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스턴스>가 개봉 78일 만에 52만 관객을 돌파했다(2025년 2월 26일 기준). 자신이 담당하던 방송에서 물러나게 된 왕년의 스타가 더 젊고 더 나은 나로 만들어준다는 금단의 약 '서브스턴스'에 손을 댄다는 이 영화는 300개의 스크린, 청소년관람불가라는 핸디캡에도 입소문을 타 장기상영에 성공했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알아본다는 사례에 이름을 올린 <서브스턴스>. 이번 52만 관객 돌파를 하며 어떤 영화들의 흥행 기록을 넘어섰는지,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넘어설 수 있을지 간단하게 짚어본다.
넘었다!
<여배우들> <판의 미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세 얼간이> <그린 북> 등등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역대 박스오피스에서 ‘독립·예술영화’ 기준으로 <서브스턴스>는 45위에 해당한다. 아래로는 꽤 많은 영화들이 존재하는데, 바로 아래는 51만 관객을 동원한 <여배우들>이다. 2009년 개봉한 영화는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이란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출연진 라인업과 별개로 스토리라인만 있고 나머지는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 간 저예산 영화다. 여섯 배우들의 기싸움이 영화를 가득 채웠다. 그 아래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대표작으로 프랑코 정권 치하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지하세계의 공주라는 계시를 받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현실과 판타지의 괴리감을 담아내며 기예르모 델 토로식 기이한 판타지의 정점을 보여준다. 최초 개봉 때 49만 관객을 모았는데, 이후 재개봉 관객 수까지 합치면 총 53만 명으로 <서브스턴스>가 넘었으면서 아직 넘지 못한 작품이다.


그 아래는 2017년 개봉한 일본 최루성 멜로의 정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있다. 독특한 제목으로 한껏 눈길을 끈 이 영화는 한 소년이 우연히 일기장을 주우면서 가까워진, 불치병에 걸린 사쿠라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다룬다(소년이라 칭하는 이유는 극중 이름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 일본의 청춘스타라 할 수 있는 키타무라 타쿠미와 하마베 미나미의 시너지, 정해진 끝을 알면서도 서로를 아낄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관계에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총 46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 다음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도영화 <세 얼간이>. 인도 최고의 공과대학에서 만난 란초, 파르한, 라주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코미디와 뮤지컬, 감동 서사를 오간다. 한국에 정식 개봉하는 인도영화가 정말 드문데, 특히 인터넷에서 화제가 돼 개봉까지 온 이른바 '관객이 소환한' 영화란 점에서 더 특별하다. 3시간에 달하는 긴 영화임에도 개봉 당시 45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이외에도 <서브스턴스>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45만), <그린 북>(44만), <울지 마, 톤즈>(44만), <러빙 빈센트>(43만) 등 작지만 강하다고 소문난 영화를 모조리 제쳤다. 이 영화들 가장 눈에 띄는 건 상영횟수 8800번으로 43만 명을 동원한 <인어 공주>. 다른 40만대 관객 동원에 성공한 작품들은 대개 1~2만 상영횟수인 것과 비교된다. 전도연의 1인 2역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로, 박해일, 고두심 등이 출연했다.


넘을 수 있다!
<이터널 선샤인> <남은 인생 10년> <괴물> <싱 스트리트> 등
<서브스턴스>가 앞으로 ‘제낄’ 수 있는 영화는 뭐가 있을까. 아마도 순위 바로 위에 있는 영화의 관객 수는 넘을 것으로 보인다. 딱 1만 명 남짓 차이 나는, 53만 명을 동원한 영화는 <이태원 살인사건>이다. 2009년 개봉한 영화로 1997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눈길을 끌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사건이 재조명 받아 재수사가 이어지는 등 사회적 반향도 일으켰다.


그 위로는 54만 관객을 모은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와 한국인이 사랑하는 멜로영화로 꼽히는 <이터널 선샤인>이 있다. <이터널 선샤인>은 조엘이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소거하는 시술을 받는 도중 일어나는 일을 그리는데, 미셸 공드리 감독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한껏 묻어나는 연출이 일품이다.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백문이 불여일견. 지금까지 재개봉만 세 차례하여 총 55만 관객을 모았다. 어떤 면에선 최초 개봉만으로 52만을 넘은 <서브스턴스>가 판정승이라 볼 수 있다.


그 위로 56만의 벽은 최근 가장 호평받은 일본영화 두 편이 지키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소년과 그의 엄마,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으로 구성한다. 현재 일본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명작가로 인정받는 사카모토 유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합심해 완성한 영화로, 2023년 11월 개봉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중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다른 하나는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남은 인생 10년>. 코사카 루카의 동명 소설(작가 본인이 투병 중이었기에 자전적 에세이 성격도 있다)을 바탕으로 10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여성과 인생을 살아갈 여력을 잃은 남성이 서로에게 빠져들어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23년 첫 개봉 당시 13만에서 그쳤으나 2024년 재개봉 때 뒤늦게 소문을 들은 관객들이 몰려들어 총 56만 관객을 돌파했다. 재밌게도 두 영화 모두 개봉 후 관객 반응과 흥행 성적이 좋아 주연 배우들(쿠로카와 소야-히이라기 히나타, 사카구치 켄타로-고마츠 나나)이 내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더 위를 노린다면 57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싱 스트리트>가 있다. <원스> <비긴 어게인>을 만든 존 카니 감독의 영화로,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첫사랑의 관심을 끌고자 밴드를 만들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80년대를 흔든 명곡들과 이에 못지않게 중독성 있는 오리지널 곡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만일 이 <서브스턴스>가 57만의 벽을 넘는다면, 곧바로 60만 관객을 동원한 <피에타>에 도전하게 된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30년 만에 만난 어머니와 아들을 그리며 2012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사망한 김기덕 감독의 과거 논란 때문에 황금사자상의 영예에도 묻힌 영화이기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 60만 동원의 수문장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