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맥도먼드

지난 35일(한국시각) 열린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는, <쓰리 빌보드>의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할 때였다. 온몸 가득 흥분을 드러낸 채 <쓰리 빌보드>의 감독 마틴 맥도나, 동생 도로시, 그리고 남편 조엘 코엔과 아들 페드로에게 감사를 전하던 맥도먼드는, 트로피를 내려놓고 여기에 계신 모든 부문의 여성 후보자들께서는 저와 함께 일어서주신다면 큰 영광일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부문에 오른 메릴 스트립, 샐리 호킨스, 시얼샤 로넌, 마고 로비 네 배우는 물론 제작자, 프로듀서, 감독, 작가, 촬영감독, 작곡가, 디자이너 등 여성 영화인들이 일어나 환희를 공유했다. 그리고 맥도먼드는 두 단어를 남기고 무대를 떠났다.
 

Inclusion Rider

 
인클루전 라이더. 우리말로 포용 특약’. 영어권 나라의 사람들에게조차(두 단어는 시상식이 있던 날 밤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낱말이었다) 낯설게 들리는 이 단어, 대체 무엇일까? ‘포용 특약은 인권/노동 변호사 칼파나 콜터걸과 배우 팬셴 콕스가 초안을 작성하고 미디어학자 스테이시 스미스가 전개시킨 개념이다. 할리우드 대작의 주연을 맡는 소위 A급 배우가 출연 계약 시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인물을 배우 및 제작진으로 구성할 수 있게끔 요구할 수 있는 조건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용어는 스테이시 스미스가 2016년 진행한 TED 강연 <할리우드 성차별 이면의 데이터>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TED 강연에서 스미스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 매해 높은 수익을 기록한 상위 100편의 영화 가운데서 한 단어의 대사라도 있는캐릭터를 모두 모아 성, 인종, 민족, 성소수자, 장애를 기준으로 분류해본 바, 눈에 띄는 차별적 징후를 발견했다고 밝힌다. 800편의 작품 가운데 대사가 있는 여성은 전체 1/3도 채 되지 않고, 이 비율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는 물론, 저 옛날 1946년부터 1955년까지의 데이터와 견주어봐도 변함이 없었다고 꼬집는다. 2015년의 기준으로 보면 상위 100편 가운데 흑인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48편에서, 아시아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 70편에서, 장애가 있는 여성이 84편에서, 성소수자 여성이 93편에서 단 한 명도 대사 있는 캐릭터로 등장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그들은 엄연히 삭제된 것이고 이를 보이지 않는 전염병이라고 일갈한다.

800편을 연출한 886명의 감독들 중 여성은 4.1%에 불과하고, 아프리카인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3, 아시아인은 단 한 명이기에 이를 해결할 길이 여전히 묘연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스테이시 스미스는 이런 문제를 타개할 방법들 중 하나로 포용 특약을 들며, 이것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명기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에 사는 여성들을 청중으로 초대해 진행한 강연에서 이렇게 제시된 개념은,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목소리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 영화인들이 다함께 기립박수를 보낸 바로 그 순간에.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자 넷. (왼쪽부터) 샐리 호킨스, 시얼샤 로넌, 마고 로비, 메릴 스트립.


맥도먼드의 포용 특약에 대한 즉각적인 지지가 잇따랐다. 재작년 영화 <>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여성 히어로 솔로무비 <캡틴 마블>의 주인공이 된 브리 라슨,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사실을 일찌감치 폭로한 애슐리 쥬드, 여성 캐릭터 위주 영화 가운데 눈에 띄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피치 퍼펙트시리즈의 주연/제작자 엘리자베스 뱅크스, 1970년대부터 여성 인권에 힘써온 전 테니스 챔피언 빌리 진 킹 등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제는 우리 관객들이 꾸준한 관심과 올바른 소비로써 '새로운 영화'에 힘을 보탤 차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