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실사 영화 <부산행>으로 당당하게 천만 감독 자리에 오른 연상호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다. <마리 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 등 한국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감독으로 통하는 이성강 감독의 신작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은 연상호 감독이 이끄는 스튜디오 다다쇼가 제작을 맡은 토종 국산 애니메이션이다.
2016년에 한국산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을 하기엔 좀 낯간지럽지만 워낙 열악한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을 감안한다면 그래서 더욱 뿌듯하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지난 8월 11일, 이성강 감독과 연상호 감독이 직접 영화의 포인트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던 메가박스 만화방 토크의 내용을 토대로 간단하게 <카이: 가을 호수의 전설>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봤다.
1. 가을 호수의 괴담 아니다, 전설이다.
연상호 감독이 제작을 했다고 해서 그의 전작인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와 결을 같이 하는 영화라고 오해하면 낭패다. 어디까지나 <카이: 가을 호수의 전설>은 전체관람가 영화다.
연상호 감독은 평소 존경해왔던 이성강 감독에게서 전체관람가 영화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별다른 고민없이 제작을 결정했다고. "이성강 감독님만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연출 지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그의 작품이 보고 싶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제작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연상호 감독은 제작사인 스튜디오 다다쇼를 운영하면서 두 가지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에로 애니메이션과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벌써! 모두 다 이루었다. (연상호 감독이 제작한 에로 애니메이션 <발광하는 현대사>에 관해 궁금하다면 이 기사로.)
2. 몽골에서 안데르센 동화를 떠올리다
이성강 감독은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악마의 거울이 눈에 박혀버린 소녀 샤무이가 하탄이라고 하는 호수의 악마에게 납치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기본 스토리는 유사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고 하탄이 점점 세상을 얼려버리며 지배하려 들자 샤무이의 오빠인 카이가 마을과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카이와 샤무이는 어릴 때 헤어져서 서로 남매인지 모른다.) 그 가운데 제재라는 재미있고 독특한 캐릭터와 친구도 맺고 거대한 순록과도 친구가 되면서 카이가 하탄의 얼음성까지 가게 되는 모험담이 펼쳐지는 것.
"원래 제목도 '눈의 여왕'이라는 원제를 그대로 쓰려다가 '거울 호수의 카이'로 바꿨었다. 그러다 올해 개봉을 결정하면서 다시 지금의 제목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만큼 이 영화에 <눈의 여왕> 모티브는 중요했다."
그런데 이성강 감독은 원작의 모티브를 한 번 비틀어서 생각했다. 바로 공간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이성강 감독은 몽골 여행을 하던 도중에 얼음, 혹은 눈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몽골 황야에서 얼음 왕국이 펼쳐지는 이야기가 어떨지 아이디어를 구상했다고 전한다. 동양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공간에 유럽의 전설을 접목시킨 셈이다.
3. 어려운 환경에서 제작된
국산 애니메이션
연상호 감독은 <괴물의 아이>나 <늑대아이>와 같은 인기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30만 정도의 관객수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순수하게 한국 자본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4억~5억원 정도의 비용을 넘지 않아야 현실적인 제작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 비용 가지고는 웬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어렵다. 그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제작된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뤄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성강 감독도 연상호 감독과 손을 잡은 것은 결국, 스튜디오 다다쇼의 저예산 제작시스템이 서로간의 분업,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어 영화의 제작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연출자가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게 제작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곧 영화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므로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이 재미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튜디오 다다쇼의 시스템 덕분이다.
4. 이 캐릭터는 놓치지 마라
이성강 감독이 힘주어 강조하는 캐릭터는 바로 날다람쥐 포포. 눈의 여왕 하탄에 맞서 싸우는 카이와 제재를 돕는 조력자로 등장하는 반디와 포포는 이 영화의 세젤귀 캐릭터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의 귀염 터지는 매력을 발산하는 바, 이성강 감독은 계란 후라이를 닮은 캐릭터 반디를 구상할 때 정말로 계란 후라이처럼 단순하고 동글동글한 정령을 만고 싶어했고, 포포의 경우에는 다람쥐는 다람쥐인데 의외의 느낌을 주고 싶어서 날다람쥐로 설정했다.
그리하여 포포는 위급한 순간에 날개를 활짝 펼쳐 강력한 신스틸러로서의 한 방을 구사한다. 두 캐릭터는 사실상 이 영화의 유일한 멜로 라인. 연상호 감독이 멜로 라인을 넣어야 한다고 적극 추천했다고.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이끄는 두 감독에게 평소 애정하는 애니메이션 추천작을 받아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두 감독은 한 편씩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영화를 선정했다.
이성강 감독의 애니메이션
추천작
<프린스 앤 프린세스>
미셸 오슬로 감독의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작품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획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애니메이션을 향한 관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애니메이션 산업의 저변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추천작
<핑퐁>
너무 많아서 한 편만 꼽기가 어렵지만, 작가 마츠모토 타이요의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한 일본의 TV 애니메이션 <핑퐁>을 추천하겠다. 원작자와 연출을 맡은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협업이 좋았다. 대중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지브리 식의 재패니메이션 스타일과는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줄 작품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길 바라는 스타일의 영화다.
제작자인 연상호 감독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어린시절, 전체관람가 영화를 보면서 활기 넘치게 웃고 떠들며 즐겼던 극장 분위기를 되살리는 것. 천만 감독의 꿈 치고는 소박한 것 같지만 그래서 더욱 원대한 꿈 같기도 하다. 이성강 감독 역시 지속적으로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간절히 원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애정이 깊은 두 감독의 미래에 투자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갈 일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약간의 티켓 값과 시간만 있으면 되니까.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