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은 배우나 감독의 몫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베놈>은 아마도 톰 하디 주연의 영화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재개봉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경우에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해 보인다.
이렇게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배우나 감독을 섭외하는 사람이 제작자다. 프로듀서라고도 부르는 이들이 뒤에서 배우나 감독을 조종(?)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제작자의 이름이 유명해지기도 한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가운데 몇몇의 이름은 국내 관객에도 익숙한 편이다. 최근 그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누가 있을까. 시나리오 단계부터 섭외, 촬영, 배급, 홍보까지 영화가 만들어지기는 거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를 만나보자.
케빈 파이기
Kevin Feige
마블 팬이라면 다 아는 이름. ‘마블 수장’이라는 호칭이 너무나 익숙한 사람. 케빈 파이기는 마블 스튜디오의 CEO이자 영화제작자다. 1973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파이기는 뉴저지에서 성장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TV 드라마를 만들던 제작자였다. 집안의 영향이었을까. 그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영화과에 6수 끝에 입학했다. USC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조지 루카스, 론 하워드, 로버트 저메키스 등이 다닌 학교다.
케빈 파이기는 2000년 <엑스맨>으로 자신의 이름을 마블 영화의 크레딧에 처음 올렸다. 당시 그는 로렌 슐러 도너라는 제작자 밑에서 일했다. 도너는 <오멘>(1976), <슈퍼맨>(1978), <구니스>(1985), <리썰 웨폰>(1987) 등을 연출한 리차드 도너 감독이자 제작자의 아내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 꽤 이름난 제작자였던 도너는 마블 유니버스에 대한 파이기의 방대한 지식에 놀라 <엑스맨>(2000)에 그를 합류시켰다. 이후 그는 케빈 파이기를 당시 마블 스튜디오 대표 아비 아라드에게 소개했다. 이후 2007년 파이기는 본격 출범한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가 됐다. 코믹스의 영화 판권을 팔던 마블이 직접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파이기에게 책임을 맡긴 것이다. 이후 그의 행적은 다들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가 만들어낸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는 전 세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마블 팬들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캐슬린 케네디
Kathleen Kennedy
‘케네디? 누구?’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겠다. 단,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캐슬린 케네디의 이름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최근 <스타워즈> 영화들을 망친 원흉으로 지목 받고 있다. 좋은 이유든 나쁜 이유든 케네디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제작자 가운데 한 명이다.
케슬린 케네디는 1953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샌디에고 지역 방송국에 다니던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비서로 일하게 되면서 영화계에 들어왔다. 그때가 1979년이었다. 처음 케네디는 타이핑이나 하던 비서였으나 뛰어난 아이디어로 제작진에 포함됐다. 이후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스필버그 감독의 <레이더스>(1981)에 참여했고 <ET>를 통해 제작자 크레딧을 달았다. 또 자신보다 어쩌면 더 유명한 제작자이자 남편인 프랭크 마샬과 함께 스필버그의 영화제작사로 잘 알려진 앤블린 엔터테이먼트의 공동설립자가 된다. 앰블린에서 그는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저메키스,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과 함께 작업했다.
이후 남편과 케네디/마샬이라는 제작사를 세운 케네디는 주로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했다. 케네디의 필모그래피를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인디아나 존스>, <그렘린>, <빽 투 더 퓨처>, <후크>,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우주 전쟁>, <뮌헨> 등을 제작했다. 그는 분명 아카데미 공로상인 어빙 G. 솔버그상을 받을 만했다.
그녀의 위상이 달라진 건 2012년 이후다. 루카스 필름의 공동 대표였던 케네디는 조지 루카스가 회사를 디즈니에 넘기고 떠나면서 단독 대표가 됐다. 이후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의 총책임자가 된 그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팬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그의 계약기간은 2021년까지라고 알려져 있다.
제이슨 블룸
Jason Blum
제이슨 블룸은 몰라도 블룸하우스라는 제작사 이름을 들어봤을 거라 믿는다. 새 영화 <할로윈>으로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도 한 제이슨 블룸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저예산 공포영화를 통한 수익의 극대화를 일궈낸 블룸하우스 신화를 대표한다.
1969년 LA에서 태어난 제이슨 블룸의 경력은 미라맥스라는 제작사에서 시작된다. 영화팬이라면 기억할 이름, 미라맥스는 다음에 다룰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만든 회사다. 4년간 미라맥스 직원이었던 그는 2000년 독립하며 블룸하우스를 설립랬다. 그는 1만 5000달러로 만든 저예산 공포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전 세계에서 약 2억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성공가도에 올랐다. 이후 제임스 완 감독과 함께 한 <인시디어스> 시리즈, <더 퍼지> 시리즈 등으로 공포영화의 명가로 기반을 튼튼히 했다. 블룸하우스는 <23 아이덴티티>,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작 <겟 아웃> 등을 통해 점점 진화하고 있다. 개봉을 앞둔 <할로윈>은 존 카펜터가 연출한 공포영화 고전 <할로윈>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작품이다.
제이슨 블룸은 공포영화만 제작하지 않는다. 2014년 데이미언 셔젤 감독 장편데뷔작 <위플래쉬>를 제작한 게 눈에 띈다. <위플래쉬>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이다. 또 HBO의 TV 시리즈 <노말 하츠>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동성애를 다룬 작품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하비 웨인스타인
Harvey Weinstein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은 성추행 파문의 주인공. 미투(#MeToo) 운동의 시작점. 하비 웨인스타인은 정말 잘나가던 제작자였다. 한때 전 세계 영화팬들이 가장 좋아하던 제작자이기도 했다. 2003년 ‘씨네21’은 ‘할리우드 명 프로듀서 3인전’이라는 제목으로 하비 웨인스타인을 조엘 실버, 스콧 루딘과 함께 소개
한 특집을 보도했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의 화려한 시절을 살펴보자.
1952년 뉴욕에서 태어난 웨인스타인은 동생 밥 웨인스타인과 항상 함께 언급된다. 두 사람은 1979년 미라맥스를 설립한다. 미라맥스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발굴하면서 유명해졌다. 웨인스타인과 타란티노 감독은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부터 거의 모든 영화를 함께 했다. <펄프 픽션>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흥행에도 성공한 웨인스타인은 이후 거침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2005년 웨인스타인 컴퍼니를 설립한 그는 IMDb 기준, 327편의 제작자 크레딧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유명한 작품만 추려보면 이렇다. <트루 로맨스>. <잉글리쉬 페이션트>, <스크림>, <굿 윌 헌팅>, <벨벳 골드마인>,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갱스 오브 뉴욕>, <시카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 두 편의 <킬 빌>, <화씨 9/11>, <씬 시티>, <데쓰 프루프>, <캐롤>, <윈드리버>, <싱 스트리트>.
성공한 제작자지만 웨인스타인은 성추행 사건 이전부터 평판이 좋지는 않았다. 감독의 편집권을 침범하는 경우도 많았다. 할리우드의 거물로 불리던 웨인스타인의 몰락은 한순간이었다. 그는 만든 회사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지난 2월 파산 신청을 했다.
바바라 브로콜리
Barbara Broccoli
인지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 있지만 바바라 브로콜리를 소개한다. 브로콜리는 <스타워즈>를 이끄는 캐슬린 케네디와 비교되는 제작자다. 그는 아버지 앨버트 R. 브로콜리를 이어 제임스 본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두 여성 제작자가 남성 팬들이 득실득실한 유구한 전통의 프랜차이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1960년 LA에서 태어난 브로콜리는 말하자면 금수저 집안의 딸이다. 그는 제임스 본드 영화 현장에서 자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는 그를 전 세계 로케이션 현장에 데리고 다녔다. 1983년 <007 옥터퍼시>가 브로콜리의 첫 제작자 크레딧 영화다. 이때 제대로 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007> 시리즈는 브로콜리 집안의 가족 사업이었다. 아버지가 그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려주는 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었다.
브로콜리가 본격적으로 제작자 역할을 하기 시작한 건 1995년작 <007 골든아이>부터였다. 이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복 오빠 마이클 G. 윌슨과 함께 이언 프로덕션(EON Production)을 이끌었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발탁하고 제작한 <007 카지노 로얄>은 시리즈를 부흥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지금 그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하기로 한 <본드 25>(가제) 이후를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덧. 그밖에 할리우드를 좌지우지하는 제작자들은 더 있다. 사실 이들이 더 유명하다. 이름을 들으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피터 잭슨, 마이클 베이, 리들리 스콧, J.J. 에이브럼스 그리고 제리 브룩하이머.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최근 제작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