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주간지 <씨네21>이 만든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공식 데일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BIFAN은 몇 년 전부터 새로운 뉴미디어 VR의 눈부신 발전에 주목하여 B.I.G 프로그램 내에 별도 섹션을 마련해 전세계 VR 콘텐츠를 소개해왔다. 특히 올해는 역대 가장 큰 규모의 ‘VR 빌리지’를 신설해 국내외 주목할만한 36편의 작품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22일까지 부천중앙공원 내 ‘VR 빌리지’ 운영) 선댄스, 트라이베카 국제영화제, SXSW 페스티벌 등 전세계 영화제에서 소개된 가장 최신의 문제작들이 대거 초청됐다.


VR 영화의 현재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작품들
올해 선댄스국제영화제 뉴프론티어 섹션에서 소개되어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배틀스카>(마르틴 알레, 니코 카사베키아 감독)는 기존의 영화 문법이 아닌 시네마틱 VR의 문법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작품. 16살 소녀 루페가 교도소 에서 친구 데비를 알게 되어 ‘펑크’ 음악을 만들게 되는 이야기인데, 관객은 그녀가 일기장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고 펑크 밴드를 하게 되는 이야기를 말 그대로 ‘보게’ 된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의 자유로운 교차 속에서 장면과 배경, 소품, 대사 등이 사방에 펼쳐진다. 기존 영화가 가진 고정된틀, 즉 보는 관객의 시점과 사각 프레임의 제약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으로는 앙헬 마누엘 소토 감독의 <디너 파티>를 꼽을 수 있다. 1960년대 UFO에 납치됐다 풀려난 것으로 알려진 베티와 바니 힐 커플의 이야기를 체험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이들이 평화롭게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UFO에 사로잡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 ‘속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카메라의 이동에 몸을 맡기면 색다른 실재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디너 파티>

호러 영화의 열기를 VR에서도 기대한다면 다크코너 특별전에 소개된 알렉산드레 아자 감독의 <캠프파이어 크리퍼스: 미드나잇 마치>, <캠프파이어 크리퍼스: 더 스컬 오브 샘> 연작 시리즈를 주목하자. 오큘러스와 퓨처라이트하우스에서 제작한 단편 영화로 VR과 호러 문법의 결합을 흥미롭게 고민한 작품이다. <캠프파이어 크리퍼스: 미드나잇 미치>는 늑대인간의 무자비한 학살극을 눈앞에서 볼 수 있고, <캠프파이어 크리퍼스: 더 스컬 오브 샘>은 산속에서 만난 연쇄살인마의 극악무도한 살인 행각을 직접 겪게 되는 충격적인 영화들이다.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를 연기했던 배우 로버트 잉글런드가 연쇄살인마로 등장해 관객을 말 그대로 죽여준다. 무서운 영상이 한 편 더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살려주세요>는 네이버 웹툰과 함께 호러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한 <DEY 호러채널> 중 한 편으로, 일종의 VR TOON이라고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평면 모니터에서 스크롤을 내려야 볼 수 있는 웹툰 형태를 360도로 ‘들여다볼’ 수 있는 VR 영상이다. 덱스터는 또 장형윤 감독의 <프롬 더 어스>도 선보였는데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3)를 연출했던 장형윤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된 VR 애니메이션 단편이다. 우주 탐사를 떠난 아버지와 그를 기다리는 지구의 딸이 서로 교감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주 한복판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게 되는 모습, 미지의 세계에 당도하는 모습 등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시점의 전환과 내러티브 상의 반전을 어떻게 결합해야 할지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VR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보여주는 작품.

<프롬 더 어스>

VR과 다큐멘터리의 흥미로운 결합을 꾀한 국내외 유의미한 시도도 있다. 덴마크의 피터 반 허위스테 필름에서 제작한 <라스트 체어> 시리즈는 두 노인 프레드와 에그버트의 일상을 체험하게 해주는 작품. 평범하지만 전혀 다른 두 노인의 일상을 마치 의자에 앉아 옆에서 지켜보듯 바라보는 것은 과연 관객에게 어떤 의미일지를 되묻게 만드는 작품이다. 스포일러를 살짝 공개하자면, 그들의 마지막도 관객이 함께 하게 된다. 국내 제작사 IOFX와 박규택 감독이 협업한 <바람>은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동계훈련 현장을 VR 영상에 담았다. 경기 도구인 ‘퍽’의 시점에서 빙상장 한복판에서 경기를 체험하게 하는 작품으로 다큐멘터리와 VR의 접목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VR 빌리지 전경

떠오르는 VR 제작사들
올해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베스티지> 역시 VR 다큐멘터리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다. 볼류메트릭 비디오 캡처라는, 카메라 촬영이 아니라 3D 캡처를 통해 인물의 움직임을 독특한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다. 마치 눈으로 전자기장을 보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옛사랑을 기억하는 인물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눈 앞에 보이는 형체가 보는 관객 위를 뒤덮기도 하는데, 가상공간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사실상 그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배틀스카>와 함께 이 작품을 제작한 아틀라스파이브(AtlasV)를 비롯해 공동 제작한 스튜디오 NSC 크리에이티브, RYOT, 칼레이도스코프 등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VR 제작사다. RYOT는 <디너 파티>를 제작했고, 칼레이도스코프사는 <배틀스카> 제작에 도 참여했다.

국내 VR 영화 제작 인력 양성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KAFA+ NEXTD 교육 과정에서는 총 6편의 작품을 출품했다. 김영갑 감독의 <기억의 재구성>은 죽은 사람의 뇌에 접속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학수사관의 체험을 다룬 작품으로 360도 실사 촬영을 통해 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여러 시도를 보여준다. 사각의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가장 인상적 시도는 배경헌 감독의 <의릉>이다. 꿈을 꾸는 듯한 현실 속에서 주인공은 모두가 자신을 다른 인물로 오해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는데 실은 카메라 뒤편에 나와 흡사한 다른 인물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설정이다. 360도 촬영을 통해 관객이 사방을 모두 주시해야 한다는 VR의 기능적인 측면을 이야기에 접목시킨다.


씨네21 www.cine21.com
글 김현수·사진 박종덕 객원기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데일리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