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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컬트의 원조, 새 옷을 입다! 〈퇴마록〉 시사 후기

성찬얼기자
〈퇴마록〉 포스터
〈퇴마록〉 포스터


한국 오컬트가 귀하다는 말에, 원조가 돌아왔다. 2월 21일 개봉하는 <퇴마록>은 90년대 한국사회를 흔든 'PC통신 문학' 히트작 계보에서 한국형 오컬트 장르를 연 「퇴마록」(이우혁 작)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당시 가톨릭 엑소시즘, 동양의 도술, 세계 곳곳의 신화를 아우르며 독자적인 세계관을 선보인 「퇴마록」은 신드롬적인 인기에도 1998년 실사영화의 실패 때문인지, 좀처럼 타매체로 옮겨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원작자 이우혁이 직접 참여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렸고, 2020년 발표 이후 5년 만에 마침내 대중을 만나게 됐다. 한국형 오컬트가 한국산 애니메이션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원작을 읽지 못한 ‘퇴알못’이지만 그 궁금함을 충족하고자 시사회장으로 향했다. 



퇴알못도 ‘츄라이 츄라이’ 가능한 퇴마록: 입문편

원작 「퇴마록」이 (‘국내편’, ‘세계편’, ‘혼세편’에 이은) ‘말세편’으로 완결난 지 20년이 넘었다. 필자처럼 ‘퇴마록’이란 이름이나 기본적인 스토리는 알아도 원작을 완독하지 못했다면 애니메이션에 도전했다가 미궁에 빠질까 겁부터 날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퇴마록>은 원작의 초반부, 퇴마사들이 인연을 맺게 된 사건을 다룬다. 영제에 붙은 ‘The Beginning’이 의미하듯 영화는 「퇴마록」의 첫 파트 ‘국내편’의 첫 사건 ‘하늘이 불타는 날’을 영화화한 것이다.
 

〈퇴마록〉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박 신부, 장준후, 이현암, 현승희
〈퇴마록〉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박 신부, 장준후, 이현암, 현승희


혈혈단신으로 엑소시스트의 길을 걷는 박윤규 신부는 의대 동기였던 해동밀교의 장 호법에게 한 가지 부탁을 받는다. 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며 밀교의 법도를 벗어난 해동밀교의 서 교주를 다섯 호법들이 막을 동안, 서 교주의 양아들 장준후를 잠시 보호해달라는 것. 반면 수마(水魔)에게 복수하기 위해 기공을 연마한 이현암은 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후 그의 조언을 따라 해동밀교로 향한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박 신부가 장 호법을 만나는 장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박 신부가 장 호법을 만나는 장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해동밀교로 향하는 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 박신부의 과거, 이현암의 태생적 한계, 장준후의 천재성 등이 묘사되면서 동시에 서교주가 성취하려는 ‘힘’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전개 자체는 어느 정도 전형적인데, 대신 파트별로 장르적 색채를 다양하게 가미해 그 전형성을 타파한다. 예를 들어 박 신부가 액션으로 영화를 열고 작품의 세계관과 목표를 제시하는 드라마로 작동한다면, 현암의 파트는 보다 오컬트라는 장르에 걸맞은 공포 유발로 작품의 흥미를 유발하는 식이다.


음산한 기운을 담은 스타일라이즈드 3D 애니메이션

 

〈퇴마록〉
〈퇴마록〉


이번 <퇴마록>은 로커스 스튜디오에서 제작했지만, 기존 제작 작품과는 비주얼에서 차이가 크다. 대표작 <유미의 세포들>(극장판 애니메이션과 실사 드라마 애니메이션 파트)을 비롯한 전작들은 매끈한 텍스쳐로 깔끔한 느낌을 주는 (흔히 디즈니 스타일이라 하는) 비주얼이었다면, <퇴마록>은 최근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성공으로 부쩍 많이 보이는 하이브리드 스타일, 이른바 스타일라이즈드 3D 애니메이션을 선택해 세계관의 음산한 기운을 한껏 담는다.

 

〈퇴마록〉
〈퇴마록〉

〈퇴마록〉
〈퇴마록〉


이같은 비주얼은 두 가지 지점에서 영화에 힘을 싣는다. 먼저 귀신, 유령, 악마 등 비현실적 존재가 보다 영화 속 현실에 정확히 안착할 수 있는 안정감을 준다. 기존처럼 매끈한 텍스쳐의 화풍이라면, 이같은 존재들의 음산한 아우라나 형상을 표현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자칫 영화 속 세계와 부합해 이질감을 줬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같은 화풍으로 다소 과장된 인물들의 체구를 조화롭게 아우르고 각 무공·퇴마술을 박진감 넘치게 담아내 액션 장면의 퀄리티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런 스타일의 변화가 「퇴마록」의 세계관을 어떤 토대 위에 풀어낼지 제작진의 고심이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더 내놔… 아니 다 내놔!! 빨리!!
 

〈퇴마록〉
〈퇴마록〉


실망스러운 점이 아주 없진 않은데, 대부분은 아직 1막에 해당하는 이야기만 다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영화는 여타 영화뿐만 아니라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다소 짧은 편. 그래서 인물들의 성격이 다소 급변하다 싶은 부분이 있는데, 특히 이현암이 그렇다. 극후반 현암은 서교주의 조롱에 비속어까지 쓰며 ‘급발진’을 하는데, 캐릭터의 다혈질적인 성격이라고 인식은 되지만 초중반의 모습과 상이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아마도 심리 묘사를 좀 더 세심하게 할 수 있는 문학과의 차이와 군더더기를 덜어내 신규 팬층을 잡으려는 영화의 방향성에서 이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이 지점에서 마무리짓는다는 것이다. 영어 부제로 ‘The Beginning’을 썼고, 이번 <퇴마록>에서 원작에 나오는 여러 떡밥을 던져둔 것을 보면 이후 이야기까지 담아낼 프랜차이즈로 기획한 듯하다. 다만 언제 나올지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으니 실관객으로서 벌써 조바심이 난다.

 

〈퇴마록〉
〈퇴마록〉


그렇기에 이번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성공적인 이식이다 싶다. 동서양을 혼합한 세계를 괴리감 없이 담아내는 것에 성공했고, 오컬트와 신화를 더한 초능력 배틀물이란 「퇴마록」의 특징도 기막히게 담아냈으니까. 다른 것보다 방대한 시리즈의 도입부를 훌륭히 담아내 ‘퇴알못’들을 입덕의 길로 인도할 만한 물건이니 충분하지 않은가.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원작 책을 찾아본 필자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