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결말에 대해 언급된 내용이 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무덤에 간 적이 있다. 반팔 차림에 콜라를 입에 달고 다녔던 66. 봄이라 해야 할지 여름이라 해야 할지. 아무쪼록 오즈 영화에 딱 어울리는 날씨였다. 아침 일찍 요코하마 호빵맨 박물관에 들러 천국을 경험하고, 해가 얼마간 꺾였을 즈음 도쿄 저 아래 가마쿠라 시에 있는 사찰 엔가쿠지로 향했다. 열차에 내려 바로 몇 걸음 걸으니 절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었더니 공동묘지가 나왔다. 저마다 비슷하게 생긴 비석들 사이를 헤매다가 마침내 가 크게 새겨진 오즈의 묘비를 찾았다.

오즈 야스지로의 묘비

영화마다 맥주 들이키는 장면 하나씩은 꼭 넣었던 오즈이기 때문일까, 아무것도 없다는 글자 앞에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놓고 간 음료들이 참 많았다. 그 옆엔 참배객이 직접 찍은 영화가 담겼을 법한 블루레이 디스크도 놓여 있었다. 딱 그 정도만 특별한 묘를 서성이는 와중, 지금보다 더 영화를 사랑해야겠다고, 언젠가 영화가 정말정말 지겹다고 느껴질 때면 이 순간을 돌이켜보겠다고 생각했다. 오즈의 환영을 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육신이 53년 전 묻힌 이곳에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 힘을 얻었다. 그로부터 딱 66일이 지난 1212. 오즈의 생일이자 기일이었던 날, 그 때의 사진을 꺼내봤다. 씨네플레이 기자로 일하며 마주했던 후진 인간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긴 했지만, 정작 영화가 지겹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레이디 버드>

매주 개봉작들을 살피며 한 주의 컨디션을 가늠한다. 소화해야 할 업무량은 때마다 크게 다르지 않은데,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 쓸 때면 나도 모르던 체력과 성의가 샘솟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3월은 영화기자로서 맞는 최상의 시간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즈음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션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 마틴 맥도나의 <쓰리 빌보드>,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 올해의 영화로 꼽을 만한 좋은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했다. 말일을 향해갈수록 만족도는 더 높아졌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레이디 버드>를 처음 봤을 때 참 많이도 울었다. 같이 본 동료는 기쁜 장면에서도 쉴새 없이 눈가를 훔치던 내게 선배 괜찮으세요?”하고 물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 두 영화를 보며 왜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렸는지 아주 문득문득 생각해봤다. 고백하자면 나는 기쁨 앞에서 훨씬 자주 우는 사람이다. “이 봐라 슬프지?슬프지?” 하는 장면에서 별 수 없이 울어버리고 나면, 누가 간지럼을 태워 바닥에 자지러진 것마냥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슬픈 걸 보고 울었을 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물을 의심해야 직성이 풀린다. 기쁨은 슬픔처럼 이래저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세상 떠나가라 웃을 필요도 없이 그저 아무렇지 않게 스치듯 보여줘도, 영화 속 인물들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들이 나와 전혀 닮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아니, 오히려 비슷하지 않을수록 감흥은 커진다. 나와 전혀 닮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만 이해할 것만 같은 표현을 목격할 때, 덜 외로워졌다.
 
루카 구아다니노와 그레타 거윅은 환희의 순간을 입밖에 내지 않은 채 제대로 보여줬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가 기타로 연주한 바로 그 멜로디를 피아노로 아주 똑같이 따라치고서야 올리버(아미 해머)가 비로소 엘리오 곁에 앉아 그 소리를 음미할 때,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는 올리버의 말에 엘리오가 그때는 말이 됐나보죠대답하자 근래 들은 가장 다정한 말이네하고 휙 굴러 물에 빠져버릴 때(그리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수많은 순간들).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이 연극 합격자 명단에 자기 이름만 쏙 레이비 버드라고 고쳐쓰고 자리를 뜬 후 친구 줄리(비니 펠드스타인)가 자기 이름을 가만히 쓰다듬는 걸 구태여보여줄 때, 첫 남자친구 대니(루카스 헤지스)와의 사랑이 한창 무르익던 날 잘생긴 카일(그러고보니 여기도 티모시 샬라메)에게도 하트가 켜질 때(그리고 <레이디 버드> 속 수많은 순간들). 대단한 꾸밈 없이 슥 지나가는 그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였다. 구아다니노와 거윅이 진작 그걸 귀신같이 해냈기에, 복숭아에 묻은 정액을 들킨 수치심에 울어버리는 엘리오를, 같은 일자리에 비슷한 복장을 하고 면접을 보러 온 아빠와 오빠를 보는 크리스틴을 보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레이디 버드>

꿈같은 3월을 지나, 4월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를 봤다. 150분을 꽉꽉 채운 한바탕 쇼를 나 역시 홀린 듯이 보긴 봤는데, 극장을 나서자마자 감흥이 먼지처럼 바스라졌다. 위기-위기-위기-위기만 이어지다가 절정에서 턱 끝나버리는 영화를 보면서 남은 유일한 쾌감은 타노스의 의지처럼 세상의 생명 절반이 소멸한다는 점 정도. 마블이 10년간 차곡차곡 쌓아왔던 세계관의 한 기점을 150분 안에 마무리하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었겠거니 하게 된다만, 러닝타임을 늘려서라도 타노스가 피 하나 섞이지 않은 가모라에게 사랑을 쏟는 이유를 제대로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극장을 나서며 2차 관람을 위한 예매를 취소했다. 며칠 후 한국은 영화관에 <인피니티 워> 하나만 상영되는 것처럼 돌아갔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그 이후 어쩌다 보니 <인피니티 워> 관련한 기사를 연거푸 쓰게 됐다. 결국 그게 독이 됐다. <인피니티 워>와 그를 둘러싼 대중들의 열광을 보면서 영화 자체가 아예 지겨워졌다. 그들이 좋아하든 말든 나는 내 볼 것 보고 할 일 하면 되는 건데, 그게 잘 안 된다. 환절기 타나, 정신이 산란한가, 사치를 할 때가 된 건가. 모르겠다. 극장에 간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히터가 틀어져 있을 것처럼 어지러워진다. 지난 1년간 별 쓰레기 같은 영화들 보고서도 잘만 버텼는데, 역사상 최고 블록버스터를 본 이후로 이렇게 넉다운 되다니. 당황스러울 뿐. 오즈의 묘에 갔던 사진을 다시 들여다봐도 힘이 돌지 않는다. 영상자료원에서 에른스트 루비치의 무성영화를 보면 나아지려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고다르의 70년대 영화를 보면 나아지려나. 도쿄 어느 절에 있다는 미조구치 겐지의 묘지에 가면 좀 나아지려나. 흠…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영화가 정말 지겹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