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캐릭터의 변주 이상의 것
이 영화가 이해영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제목은 원제를 그대로 따라 <독전>이다. 한국어에선 별 의미가 없는 제목인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리메이크 과정이 알려지고 캐스팅 뉴스가 전해지면서 어떤 영화로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한 느낌이 왔고 주변 사람들의 예측도 비슷했는데, 보고 나니 정말 그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영화였다. 여기서 느낌이나 촉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데, 자유롭게 스타일과 이야기를 선택한 두기봉과 달리 이해영에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면 당연히 다른 영화가 나왔겠지만 그 느낌에서 벗어날 정도로 심하게 다른 영화는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독전>의 기본 이야기는 원작과 비슷하다. 마약범들을 사냥하는 경찰 집단이 있다. 어쩌다보니 이들에게 체포되어 협조하게 된 마약범이 있다. 이들은 힘을 합쳐 마약범을 소탕하는데 이에 협조하는 마약범의 진짜 목적은 알기 어렵다.
어떻게 이를 원작과 차별할 것인가? <독전>은 <마약전쟁>을 디테일이 빠져 있는 설계도나 스케치로 본다. 그리고 그 가상의 빈자리를 캐릭터와 사연, 도덕적 모호성으로 채워넣는다. 그러니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BWV 846의 전주곡 1번을 잃어버린 노래의 반주라고 상상하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은 샤를 구노의<아베 마리아>와 비슷한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작에는 얄팍하기 그지없었던 모든 인물들이 보다 입체적이고 개성적으로 그려지며 그들에겐 여분의 이야기가 들어간다. 관계 묘사가 깊어지는 건 당연하고. 모 영화의 팬들은 이 묘사가 그 영화의 표절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기서 문제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BWV 846의 전주곡 1번이 구노가 만든 예쁜 멜로디의 반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이듯, <마약전쟁>도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기봉은 그냥 이런 종류의 소재를 다루는 중국어권 영화들이 몇 십년 동안 반복해온 비슷비슷한 레퍼토리들을 일부러 제거하면서 <마약전쟁>을 다른 영화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독전>의 시도는 <마약전쟁>을 특별한 영화로 만들었던 예술적 선택을 제거해 원래대로 되돌려놓는 과정이 된다.
구노의 <아베 마리아>가 예쁜 노래이듯, 이 작업의 결과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많은 하드보일드물이 그렇듯, 이 영화에는 노련한 배우들을 재료로 한 뚜렷한 캐릭터의 전시가 있다. <독전>은 원작과는 달리 “이선생이 누구냐?”라는 미스터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이를 캐릭터와 연결시키는데, 그 반전은 전혀 놀랍지 않지만, 이 이야기가 가진 고풍스러운 모험담의 풍취를 매력으로 보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캐릭터가 뚜렷한 만큼 재미있거나 창의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들에겐 지난 몇년 동안 한국영화에서 보았던 마초 캐릭터의 변주 이상의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중 몇명이 여자라고 해서 이들이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건 아니다(여기에 대해 더 꼼꼼하게 비판하고 싶은 독자들은 강승현이 연기하는 여자 형사 캐릭터가 양쪽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비교해보면 되겠다).
이해영의 <독전>은 두기봉의 <마약전쟁>의 팬픽 버전에 가깝다. 이 자체는 예상했던 것이고 다른 무언가가 나왔다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일단 공동각본가 정서경의 전작 <아가씨>(2016) 역시 원작 <핑거스미스>의 팬픽이었고 최근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조직폭력 소재 액션물은 80, 90년대 홍콩영화의 팬픽이기 때문이다. 이는 번안물의 한계가 아니다. 역시 홍콩영화의 리메이크인 마틴 스코시즈의<디파티드>(2006)와 비교해보라. 이들 영화에는 스코시즈 영화에는 없는 것, 그러니까 80, 90년대에 홍콩영화를 보면서 한국인 관객이 느꼈다고 생각하는 감흥을 재현하고 과장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들이 어떻게 소비되건 간에 이 태도는 기본적으로 반동적이며, 이 반동성은 실제로 80, 90년대를 관통하며 영화를 만들어왔고 지금까지 꾸준히 스스로를 재창조해온 홍콩 감독영화의 리메이크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