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영상화 단계부터 원작 코믹스의 분위기와 유머, 질감까지 그대로 녹여내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스파이더맨'을 창조했다. 이 색다른 히어로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곳은 어디일까. 바로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이다. 기자는 영화 개봉을 약 일주일 앞두고,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 본사를 찾아가 영화를 탄생시킨 금손(제작진)들을 만나고 왔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감독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맨

출연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인펠드, 니콜라스 케이지, 제이크 존슨, 리브 슈라이버, 마허샬라 알리,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개봉 2018.12.12.

상세보기

AM 9:30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 본사는 미국 LA 컬버시티에 위치해있다. 스튜디오는 심각한 교통체증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여느 관광 스폿이 아닌 한적한 도심 속에 어우러져 있었다. 픽업 차에서 내린 기자는 방문증을 받고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아담하고 조용하다는 것.

담당자와 만나기로 한 본관 로비에 앉아 기다리며 주위를 구경했다. 로비의 복도 양옆에는 그동안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의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곧 기자를 안내해 줄 담당자와 만났고, 우리는 본사 캠퍼스 내에 있는 자그마한 커피 부스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한 후 본격 투어에 들어갔다.


AM 10:00 _ 비주얼 이펙트(시각 효과) 슈퍼바이저 대니 디미언(Danny Dimian)

대니 디미언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탄생했을 여러 작업실이 모여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스튜디오의 사무실은 꽤 한산했다. 가장 먼저 만난 이는 영화의 시각 효과를 담당한 비주얼 이펙트 슈퍼바이저 대니 디미언이었다.

우선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필자를 위해 시각 효과가 덧붙였던 영화의 몇몇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관람했다. 눈이 부실 정도의 총 천연 원색 비주얼과 코믹스를 연상시키는 컷분할 장면과 효과들이 눈에 띄었다. 대니 디미언은 "제작 초반부터 코믹스 스타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며, "코믹스가 갖고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요소들을 전부 참고했다"고 말했다. "실제에 가깝게 표현하기보다는 드로잉의 아름다움, 디자인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고.

대니 디미언은 트레일러 공개 당시 화제가 된 '피터 B. 파커의 햄버거 먹방 장면'을 통해 인물들의 표정 변화에 어떻게 디테일을 주는지도 보여주었다. 실제 아티스트들이 직접 손으로 그려 디자인한 형태에 시각효과 팀이 시뮬레이션을 합성해 작업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캐릭터의 얼굴에 여러 선을 그린 뒤 애니메이터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캐릭터에 감정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애니메이션 속 배경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선'을 활용해 어떻게 인물들의 빠른 움직임을 표현하는지 등의 개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이후 만난 애니메이션 디렉터 조슈아 비버리지에게 보다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AM 10:30_애니메이션 디렉터 조슈아 비버리지(Joshua Beveridge)

조슈아 비버리지

대니 디미언의 편집실에서 나와 이번엔 애니메이션 디렉터 조슈아 비버리지의 편집 공간을 찾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놀랍게도 컴퓨터로 글만 쓰는 기자의 자리와 다를 바 없이 두 대의 컴퓨터 모니터가 있을 뿐이었다. 그의 옆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그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지켜보며 설명을 들었다.

스파이더맨은 다른 어떤 히어로보다 날렵하다. 특히나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마일스 모랄레스(이하 마일스) 스파이더맨은 실제 배우가 연기한 것보다 더 자유자재로 날쌔게 움직인다. 조슈아 비버리지는 내게 마일스의 바디 컨트롤 폼을 보여줬다. 마일스의 팔, 다리, 몸통, 손가락 등이 그려진 인체 단면 안에 기내 좌석표처럼 번호가 쓰여 있었고, 이를 설정해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스파이더맨은 마스크 쓴 얼굴도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마스크에만 적용되는 컨트롤 폼도 필요한데 이것에만 적용되는 컨트롤만 해도 엄청나게 많았다. 캐릭터의 표정을 표현할 때는 얼굴 주위에 아주 많은 선을 직접 손으로 그린 뒤 그 선을 뾰족하게, 둥글게 조절하며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한다.

프라울러에게 쫓겨 피터 B. 파커와 마일스가 뉴욕 대로 한복판에서 자동차들 틈 사이로 달리며 거미줄을 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는 이 장면에 "팝아트처럼 생생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스파이더맨이 움직이면 그 움직임의 잔상이 마치 일그러지고 해체된 것처럼 잉크 자국 같은 것이 남는데 이를 그대로 둔 것이다. 아마 팝아트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캐릭터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도 이렇게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니. 디테일한 설명을 들었지만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증은 '도대체 한 시퀀스를 만드는 데 얼마만큼 오래 걸리는 걸까'라는 단순한 것이었다. 그는 "영화에 총 50 시퀀스가 나오는데 1년 반 정도 애니메이션 작업했으니 한 시퀀스에 몇 달 정도 걸린 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러 팀이 작업하고 있어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만약 한 사람이 작업한다면 1~2초의 장면을 애니메이션화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팀이 영화 전체에 군중들 중 한 명 혹은 배경으로 스탠 리 모습을 숨겨두었다는 비하인드도 알려주었다. 그중 한 장면을 알려줬는데 앞서 설명했던 뉴욕 대로 시퀀스 후반부 즈음, 횡단보도에서 지쳐 쓰러져있는 피터 B. 파커와 마일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행인 한 명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손으로 짚어주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정도로 숨겨놓았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장면에서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길. 이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봤음에도 눈썰미가 좋지 못한 기자는 그 장면에서 스탠 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AM 11:00_ 보이스 담당 패트릭 발린(Patrick Ballin)

패트릭 발린

다음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영화 촬영 메이킹 영상 혹은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서나 많이 봤던 녹음실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번 영화에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사운드를 담당한 패트린 발린은 인사를 건네더니 한번 녹음 체험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갑자기 모니터와 마이크가 있는 이 공간이 무섭게 보였다. 내게 주어진 대사는 아주 짧았다. 바로 TV 모니터에 띄워진 저 장면에서 피터 B. 파커의 대사 후 마일스의 대사 "I think its cool!"을 읽으면 되는 것. 그런데 저 짧은 대사마저도 타이밍을 놓쳐 몇 번이나 실패했다. 목소리가 녹음된 화면을 보는 건 재밌고 신기한 경험이지만 무척이나 부끄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배우들이 녹음할 때는 이런 과정을 얼마나 반복할까. 그는 "보통 최소한 세 번 이상 반복한다고 한다. 어떤 배우는 'Hello'만 50번을 녹음한 적도 있다"고 답했다.

샤메익 무어 녹음 장면

그는 기자가 체험했던 방식처럼 모든 사운드를 따로 저장해 작업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인물이 대사할 때 다른 캐릭터들의 대사를 끄고 켤 수가 있는 것이다. 배우들이 캐스팅되기 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대사를 녹음한 뒤 캐스팅된 배우들이 5~8번 방문해 녹음한다고 한다. 작업 도중에도 계속 스토리와 대사들이 수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화면을 보고 녹음을 하는 방식뿐 아니라 배우들의 녹음 현장을 촬영해 배우들의 표정과 퍼포먼스를 오히려 애니메이터들이 활용하기도 한다.

니콜라스 케이지 녹음 장면
제이크 존슨 녹음 장면

목소리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훌륭하지만 그는 최고의 배우로 스파이더맨 누아르를 연기한 니콜라스 케이지와 피터 B. 파커 역의 제이크 존슨을 꼽았다.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직접 생각해낸 대사들을 자유롭게 치며 재미있는 장면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AM 11:20_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 캠퍼스 투어

잠깐 편집실 탐방 사이 짬을 내 소니 픽쳐스 애니메이션 캠퍼스를 거닐었다. 하얗고 자그마한 건물들 사이로 미로 같은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곳곳엔 직원들을 위한 휴게공간도 있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여러 군데 심어져 있어 마치 작은 공원을 연상시켰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답게 곳곳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회사 내 작은 이벤트나 휴게 공간이기도 한 이곳엔 소니 픽쳐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자세히 찾아보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캐릭터들도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요즘은 스파이더맨 기간(?!)이라 그런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캐릭터들이 캠퍼스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본관 입구 천장에 매달려 맞이하는 익살스러운 스파이더맨, 캠퍼스 산책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줄타기하고 있는 스파이더맨 찾기를 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또한 미처 사진으로 담지 못했지만,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엘리베이터에 그려져 있던 거미 문양이 그대로 그려져 있기도 했다.

회사 안에 위치한 시사실도 잠깐이지만 구경할 수 있었다.

영화가 완성되어 개봉을 앞둔 시점이라 그런 걸까. 사무실에서도 캠퍼스에서도 직원들의 모습을 만날 수 없었는데 그나마 이곳은 제법 북적였다. 회사의 카페테리아로 직원들을 위한 간단한 음식과 빵, 음료들이 비치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이제 막 오픈했는지 직원들이 줄을 서서 음식을 가져다 먹고 있었다.


AM 11:40_모델링 슈퍼바이저 마빈 킴(Marvin Kim)

마빈 킴

정신없이 따라다니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일정이다. 모델링을 감독한 마빈 킴과의 만남이다. 이름과 외모부터 친숙한 느낌이 든다고? 맞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눈치챘겠지만 이번 영화에서 할리우드로 간 한국인 제작진들이 다수 참여했다.

그는 기자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타지에서 들은 첫 한국어라 그런지 더욱더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작업하는 자리엔 온갖 피규어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고, 스파이더맨 티셔츠까지 입고 있어 스파이더맨에 대한 그의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빈 킴은 기자를 배려해 한국말로 작업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영화의 캐릭터 모델링과 3D 모델링을 담당했다. 주요 캐릭터들의 스타일과 형체는 물론 영화 배경 속 구석에 있는 이파리의 움직임 같은 사소한 것까지 만든다. 우선 현실감 있는 캐릭터의 형체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캐릭터들 간의 통일감을 위해 눈, 머리 사이즈를 비슷하게 맞춘다(사진 속 모니터에 보이는 작업 과정). 2d 디자인에 불과했던 그린 고블린의 3d 비주얼도 모델링을 통해 만들었다고 한다. 마일스의 집 내부도, 뉴욕 타임스퀘어 건물들을 만드는 것도 모델링 팀의 몫이다.

그는 만드는 데 장장 6개월이 걸린 시퀀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바로 킹핀의 차원 이동기가 폭파하는 장면이다. 이 공간 안의 의자, 컴퓨터, 쓰레기, 심지어 킹핀의 옵저베이션 안에 놓여 있는 여러 대 컴퓨터 모니터 안에 작동되고 있는 화면까지 전부 만들어야 했다. 모델링 과정에서도 코믹스 스타일을 주기 위해 일부러 '선'을 더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폭파되는 모습을 모델링 한 건물에 디자인을 덮는 식으로 표현한 것도 코믹스 효과를 위한 장치다. 이런 방식의 모델링은 처음이라 이 작업이 어렵지만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업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영화가 궁금해졌다. 하필 방문 시기가 국내 언론 시사회 일정과 겹쳐 필자도 돌아와서야 일반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들의 열정과 고생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여러분도 제작진의 정성 어린 한 땀 한 땀이 담긴 결과물이 궁금해졌다면 12월 12일 개봉일 날 확인해보시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3차 예고편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