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무너진 터널을 통해 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영화 <터널>이 개봉 6일 만에 관객 3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무능한 정부와 선정적인 언론이 보여주는 어이없는 행동에 깊은 탄식을 내뱉었는데요, 이는 지금도 우리들 바로 옆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영화 <터널>이 보여주는 부실과 부조리의 장면은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 걸까요? 영화 속 장면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을 되짚어보았습니다.

※ 영화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여주기식 대응의 전형, 정치인들의 인증샷.

정치인의 기념사진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를 구조하기 위해 사고 대책반이 꾸려진 가운데, 사고 현장을 찾은 고위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 세현(배두나)을 불러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쁩니다. 보여주기식 대처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탄식을 자아냅니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 당시 안전행정부의 한 고위 공무원이 침몰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유족들의 항의를 받았고, 분노한 여론의 질타 속에 직위해제 당한 일이 있습니다. ▶관련 뉴스


<터널> 예고편 캡쳐. 실제로도 영화 속 장면 같은 건설 비리가 있었다.

현실에서도 부실시공
구조대장 김대경(오달수)은 정수가 알려준 환풍기의 번호를 토대로 터널 설계도를 보고 매몰 위치를 파악하게 됩니다. 17일간의 굴착 끝에 터널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구조는 실패합니다. 설계상 7개여야 하는 환풍기가 실제로는 6개만 설치되어, 정수의 위치를 잘못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장면에서 보여주는 터널 건설 비리는 실제에서도 있었습니다. 울산-포항 고속도로 터널 공사에서 암반에 삽입해 터널의 붕괴를 막는 안전 보강재인 락볼트가 설계상 수량보다 훨씬 더 적게 사용된 공사 비리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관련 뉴스


<터널> 최고의 스포일러 '탱이'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씨 인터뷰 (출처 : 한겨레신문)

'탱이'로부터의 위안
정수와 함께 터널 안에 갇혀 있다 목숨을 잃은 미나(남지현)의 반려견 탱이는 처음에는 정수가 아끼던 케이크를 훔쳐 먹은 원수였다가 나중에는 돌무더기 속에서 개사료를 발견해 버틸 힘을 마련해 준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방이 막힌 극도로 외로운 공간에서 정수는 탱이로부터 위안을 얻게 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매몰 11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씨도 옆에 장난감 기차가 있어서 만지작거리며 심심함을 달랬다고 말했습니다(한겨레신문, 1995. 7. 10자 보도).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0)에서 무인도에 고립된 척 놀랜드(톰 행크스)의 유일한 친구가 배구공 윌슨’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터널 공사 재개와 관련한 공청회에 도롱뇽 소송이 언급된다.

물질과 사람의 우선순위
1차 수직 굴착 시도가 실패하고 수평진입을 통한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하도 신도시를 잇는 하도 제2터널 공사 지연에 따른 적자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공사를 재개하면 발파 작업 때문에 정수가 갇힌 공간에 추가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공청회에서 공사 강행을 주장하는 한 토론자가 "도롱뇽 때문에 터널 공사가 지체된 사례가 있다"는 발언을 하게 되고, 구조대장 대경은 "터널에 갇힌 생명은 동물이 아닌 인간"이라고 강변합니다. 실제로 고속철도 터널 공사와 관련하여 도롱뇽이 소송의 당사자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자연물인 도롱뇽은 소송의 법률적 자격이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고 공사도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관련 뉴스


<터널>에서는 굴착반장으로 나온다.

희생자가 비난받는 모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구조작업에 임하던 최반장(정석용)이 굴착 작업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구조작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비난이 발생합니다. 영화에서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정수를 구하기 위해 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을 들어, 세현(배두나)에게 그동안 중단되었던 제2하도터널의 공사 재개 동의를 요청하게 됩니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 때도 구조작업에 투입되었던 잠수사의 희생과 하루하루 구조에 소요되는 비용을 이유로 들며 수색을 중단하자는 현직 국회의원의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관련 뉴스


소방서 입구에 불법주차한 차량. 화재시 출동은 어떻게 하라고.

소방서 앞 불법주차
대경이 정수의 구출 소감을 그대로 전했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쓰는 장면이 있습니다. 눈썰미 있는 관객이라면 소방서 입구에 불법주차한 흰색 외제차주에게 한 소방대원이 차 빼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놓치지 않으셨을 겁니다. 1분, 1초가 아쉬운 소방차의 출동을 방해하는 불법주차는 실제로도 있습니다. 포항남부소방서 앞에 버젓이 주차하고도 뻔뻔하게 이동요구를 무시하던 차주는 법적 처벌을 고지받고서야 비로소 차를 옮겼다고 합니다.  ▶관련 뉴스


있을 법한 사건이 그럴 수도 있는 내용으로 전개되었을 때 재난영화는 흥미를 더합니다. 하지만 영화 <터널> 속 대부분의 장면들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우리 일상의 추한 민낯들을 복기해냅니다. 부실과 부조리라는 어둡고 긴 터널에 갇힌 대한민국의 오늘도 영화처럼 희망의 출구를 찾기를 기원합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다스베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