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코미디 전문 감독이 〈렛 미 인〉을 만들었다고? 재개봉한 〈렛 미 인〉 비하인드 스토리

씨네플레이
〈렛 미 인〉
〈렛 미 인〉

 

이와이 슌지가 영향을 준 영화는 그렇게 많은데, 그에게 영향을 준 작품을 꼽는 건 쉽지 않다. 뱀파이어물만 해도 그렇다. 선혈이 낭자한 피의 세계를 묘사하면서도 한 점 티 없이 맑고 정갈한 뱀파이어물 <뱀파이어>(2011)를 보면서, 역시 이와이 슌지의 공포지 싶었다. 그럼에도 이 경우엔 분명 그가 스웨덴 영화 <렛 미 인>(2008)에서 조금은 빚을 지고 있겠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세계 영화사에 뒤늦게 등장해 이렇게 새로운 고전이 되는 영화들이 있다. <렛 미 인>이 그렇다. 검은 머리에 또렷한 눈망울을 지닌 12살 뱀파이어 소녀의 운명은 금발의 머리에 나약한 외모를 지닌 또래의 외톨이, 왕따 소년 오스칼과 만남 앞에서 흔들린다. 뱀파이어 장르의 섹슈얼한 키워드도, 공포를 극대화할 현란한 CGI도 없는 뱀파이어물. 모든 뱀파이어 장르의 모든 규칙을 무시하지만 결국 뱀파이어의 속성을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성장 멜로. <렛 미 인>은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이전까지의 모든 뱀파이어 장르물 안에서 새로운 원형으로 등극했다. 마침 1월 15일 재개봉한 <렛 미 인>의 제작 비하인드를 풀어본다. 아, 맷 리브스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과는 다른 영화니 구별해서 보시길.


〈렛 미 인〉
〈렛 미 인〉
〈렛 미 인〉
〈렛 미 인〉

 

뱀파이어 룰 넘버 원. ‘초대받지 않으면 결코 인간의 방에 들어올 수 없다.’ <렛 미 인>(Let Me In)의 핵심 개념은 거기서 출발한다. 영화는 독일, 영국 등의 유럽 12개국에 번역된 스웨덴 작가 욘 A. 린드크비스트의 베스트셀러 「Let the Right One In」을 각색한 작품이다(영화도 영문제목은 동일하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이 처음 원작을 접한 건 친구의 소개로부터. 자신 역시 영화 속 오스칼과 같이 왕따를 당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자신이 느낀 분노의 감정을 바탕으로 원작의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알프레드슨 이전에도 판권 허가를 얻고자 원작자의 집을 찾은 사람만 해도 무려 40여 명이나 됐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제안은 없었다. 토마스와 욘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특히 린드크비스트는 감독의 전작을 마음에 들어했고 흔쾌히 영화화를 허락한다. 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판타스틱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렛 미 인>은 웃음기를 거둔 뱀파이어 영화이자 성장영화, 멜로드라마, 그리고 블랙코미디까지 온갖 장르가 뒤섞인 독특한 영화로 완성됐다. 영화가 공개되자마자 알프레드슨 감독은 ‘스웨덴의 기예르모 델 토로’에 비유되며 가장 주목할 만한한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 출간된 원작소설 「렛 미 인」
국내 출간된 원작소설 「렛 미 인」
〈렛 미 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렛 미 인〉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단, 20년간 코미디를 만들어온 감독에게 호러 장르는 낯선 도전이었다. 특히 “뱀파이어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한다는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뱀파이어의 신화에는 무지한 사람이었다. 다행히 원작자 린드크비스트가 각색자로 함께 하며 영화의 완성에 참여했다. 알프레드슨 감독은 ‘마치 수업을 받는 학생처럼’ 장르적인 부분을 원작자에게 배우고 반영해 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뱀파이어를 모른다고 뱀파이어 장르에 도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감독은 말한다. “당신이 개에 관한 코미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전 세계에 있는 개에 관한 코미디를 다 보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그보단 작품에 관해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일들을 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매달리기보다 비슷한 선례들을 찾는 것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렛 미 인〉
〈렛 미 인〉

 

첫 공포영화 도전이자 자신만만한 연출론으로 <렛 미 인>은 “한 세기 동안 나온 공포영화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뱀파이어 장르물의 역사를 새로 쓴다. 흥미로운 건 <렛 미 인>의 장르적 성취가 장르의 공식을 완전히 빗겨나간 새로움에 있었다는 점이다. 먼저 전통적 뱀파이어물의 원칙으로 보면 무시에 가깝다. 뱀파이어 하면 으레 등장하는 박쥐도, 뱀파이어를 처단할 나무 말뚝도 마늘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뱀파이어가 연상되는 그래픽적인 사항을 가능한 한 제거한다. 또한 뱀파이어 장르의 트렌드 역시 이 영화의 관심사와 거리가 멀었다. <언더월드> 이후 뱀파이어 장르의 영화는 이미 블록버스터 액션 장르와 만나 화려한 액션, 빠른 편집, CGI로 진화되었지만, <렛 미 인>의 세계는 느리고 조용하다.

 

〈렛 미 인〉
〈렛 미 인〉

 

 

물론 르네 클레망의 <금지된 장난>(1952) 같은 이야기지만, 이엘리가 사람의 피를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는 뱀파이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녀에게 흡혈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는 데는 어떤 감정의 변화가 오더라도 변함이 없다. 여기서 영화는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1955) 같은 본색을 드러낸다. 어둡고 음습한 뱀파이어 호러 장르의 습성은 이엘리에게 감염당한 마을 여자가 밝은 태양을 두려워하고, 뱀파이어를 만난 고양이의 털이 쭈뼛쭈뼛 서는 모습, 피가 아닌 사탕을 먹은 이엘리가 토한다거나 이엘리가 관을 연상시키는 욕조에서 수면을 취하는 장면, 오스칼의 피에 흥분하는 이엘리의 본능, 그리고 이엘리에게서 나는 악취는 <렛 미 인>을 장르의 컨벤션으로 영입시키는 요소들이다.

 

〈렛 미 인〉
〈렛 미 인〉

 

1980년대 초반, 스톡홀름의 북부. 어둠과 추위가 깔린 스웨덴의 공기를 불러온 건 네덜란드 출신의 촬영감독 호이트 반 호이테마였다. 정글짐, 얼어붙은 호수, 운동장의 모든 곳이 오스칼과 이엘리가 존재하는 실재의 공간인 것처럼, 더불어 그들의 감정이 오가던 초자연적이고 마술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가령, 스프레이-라이트(물안개 같은 빛)로 만들어 촬영 바로 직전에 뿌리는 것 같은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렛 미 인> 특유의 감성이 깃든 분위기를 창조해 낸다.

 

더불어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은 영화의 가장 큰 이미지 지침이었다. 영화의 전체 바탕은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의 시스틴 성당에서 표현된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빛을 닮아 있다. 영화의 기괴한 톤은 독일 출신의 작가 한스 홀바인의 그림 ‘에드워드 4세의 어린 시절’을 확인해 보면 좋다. 그림 속 왕자는 프레임 안에 존재하지만 바깥을 바라본다. ‘이상하고도 소름 끼치는’ 그림 속 왕자의 시선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프레임 바깥을 그려 담으려는 <렛 미 인>의 카메라 시선과 정확히 닮아 있다.

 

 

〈렛 미 인〉
〈렛 미 인〉

 

스웨덴의 적막한 겨울은 사운드로도 완성된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두꺼운 털모자로 귀를 덮은 것 같은’ 먹먹함과 가깝다. 어쩌면 별스럽지 않을 수 있는 그 지역의 침묵이 공포 장르와 만나면서 일상의 소리는 판타지로 치환된다. 일단 배경의 소리를 차단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욕조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같은 특정 소리를 강화한다. 이 원리로 소리를 주조한 결과 관객은 주인공의 심장 소리와 눈꺼풀을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렛 미 인〉
〈렛 미 인〉

 

사운드 모두 아날로그로 만들어진 제작 비하인드가 흥미롭다. 뱀파이어의 공격신에서 소리는 개구리와 다른 동물들, 배우가 내는 숨소리를 혼합하여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이엘리가 인간의 목을 깨무는 소리는 배우가 소시지를 베어먹는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스웨덴의 록그룹 ‘록시트’의 멤버인 페르가 쓴 단 한 곡을 제외하고 영화 속 모든 음악은 ‘워터폰’이라는 악기로 연주됐다. 아날로그 방식을 통해 평소 소음에 묻혀 있던 미세한 소리들이 살아나고, 그 소리들이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렛 미 인〉 이엘리
〈렛 미 인〉 이엘리
〈렛 미 인〉 오스칼
〈렛 미 인〉 오스칼

 

오스칼과 이엘리를 연기한 어린 배우들의 독특한 이미지와 훌륭한 연기야말로 <렛미인>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스웨덴은 전문 아역 배우가 거의 없는 상황. 오스칼을 연기한 배우 카레 헤데브란트와 이엘리 역의 리나 레안데르손을 찾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전문 배우가 아닌, 그것도 어린아이들에게서 연기를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감독은 대본을 보여주는 대신, 직접 큰 소리로 대본을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상황을 알려주는 방법을 택했다. 감독은 두 배우에게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계속, 이 상황이 어떤 건지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조각조각 완성한 장면들을 편집에서 잘 다듬어서 이어 붙이는 수고가 들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그 이음새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미세한 아이들의 동화 같은 감정의 교류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