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실험극 작가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은퇴 후에는 부산 지역 신진 영화인들을 후원한 김미라 전 동의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서울 출신인 김 교수는 숙명여고와 한국외대를 졸업한 후, 1980년부터 2014년까지 동의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대학 시절 접한 현대 전위연극의 선구자 페르난도 아라발의 작품에서 시작됐다. 1981년부터 약 10년에 걸쳐 아라발의 희곡 전집을 번역, 출판하는 대업을 완수했다.
스페인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아라발은 '공황 연극'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공포와 불안을 독특한 무대 언어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퇴직 후 김 교수는 '김라 감독'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사비를 들여 문화공간 '공간나라'를 운영하며 단편 영화 제작 지원에 전념했다. 2016년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와 2021년 <꿋꿋이 서있다보면>을 직접 연출했으며, 2017년에는 '작은영화공작소'를 설립해 신진 영화인들을 지원했다. 또한 같은 해부터 매월 '작은영화영화제'를 개최하며 젊은 영화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힘썼다.
동료 영화인 박배일 감독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인의 마지막 배려를 전했다. 그는 "선생님께서 투병 사실을 알리면 영화인들이 부담스러워할 것을 우려해 아들에게만 알리셨다"며, "우리는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서로를 지지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