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그는 청춘스타였다. 원한다면 영원히 ‘불멸의 아이콘’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대신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열정을 연기에 쏟고, 대중들에게 젠체하지 않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의 용기는 대중들로 하여금 정우성이란 인간을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때부터 배우 정우성의 이야기가 쓰였다.

올해 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스타, 배우, 아티스트 정우성’ 섹션을 준비했다. 어느덧 연기 경력 24년차인 정우성의 데뷔작부터 최신작 중 총 12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특히 7월 13일 영화 <비트> 상영 직후 진행된 메가토크 자리에는 배우 정우성과 감독 김성수가 참석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메가토크 현장 사진. 진행은 백은하 기자가 맡았다.

1997년 사회를 흔들었던 그 영화, 그 배우
<비트>

제대로 된 꿈조차 없이 살던 이민(정우성)은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 환규(임창정)와 로미(고소영)를 만난다. 두 사람과 어울리며 점차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이민. 그러나 조폭이 된 절친한 친구 태수(유오성)와 약자를 착취하는 사회의 일면을 마주하면서 이민은 다시 위험한 뒷골목 세계를 발을 딛게 된다.

1997년 개봉한 <비트>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청춘의 방황과 우정, 사랑을 다룬 내용과 김성수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은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이민을 연기한 정우성의 등장은 충격 그자체였다. 수려한 비주얼에도 여느 청춘들처럼 부서질 듯 미숙한 그의 모습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김성수 감독(이하 김) <비트>를 준비하면서 원작가 허영만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이 자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의 주연 배우를 모티브로 이민을 그렸다고 말씀하시더라. 

허영만 화백의 <비트>
허영만 화백이 언급한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

그 <아스팔트 사나이>의 주연 배우는 정우성이었다. 정우성은 처음부터 이민을 맡을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비트> 출연에 관한 정우성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화 <비트>가 배우 정우성 때문에 태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우성(이하 정) 원래 김성수 감독님은 다른 시나리오를 보냈었다. 나로서는 그 시나리오가 한국에서 만들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거절했었는데, 그다음에 <비트>를 제의했다. ‘나 같은 배우가 거절했는데 왜 또 제안을 주셨지?’ 싶었다. 그래서 <비트>를 같이하게 됐다.
김 거절당했을 때 진짜 화났었다. 속으로는 다시는 같이 하나 봐라, 그런 마음이었다(웃음)
 ‘내가 널 현장에서 괴롭힐 거야’ 같은 마음으로 제안했었나 보다(웃음)

메가토크 현장 사진

배우 정우성과 <비트>의 이민은 외형만 닮은 것이 아니었다. 김성수 감독도, 정우성도 그 시절의 정우성은 이민과 비슷했다고 회상했다.

김 <비트> 찍을 때 정우성과 영화 속 이민은 정말 비슷했다. 정우성이 평소 하는 행동도 내가 관찰해서 많이 집어넣었다. 후반작업할 때였나? 정우성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비트>와 비슷한 감성이었다. 그런 정서에 대한 이해가 높구나 느꼈다. 나도 이민에게 자기 자신을 많이 투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정 민이가 ‘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오래 살겠다’ 하는데, ‘민아, 너 그러면 안 돼’ 싶었다. 남에게 얘기할 때 허세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민이는 너무 솔직하다. 민의 전반적인 정서나 환경은 저랑 참 비슷하지만, 민이가 더 용기 있는 솔직한 성격이었다. 당시 내 생활이 부끄럽지 않았지만, 거기에 솔직하진 못했다. 반대로 민이가 ‘목표가 확실한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워’라고 하는데, 난 그런 불안함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면 다음이 오겠지,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감독과 배우? 서로를 자극하는 선후배
<무사>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은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아수라>(2016) 네 작품을 함께 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이일 터. 관객과의 대화 내내 서로의 말을 경청하며 말을 받아주기도 했다. 그럼 김성수 감독이 본 정우성은 어떤 사람일까?

김 <비트> 시절의 정우성은 수줍고 내성적이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저거 써놓고 읽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말을 너무 잘한다. 그 당시엔 같이 일하는 사람과 허물없이 지내는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활발하게 지내는 성격이 아녔다. 

함께 작업한 영화의 현장을 얘기하며 김성수 감독은 정우성이 참 말을 안 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스스로 힘든 일을 결코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김 <비트>의 당구장 액션 장면을 찍는데, 하룻밤 만에 정신없이 찍어야 했다. 우성씨가 그때 허리를 다쳤는데 촬영하면서 얘기를 안 했다. 계속 인상을 쓰고 있다가 갑자기 잠깐 나가서 담배를 피우겠다고 하더라.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갔다 와라, 보냈더니 나중에 다른 스태프가 우성씨가 허리 붙잡고 우는 걸 봤다고 했다.
정 땀 흘리며 씩씩거리고 있으니까 우는 걸로 본 거다.(웃음) 

그렇다면 정우성은 감독 김성수를 어떻게 생각할까. <비트> 때도 정우성에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지, 배우로서의 생각은 어떤지 자주 물었다는 김성수 감독. 정우성은 그에 대해 ‘늙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정 <아수라>로 오랜만에 같이 작업할 때, 김성수 감독님이 늙지 않았다는 게 제일 좋았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스스로 잘해야지 하면서 고민하고 방황을 하는 게 청춘이지 않은가. 김성수 감독님은 그런 면이 있었다. 나 자신도 늘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 생각했는데, 감독님을 보고 스스로 경종을 울렸다. 사실 촬영 중간에 감독님이 밉기도 했다. 내가 연기한 한도경도 계속 궁지에 몰리는데, 감독으로서 배우를 몰아세우는 에너지가 너무 강했다.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골절되셨는데 너무 좋았다(웃음).
김 우성씨가 처음으로 ‘힘들다’란 말을 했던 게 <아수라>다. 내가 다리 부러진 걸 보더니 복권 당첨된 표정을 짓더라.(웃음)

<아수라> 촬영 당시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

이처럼 호흡이 잘 맞는 김성수 감독을 만나서였을까, 정우성은 현장엔 스타가 없고 동료만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배우가 스타가 되는 건 ‘현상’이다. 스타는 대중에게 어떤 작품 때문에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는 현상일 뿐이다. 촬영 현장에선 함께 영화를 만드는 동료만 있는 거지, 스타가 있으면 안 된다.
김 우성씨는 ‘남들이 나에게 스타라고 하는 거지, 스스로 스타라고 하는 게 아니다’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김성수 감독은 <비트>를 찍고 후회한 것이 딱 두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이민의 헤어스타일. 주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이 그 머리를 하고 앞머리를 입으로 부는 게 썩 좋지 않았다고. 다른 하나는 오토바이 손 놓는 장면을 뽑았다.

<비트>의 바로 그 장면.

김 가끔 배달하는 청년들이 손 놓고 운전하는 걸 보곤 했다. 겉으론 놀라서 욕하면서도 속으론 ‘그 장면을 괜히 찍었나’ 싶었다.
정 <비트>를 찍고 영화란 게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았다. 당시에 팬들이 와서 ‘형 때문에 오토바이 탔어요’, 심지어 오토바이를 훔쳐서 탔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다음 역을 선택할 때 그런 영향력도 고려했다. 당시 액션 영화 대부분이 조폭영화였는데, 그 영향력을 생각하면 조폭 영화를 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대화,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은 아쉬워하는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진심을 담은 작별 인사를 남겼다.

김 부천영화제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배우로 정우성씨를 뽑고, 여러분도 인정해주신 거 같다. 동시대 살아가는 배우로서 ‘당신은 우리에게 다른 의미의 별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선언해준 기분이다. 
정 <비트>라는 영화를 여러분과, 멋진 선배이자 동료이신 감독님과 함께 나눠 기쁘다. <비트>는 90년대의 청춘을 다룬 영화다. 2018년의 청춘들은 어떤 고민과 방황을 할까, 그들에게 전 세대들은 따듯하게 대해줬나? 그들은 기성세대들에게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여러분들 모두 특별한 청춘의 시간을 지냈고, 지나고 있다. 여러분들 한사람 한사람 특별한 분들이기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하지 말고, 찬란한 빛을 낼 수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길 바란다. 

비트

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고소영

개봉 199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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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감독 김성수

출연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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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