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레이디 버드>의 오랜 가제였다. 그레타 거윅은 주인공의 이름 '크리스틴'을 자기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레이디 버드 아니, 크리스틴과 엄마 매리언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분노의 포도> 오디오북을 들으며 같이 눈물을 흘리다가 1분도 안 돼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싸우는 모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성장하는 사이, 부모가 준 이름까지 지워가며 가족을 부정하던 크리스틴은 엄마의 곁으로 되돌아온다. 마주하는 대부분 서로에게 아쉬운 점을 들춰내 기어코 상처를 주고받고 말지만, 어떤 날은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마음껏 울 수 있는 품을 내어주기도 한다. 엄마와 딸이니까, 이런 회귀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 당연한 듯한 만남이 자연스러운 우연이 아닌, 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된 의지였음을 서서히 알게 된다. 철저히 크리스틴의 시점에서만 펼쳐질 것 같았던 영화에서 불현 듯 엄마가 ‘홀로’ 운전하며 새크라멘토 이곳저곳을 바라보는 신을, 성인이 된 크리스틴이 거의 똑같이 반복하는 순간 밀려드는 감동.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는 가을, 겨울, 봄을 같이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