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는 북한 사람들에게 예의와 연대를 표하며 북한의 선전 내용을 그대로 담는다. 이 과정에서 북한 체제와 선동예술에 대한 풍자가 블랙코미디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안나가 북한 사람들을 교묘히 속이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만들겠다는 안나의 순수한 열정을 보고 북한 사람들이 격의 없이 대하고, 안나 역시 열린 마음으로 북한 영화인들을 대한 결과다.
안나의 관심사는 북한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괴상한 나라인가에 있지 않다. 호주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적대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은 안나를 자본주의에 대항해 지역을 지키겠다는 한 사람의 영화인으로 대한다. 안나 역시 북한영화를 유치한 선전영화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특화된 장르이자 효과적인 무기로 존중한다. 이러한 안나의 생각은 호주 배우가 북한영화들은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고 꼬집자 “코카콜라 광고도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라고 응수하는 대목이나, “선전선동에서 우리는 늘 피해자”라는 마지막 내레이션을 통해 잘 드러난다. 즉 서구 사회도 자본주의적 선전선동이 난무하고 있기에, 북한식 선전 선동이 특별히 나쁘다고 보지 않는 입장이다. 안나는 섬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침략자를 몰아내는 북한영화를 보면서, 다국적기업의 환경파괴에 맞서 자신의 섬 호주를 지켜야 하는 자신의 위치를 떠올린다. 다만 안나는 북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적은 미국이 아니라 기업(자본)임을 분명히 짚는다.
영화의 말미에 안나가 만든 단편영화 <정원사>가 담겨 있다. 영화에서 북한인들에게 보여준 15분짜리 풀버전에 비해 짧은 11분짜리 편집본이다. <샤인>(1996), <스탠바이, 웬디>(2017) 등을 촬영했던 제프리 심슨 촬영감독이 참여한 단편영화는 나름의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지닌다. 공원의 정원사가 탄층가스개발을 강행하려는 대기업의 기만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으로, 자연을 빗댄 은유, 신념을 가진 노동자계급의 여주인공, 자본주의자 악당, 격투, 다 같이 노래 부르기 등 안나가 분석한 북한영화의 요소가 오마주처럼 들어 있다.
영화는 호주의 탄층가스개발을 막지 못했지만, 시드니에서만은 막을 수 있었다는 안나의 후기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강한 적을 물리치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민중의 힘으로 강한 적을 물리친다는 것은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가져야 할 믿음이자 ‘우리의 무기’라고 말하는 안나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감동적이다. 바로 그러한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북한에 갔기 때문에 추방당하지 않고 북한 영화인들과 인간적인 교감과 동지적 연대의식을 나눌 수 있었으리라.
완성된 다큐멘터리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를 본 북한의 반응은 어땠을까. 안나의 전언에 의하면 “북한 관객에게 공개할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과 다행히 영화에 등장한 북한 사람 중 불이익을 당한 이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남북 교류의 물꼬가 터지기 직전에 개봉되어, 북한 체제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려준다. 이제 예술, 보건, 여성 등 각 분야에서 북한과의 교류가 시작될 것이다. 이때 남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은 지니되 북한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잊지말 것. 내 삶의 문제를 먼저 돌아보고,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지로 연대할 것. 북한을 먼저 만나본 안나가 남한사람들에게 보내는 값진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