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쳐(Vulture) 리프린트 계약을 맺고 번역한 콘텐츠를 편집한 글입니다. (: 체이니)

<배리>

올해 3월 방영한 <배리>(Barry)는 첫 장면부터 사람이 죽는다. 정확히 말해 사람이 죽은 직후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배리(헤이더) 호텔 방 안에 서 있고, 그 옆엔 대머리 사내가 이마 중앙에 총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채 죽어 있다. 이 정도까지 묘사한다면 배리가 그 남자를 죽인 걸 분명한데, 그의 표정은 사람을 죽인 것 같지 않다. 마치 인쇄소 직원이 복사기 안에 걸린 용지를 빼낼 때처럼, 배리에겐 살인 사건이 성가시고 불만이 생길 만큼 일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총에서 소음기를 제거한 후, 그는 떠난다.

물론 살인은 웃기지 않다. 하지만 배리가 이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는 점은 웃음을 자아낸다. 물론 그 뒤에 나오는 노골적으로 비꼼 가득한 장면들이나, 올해 에미상 코미디 시리즈 최우수 작품 후보 지명을 받은 것을 봐도, <배리>는 코미디다. 그것도 매우 특정한 타입, 바로 살인 코미디다. 

살인 코미디는 주로 2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하나는 웃기거나 최소한 웃기려 시도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캐릭터(주로 주인공)가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나 사고로 죽이는 것이다. 살인 코미디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살인 미스터리, 범죄 수사, 누아르 스릴러 등 다른 장르의 요소를 빌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드라마와 비슷한 방향으로 전개한다 해도, 살인 코미디의 핵심은 시청자를 웃기는 것이다. 사악하게 낄낄대는 것도 웃음이다.

<굿 걸스>

지난 2년간 TV에서 살인 코미디 시리즈가 많아졌다. <배리>가 요즘 살인 코미디의 가장 명확한 예시다. 커리어의 변화를 꿈꾸는 청부살인업자가 어쩌다 예술가 집단과 어울리게 되며 독특한 웃음을 자아낸다. <트라이얼 앤 에러>(Trial & Error)는 범죄 풍자물이지만, 살인 혐의로 기소될 멍청한 용의자를 변호해야 하는 상황이 웃음을 짜내기 때문에 살인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서치 파티>(Search Party) 시즌 2는 누군가 사고로 죽고 이를 덮으려 하면서 살인 코미디가 되었다. <파고>(Fargo)는 엄밀히 말하면 코미디보다는 드라마이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에 연루된 사실을 감추려는 무능한 시골뜨기들의 활약만 보면 살인사건 코미디라 할 만하다.

그리고 살인 코미디에 가까운작품으로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Santa Clarita Diet)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좀비 코미디이지만, 살인 코미디라 할 만큼 주검이 많이 나온다. <굿 걸스>(Good Girls)는 드라메디(드라마+코미디)에 가깝지만, 시즌 1에서 주인공 베스(크리스티나 헨드릭스)가 총을 손에 든 채 끝난 것을 보면 시즌 2는 살인 코미디로 나아갈 것임을 알 수 있다. <애틀랜타>(Atlanda) 시즌 2 중 가장 화제가 된 테디 퍼킨스에피소드에선 언제든 살인 코미디로 변신할 것처럼 굴다가 거의 그렇게 끝내버린다.

왜 요즘 코미디는 죽음에 관심을 보일까? 코미디 장르의 정의가 확장된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새로운코미디는 실험적인 접근과 깊은 캐릭터 연구를 판 깔고 농담을 던지는 것만큼 흔하게 하고, 잘 한다. 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창작자나 제작사가 죽음과 유머를 결합한 게 먹힐수 있다고 판단한 것도 있다. 미국인들은 살인 소재 콘텐츠를 좋아하고, 웃는 것도 좋아한다. 따로 먹어도 맛있으니, 함께 먹어도 맛있지 않을까? 그러니 살인 코미디는 결국 TV 속 피넛버터 초콜릿인 셈이다. 

<브루클린 나인 나인>

범죄와 코미디의 공존은 엄밀히 말해 새로운 경향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장르가 겹치는 부분은 주인공이 경찰 또는 탐정이라는 점이었다. 즉 착한 자들이 범죄를 해결하는 내용이지, 나쁜 놈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이 아니다. 경찰 또는 탐정 코미디는 지금 바로 몇 개쯤 떠오를 것이다. 고전을 따지면 <블루문 특급>(Moonlighting)이 있고, 최근 작품으로 <푸싱 데이지스>(Pushing Daisies), <리노 911>(Reno 911), 요즘도 방영되는 <브루클린 나인 나인>(Brooklyn Nine Nine)도 있다. 이런 작품들은 굳이 따지면 나쁜인물에게 공감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인 코미디는 살인을 저지른사람들을 중심에 세우고, 우리에게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길 요구한다.

살인 코미디의 등장은 우리가 TV를 보는 방식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2018년 시청자에게 편성표는 중요하지 않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VOD를 다운로드해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NBC 프로그램인지 CW 시리즈인지 알지 못한 채 드라마를 본다. 장르를 막힘없이 오가는 프로그램에도 완전히 익숙하다. 코미디가 드라마나 스릴러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다른 매력으로 받아들인다.

몇 년 동안 인기 있던 안티 히어로'(Anti-hero)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살인 코미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정의 장벽을 낮췄다고 볼 수도 있다. <소프라노스>(Sopranos),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 <더 와이어>(The Wire), <매드 맨>(Mad Men), <디 아메리칸스>(The Americans) 등에서 만난 소위 참 까다로운 사람들덕분에 우리는 주인공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어도 그들의 이야기를 즐겨 왔다. 2015<매드 맨>의 종영으로 안티 히어로 드라마의 수명은 다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극단적인 안티 히어로가 코미디에 등장했고, 우리는 그들을 향해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 사실상 토니 소프라노가 이런 유행을 만들었단 말은 틀리지 않다.

<트라이얼 & 애러>

혹자는 살인 코미디의 등장이 우리가 폭력에 둔감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주장한다. 아마 어느 정도는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살인 코미디는 가장 암울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라 생각한다. <트라이얼 & 에러> 시즌 2처럼 유명 상속녀가 동생을 죽이고 탈옥하는 사건은 현실에선 웃기지 않겠지만, 크리스틴 체노웨스가 가짜 콧수염을 달고 살인을 저지르면 웃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건 현실에서 용납할 수 없지만, ‘배리’처럼 그 일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인물에겐 동정을 느낀다. <배리> 같은 살인 코미디에도 이런 방식으로 감정 이입이 가능하다. 가끔은 실제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가상의 인물에서 심리적 공감대를 찾는 게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 코미디는 현실을 미리 경험하는 창구의 역할도 한다. 비참한 죽음은 현실 세계에서도 매일 일어나는데, 살인 코미디는 이를 덜 위협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해방구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며 우리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것 자체가 범죄 코미디와 드라마의 매력이다.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에 웃는 것 자체는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최소한 30분 동안은 말이다.


겨울달 / 에그테일 에디터
원제: The Rise of the Mur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