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로스

작가 알렉스 로스의 신간이 나올 예정이다제목은 <마블로시티>(Marvelocity). 알렉스 로스의 마블 코믹스 작업물들을 모은 신간인데 십수 년 전에 나왔던 DC 코믹스 작업물 모음집인 <미솔로지>(Mythology)와 짝을 이루는 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작가 알렉스 로스의 이름은 꼭 미국 만화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미술 학도들이나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도 익숙하다그는 1993DC 코믹스의 편집국의 문을 두드려 <슈퍼맨둠스데이 앤 비욘드>(Superman: Doomsday and beyond)의 표지 그림 작업 일을 따내면서 만화계에 데뷔하였다이후 <샌드맨 미스터리 극장> 등 자잘한 DC 코믹스 만화를 그리면서 독자들 사이에 그의 이름을 조금씩 알려 가기 시작했다.

그의 출세작은 경쟁사 마블 코믹스에서 1994년 디럭스 판형 4부작으로 발간한 <마블스>. 지난해 국내에서도 정식 발매된 이 미니시리즈의 모든 표지 그림과 내지 그림을 알렉스 로스가 그렸다이 작품은 아직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도래가 요원한 시절이던 1990년대만화 독자들에게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시각적 충격을 선사하였다만화책에서 보던 유치한 히어로들의 코스튬까지 현실 세계에 존재할 것 같은 극사실적 묘사로 표현한 그의 능력에 독자들은 열광했다매 페이지 하나하나가 미장센의 연속이었고알렉스 로스는 하루 아침에 마블 코믹스 뿐만 아니라 경쟁업체 DC 코믹스와 이미지 코믹스밸리언트 등에서도 모셔가고 싶어하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개인 A&R 에이전트도 이때 계약을 맺었는데 지금까지도 그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알렉스 로스의 모든 작품은 그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1996년 알렉스 로스는 2연타석 홈런을 날리는데경쟁사 DC 코믹스에서 유사한 디럭스 판형 4부작으로 발간된 <킹덤컴>(Kingdom Come)은 전작 <마블스>보다 더 다이나믹한 구성과 더 치밀한 세부 묘사로 극찬을 받았다평행 우주에서 늙어버린 DC 유니버스의 히어로들과 빌런들의 충돌을 다루는 이 책의 단행본은 1997년에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이 되었다. DC의 영화 유니버스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더라면 <킹덤컴>의 영화화도 미래에 계획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90년대 말~2000년대 와서 발표한 <저스티스> <애스트로 시티> 등도 팬들의 호평을 받았고 현재는 <애스트로 시티>의 모든 표지를 그림과 동시에 다이너마이트 엔터테인먼트에서 <600만불의 사나이><그린 호넷>, <더 섀도우등의 표지 그림을 그리면서 프리랜스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알렉스 로스 그림의 최대 장점은 과감한 구성과 원작 만화 디테일의 충실한 재현이다물론 뛰어난 데생 능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가능하겠지만 일반 최상위급 만화 작가들에 비교해서도 그의 화면 구성 능력은 매우 창의적이고 대담하다과슈 물감과 에어브러쉬만으로 작업하는 그는 원래 미대 시절에는 유화를 전공하였다과슈는 재학 시절 수업을 몇 번 들었을 뿐이라 하는데빨리 마르는 과슈의 특성상 빠른 속도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스타일에 맞았다고 한다실제로 그의 작업 속도는 엄청 빠르다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페인팅 시작부터 끝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들이 몇 개 있는데같은 성씨를 가진 밥 로스(Bob Ross) 아저씨에 비할 정도로 빠르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순식간에 한 장의 완성도 높은 그림이 완성되어 버린다참고로 알렉스 로스와 밥 로스는 성이 같을 뿐 아무 연관이 없는 화가들이다.

알렉스 로스 외에도 회화적 스타일을 사용하는 작가들은 업계에 몇몇 있다이러한 스타일에서 알렉스 로스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작가로 빌 신케비치가 있는데원화 판매 가격은 빌 신케비치가 더 높은 편이다또한 좀 더 젊은 작가들인 가브리엘 델 오토(국내에도 정식 발간된 <시크릿 워>의 모든 표지와 내지 그림을 그렸다)나 아담 휴즈(슈퍼걸 등 남성 히어로보다는 헤로인 그림을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며 미국에서 팬층이 두텁다)도 비슷한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으나 주로 디지털로 작업하고 있으며 인지도 면에서 앞의 두 명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알렉스 로스의 원화 작품들이 미래 투자 가치가 있는지즉 미래에 상업 미술이 아니라 순수 미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는 논란이 많다. 프랭크 프라제타의 경우 대표적인 작품 가격이 현재 수억원~수십억원 대로 진입하며 순수 미술 작품들의 가격대 영역에 진입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일단 개체수 면에서 훨씬 희소하며, 그 중에서도 만화 관련 작품은 매우 일부이고 대부분은 소설이나 잡지에사용된 일러스트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만화 관련 일러스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완성도를 떠나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알렉스 로스 본인도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데역설적으로 자신이 이 정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만화라는 ‘미디엄’을 택했기 때문이란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즉, 순수 미술이나 일반 상업 미술 영역에서는 자신정도의 기량의 작가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나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발언이다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회화적 스타일이 인기를 얻은 1990년대 초 이후 수 많은 회화 스타일의 작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성공을 거두었어야 하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알렉스 로스라는 이름은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