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장우진, 임태규, 이학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이하 JCP)에 선정된 세 편의 한국영화 감독들이 주제와 형식이 확연하게 다른 결과물을 들고 전주를 찾았다. 장우진 감독은 1988년과 2018년의 시간을 기묘하게 연결시킨 <겨울밤에>로 독특한 형식에 도전했다. 임태규 감독은 <파도치는 밤>에서 국가 폭력이라는 보다 구체화된 소재를 이야기한다.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탈북 소재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어온 이학준 감독은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굿 비즈니스>에서 탈북에 얽힌 돈의 문제를 조명한다. 색다른 시각과 안정적인 연출력을 겸비한 세 감독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겨울밤에>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겨울밤에> 장우진 감독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장우진 감독이 말하는 <겨울밤에>의 연출 의도다. 연인 시절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던 장소인 춘천 청평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중년의 부부를 조명하는 이 작품은 시공간의 상대성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라고 할 만하다. 하나의 프레임 속에 과거와 현재가 녹아들고, 같은 시공간이 각각의 인물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의 머릿속에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다양한 시간대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환상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할 것인지에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극중 인물의 동선, 카메라의 움직임과 프레이밍은 철저히 그러한 고민에 맞춰 디자인했다.”
<겨울밤에>를 통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걸 찾아나서는 여행”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장우진 감독은 소를 찾아나선 동자의 여정을 조명한 선화(禪畵), <심우도>를 주요 레퍼런스로 삼았다. 영화의 주인공 은주(서영화)가 끊임없이 핸드폰을 찾는 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30대 남성 감독으로서 중년의 커플을 다룬 영화를 만들며”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한국의 결혼 제도 안에서 여성들이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간다는 점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장우진 감독은 말한다. 스스로 “잿빛 청춘의 사실주의 독립영화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인물과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을 예정이다. 

겨울밤에

감독 장우진

출연

개봉 201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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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치는 땅>

세대에 걸친 아픔을 직시하다 
<파도치는 땅> 임태규 감독

지난해 <폭력의 씨앗>으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및 CGV 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임태규 감독이 1년 만에 차기작을 들고 전주를 찾았다. <파도치는 땅>은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였던 아버지를 둔 아들 문성의 이야기다. <한겨레21>에서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저 사람에게도 아들 혹은 딸이 있을 거라는생각”이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감독은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아버지를 외면하며 살아왔던 문성의 상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국가 폭력의 피해는 대를 이어 자식들에게까지 전이된다. 세월호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이유 역시 명백한 국가 폭력의 피해가 대를 이어 전해진다는 공통점에 있었다. 임태규 감독은 “납북됐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기다리는 가족들의 모습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다르지 않았다”며 두 가지 사건을 이어 작품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씻을 수 없는 상흔을 소재로 했지만, <파도치는 땅>은 <폭력의 씨앗>보다 훨씬 희망적으로 끝맺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이 열려있는 결말을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엔딩에 반영되어 있다. 문성의 누군가의 아들인 동시에 도진의 아빠라는 설정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거쳐 온 힘든 삶을 이해하는 순간이, 비로소 자신 역시 아버지가 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세대에 걸쳐 물려진 아픔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맞이하게 될 지는 우리의 몫이다.”

파도치는 땅

감독 임태규

출연

개봉 201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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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비즈니스>

누아르를 닮은 다큐 
<굿 비즈니스> 이학준 감독

한국에서 미국 드라마 <나르코스>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이에게 탈북산업만큼 흥미진진한 소재가 없을 것이다. 탈북자 한명을 탈출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은 어림잡아 1천만원. 현재 중국과 러시아에 10만 여명의 탈북자들이 숨어있다니 탈북 비즈니스는 10조원 규모의 거대 산업인 셈이다. 이학준 감독이 연출한 <굿 비즈니스>는 유명한 탈북운동가인 김성은 갈렙선교회 목사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가다 부모를 잃은 두 자매를 탈출시켜 미국 가정에 입양시키는 다큐멘터리다. 험난한 탈북 과정을 쫓는 감동 스토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김성은 목사와 그와 함께 일하는 탈북 브로커들 그리고 그들이 구출하는 탈북자 사이에서 오가는 돈과 그로 인해 생긴 욕망을 생생하게 펼쳐내는 영화는 <나르코스> 같은 범죄물이나 누아르에 더 가깝다.
신문기자로서 십년 넘게 탈북자 인권문제를 취재하고, 다큐멘터리 시리즈 <천국의 국경을 넘다>를 만들면서 죽을 위기를 서너 차례 넘긴 이학준 감독이 다시 카메라를 든 건 탈북자 인권문제가 “누구보다 잘 아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는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돈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과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생생하게 표현한 덕분에 <굿 비즈니스>는 웬만한 누아르 못지않게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친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이학준 감독은 앞으로 “<첨밀밀>(1996) 같은 독하게 예쁜 극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굿 비즈니스

감독 이학준

출연

개봉 201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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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우진, 임태규, 이학준

글 장영엽·임수연·김성훈 / 사진 백종헌
<씨네21>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데일리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