물 연기에 탁월하다. <철의 여인>에서 그녀는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를 연기했다. 미국인인데 영국 억양을 구사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메릴 스트립은 실존 인물 연기의 기본인 억양을 완벽하게 재연해냈다. 이미 <소피의 선택>에서는 폴란드 억양, <어둠 속의 외침>에서는 호주 억양,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는 덴마크 억양을 자동판매기처럼 뽑아낸 적이 있다. <철의 여인>에서도 그녀는 대처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꼬고 옷깃을 여미는 소소한 동작마저 똑같이 보여줬다. 메릴 스트립의 이런 연기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다. 메릴 스트립은 <철의 여인>으로 세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철의 여인

감독 필리다 로이드

출연 메릴 스트립, 짐 브로드벤트

개봉 2011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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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포스트>

<더 포스트> (2017)
트럼프 시대에 바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에서 메릴 스트립은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역을 맡았다. 베트남 전쟁의 비밀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캐서린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당시의 편견을 통쾌하게 깨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팬타곤 페이퍼’의 보도를 결정하면서 캐서린은 이사회의 남자 임원들에게 일갈한다. “이곳은 내 아버지의 회사도, 내 남편의 회사도 아닌 내 회사입니다. 나에게 반대하는 이사는 필요없습니다.” 한 여성 발행인의 결단이 저널리즘의 역사를 바꾼 순간이다.

더 포스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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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에 대한 소소한 사실들

<줄리 & 줄리아>
줄리 & 줄리아

감독 노라 에프론

출연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아담스

개봉 200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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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요리연구가 줄리아 차일드(<줄리 & 줄리아>), 플루토늄 공장의 노조 활동가 캐런 실크우드(<실크우드>), 덴마크의 소설가 카렌 블릭센(<아웃 오브 아프리카>), 빈민가 아이들을 위한 바이올린 스쿨을 운영하는 로베르타 과스파리(<뮤직 오브 하트>), 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린디 체임벌린(<어둠 속의 외침>), ‘뉴요커’ 기자 수잔 올린(<어댑테이션>), 마거릿 대처(<철의 여인>) 등이 있다.
 
-배우로 성공하기 전에는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호텔의 웨이트리스로 일한 적도 있다. 20살 때 영국 런던에서 거리 공연을 하던 시절 돈을 벌지 못해서 공원에서 자게 됐을 때 앞에 보이던 리츠 호텔에 언제가 묵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다. 배우로 성공한 뒤 그 호텔에 묵었다.

<뮤직 오브 하트>
뮤직 오브 하트

감독 웨스 크레이븐

출연 메릴 스트립, 에이단 퀸, 글로리아 에스테판, 안젤라 바셋

개봉 1999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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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연기를 위해 지독하게 노력하기로 유명하다. <뮤직 오브 하트>에서 하루 6시간씩 9주간 바이올린 수업을 듣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2010년 국립 예술 메달을, 2014년에는 대통령 자유 훈장을 메릴 스트립에게 수여했다.

존 커제일(왼쪽)과 메릴 스트립

-<대부> 시리즈의 프레도 콜레오네로 유명한 배우 존 커제일과 연인 사이였다. 골수암 진단을 받은 후 약 3년간 뉴욕에서 함께 살았다. <디어 헌터>에 두 사람이 같이 출연했다. 존 커제일은 폐암까지 겹쳐 1978년 사망했다. 메릴 스트립은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조각가 돈 거머와 1978년 결혼한 뒤 1남 3녀를 두고 있다. 아들 헨리 울프 거머는 뮤지션으로, 첫째, 둘째 딸인 메이미 거머와 그레이스 거머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 루이사 거머는 모델이다.
 
-시고니 위버와 예일대 드라마 스쿨을 함께 다녔다. 메릴 스트립은 시고니 위버가 출연한 <에이리언>의 리플리 역으로 거론된 적이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입었던 모든 의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메릴 스트립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팬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메릴 스트립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마빈의 방>(1996)에 함께 출연한 적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