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블 영화, 정확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를 수식하는 단어는 근 몇 년 동안 변화무쌍하게 바뀌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MCU는 ‘믿보’가 됐다가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가 됐다가 이제는 아예 ‘그럼 그렇지’가 되고 말았다. 유니버스 프랜차이즈의 빛과 어둠을 모두 보여준 MCU는 등 돌린 팬들을 어떻게든 다시 잡고자 한차례 휴지기를 갖고 작품들을 갈고닦았다. 그렇게 <데드풀과 울버린> 이후 8개월 만에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2025년 MCU 영화의 1번 타자로 나섰다.
공교롭게도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MCU의 건재함을 증명해야 하듯 캡틴 아메리카 또한 증명해야만 하는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마침내 은퇴한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에게 방패를 물려받은 샘 윌슨(안소니 마키)은 <팔콘과 윈터 솔져> 속 일련의 사건을 겪고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임명됐다. 하지만 스티브에게 물려받은 방패가 있어도, 샘은 슈퍼 솔져 혈청을 맞지 않은 일반인이자 그 고결한 성품을 곁에선 본 장본인으로서 스스로조차 그 자격을 의심하며 증명하고자 한다. 과연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와 그의 첫 영화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있을까. 시사회로 먼저 만난 소감을 전한다.
왜 샘 윌슨과 썬더볼트 로스여야 했는가, 그 대답

샘 윌슨의 캡틴 아메리카가 주인공인 첫 영화인 만큼 이번 영화는 그의 캐릭터와 능력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드라마 <팔콘과 윈터 솔져>에서 부단한 노력 끝에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샘 윌슨은 군 복무 시절과 팔콘 시절 상징인 날개와 방패를 모두 활용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활약한다.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할 수 있는 신체적 한계는 와칸다로부터 제공받은 슈트로 보완한다.
그렇게 큰 사건 하나를 해결한 윌슨이 새로운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 정신적 지주이자 잊힌 슈퍼 솔져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와 함께 백악관에 초청된다. 새로운 광물 아다만티움을 전 세계와 공유할 것임을 밝히는 대통령 썬더볼트 로스(해리슨 포드), 이사야가 갑자기 그를 공격해 체포되면서 샘은 이사야의 무고함을 증명하고자 그 배후를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샘은 때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끝끝내 일어나 대응하며 결코 무너지지 않는 ‘캡틴 아메리카’의 이름값을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증명이란 테마를 내세운다. 대통령이 된 썬더볼트 로스는 MCU에서 이미 수차례 실수를 자초했던 인물이다. ‘헐크’ 브루스 배너를 잡겠다고 어보미네이션이란 괴물을 탄생시켰고(<인크레더블 헐크>), 소코비아 협정을 제시해 어벤져스를 와해시켰다(<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됐으니 각종 비난이 따라오는 건 당연지사. 로스는 어떻게든 비난을 타파하고 브루스 배너를 쫓으면서 사이가 틀어진 딸 베티(리브 타일러)와의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 그의 행적에 휘말렸었던 샘 윌슨도 ‘캡틴 아메리카’에 걸맞은 사람임을 입증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 마음만큼은 십분 이해하게 된다. 증명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 두 사람의 대비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요소로 관객의 공감을 불러올 것이다.
뚜렷한 장점, 스케일 큰 액션과 시대에 알맞은 메시지

위와 같은 인물 구성과 스토리에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CG 퀄리티가 좋아 스케일이 큰 액션 장면일수록 진가를 발휘한다. MCU는 한동안 최악의 VFX 퀄리티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몇몇 영화 속 장면들은 재연 드라마의 로고까지 합성돼 놀림받기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선 걱정을 놓아도 좋다. 활강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줄 정도며, 예고편에서 공개한 (썬더볼트 로스의) 레드 헐크는 과거 헐크 못지않은 파괴력을 과시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MCU 내에서도 편차가 심했던 액션의 쾌감만큼은 분명 보장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에 알맞은 메시지 또한 장점이다. 샘 윌슨이 스티브 로저스를 가까이서 지켜봤듯, 안소니 마키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일까. 영화는 시리즈 이전 영화들의 톤을 이어간다. 언제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한 개인이 불굴의 의지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조망한다. 한편으로 과거 고결한 영웅상과 같았던 스티브 로저스와 달리 주변 인물과의 관계로 점점 성장하는 샘 윌슨만의 매력도 담아낸다. 또 세상을 떠난 윌리엄 허트를 이어 출연한 해리슨 포드의 압도적인 존재감도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한다.
아쉬운 단점, 대인 액션의 퀄리티와 다소 심심한 전개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다. 만족감을 주는 스케일 큰 액션 장면과 별개로 대인 액션은 조금 아쉽다는 느낌이 강하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캡틴 아메리카 vs 윈터 솔져’ ‘블랙 팬서 vs 윈터 솔져’ 등 전작들이 훌륭한 대인 액션을 남겼던 것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상대적으로 속도감과 타격감이 다소 아쉽다. 또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처럼 정치적 스릴러로 회귀한 시도는 박수쳐주고 싶지만 전반적인 스토리가 전형적이라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걱정스럽다(그래서인지 썬더볼트 로스의 개인사가 더 돋보이기도).

또 장점이자 단점인 부분은 이 영화가 결국 MCU 영화라는 점이다. MCU는 그동안 나온 작품을 토대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이면서 썬더볼트 로스가 처음 등장한 <인크레더블 헐크>도 바탕에 두고 있다. 문제는 이 <인크레더블 헐크>가 (MCU란 단어조차 없었던 시절에 개봉한) MCU 두 번째 작품이었으며 MCU의 유일한 헐크 영화라서 팬들 사이에서도 안 본 사람이 꽤 있다. 작중 관련 설명을 해주고는 있지만 근래 MCU에서 꾸준히 말이 나왔던 ‘진입장벽’이 또 한 번 문제시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기도.

그럼에도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한숨 돌리기를 선택한 MCU가 정답이었음을 보여준다. 최근 MCU를 쭉 둘러볼 때(특출난 두어 작품을 빼면) ‘그래도 이건 좋았다’며 장점을 찾아야 하는 작품이 많았다면, 이번 영화는 기본적인 완성도가 충분해 오히려 아쉬운 점이 보일 정도니까.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인크레더블 헐크> 관람 여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장점인 대인 액션의 아쉬움 등이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랜만에 히어로장르 본연의 맛으로 돌아온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MCU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것은 명백해보인다. 쿠키 영상은 1개로 모든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상영된다. 2월 1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