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하루> 스틸 이미지
"어떻게 오늘, 이래요?"

오늘 처음 만난 남자(이와세 료), 지금 만나는 남자(권율), 전에 만났던 남자(이희준)까지. <최악의 하루> 속 은희는 하루에 세 남자를 마주합니다. 세 남자를 마주한 우연이 은희의 하루를 최악으로 만들죠.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길래? 스포라서 말할 순 없지만, 이 상황이 은희에게 '땅 파고 죽고 싶을 만큼 최악의 기분'을 선사한 건 분명합니다. 은희를 위로하기 위해 은희의 친구들을 모아봤어요. 어쩌면 치열하게 연애 중인 여러분의 친구들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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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영화들의 스포일러성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애의 목적> 스틸 이미지
연애의 목적

유림(박해일)은 자신의 학교로 부임한 한 살 연상의 미술 교생 홍(강혜정)에게 자꾸 치근덕거립니다. 필터 없이 제 할 말을 다 하는 그는 불쾌할 정도로 저돌적이죠.(박해일의 연기가 캐릭터를 납득시켰다는 후문) 홍은 상처가 있는 여자입니다. 연애에서도, 사회에서도 버림받은 경험이 있죠. 그녀는 가볍게 다가오는 유림을 밀어냅니다. 그러나 영화 속 여느 남녀 관계가 그렇듯, 유림은 진심으로 홍을 사랑하게 됩니다. 홍도 유림의 진심을 느끼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 두 사람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지니고 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두 사람의 사이가 공개되고, 홍의 비밀까지 밝혀지게 되죠. 모든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 홍. 그녀는 다시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됩니다. '진심'을 믿었다 크게 데인 홍은 더 이상 사랑에 기댈 힘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쏠린 화살을 전부 유림에게로 돌려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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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거짓말을 하거나 유림을 배신한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유림이 억울하지 않은 것도 아니죠. 두 사람의 마지막을 보고 있자면 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숨이 턱 막힐 정도입니다. '연애의 목적'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렇게나 험난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영화예요.


<연애의 온도> 스틸 이미지
연애의 온도

동희(이민기)와 영(김민희)는 3년 차 비밀연애 커플이었습니다. 둘은 헤어진 상태죠. 그러나 서로에게 미련이 남은 건 분명해요. 사소한 것들을 핑계로 자꾸 마주하니까요.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납니다. 동희의 '로또 이론'에 따르면 헤어진 커플이 다시 붙어 잘 될 확률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죠. 우리는 깨진 커플에겐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동희와 영은 그저 '데이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꾸역꾸역 놀이공원으로 향합니다. 아무도 없는 식당, 영은 정성스레 싼 도시락을 내놓습니다. 맛없어? 맛있어. 이것도 좀 먹어봐. 응, 맛있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두 사람. 이 장면의 대사만 되새겨도 체할 것 같지 않나요? 음료수를 사 오겠다는 핑계로 밖에 나가서 주저앉아 펑펑 울던 영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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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에게 어떤 말도 하기 싫을 때, 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연애의 막바지가 닿았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껴봤을 감정이죠. 미련한 걸 알면서도, 그(혹은 그녀)에 대한 모든 감정이 소진될 때까지 관계의 끈을 놓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로 받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6년째 연애중> 스틸 이미지
6년째 연애중

"너무 오래 만나니까 이제 동생 같고 딸 같고 그래요". 다진(김하늘)은 왜 재영(윤계상)과 6년이나 연애 중인 걸까요? 오래된 연인은 다 이런 것일까요? 다진과 재영은 연인 사이에서의 '편함'이 어디까지 통용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편안함과 비례하는 '시간'이란 무게에 짓눌려 있던 두 사람. 이들 앞에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며, 평생 변함 없을 것 같던 이들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하죠.

서로에게 소원해짐을 확연히 느끼고 있던 어느 날, 다진은 재영에게 묻습니다. "너 나랑 있으면 행복해? 너 왜 내 옆에 살아, 굳이?", 그러자 재영이 대답합니다. "왜긴, 우리 결혼할 사이잖아, 아니야?", "이런 이야기 그만 좀 하자. 그냥 편하게 흘러가면 안 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다진을 피곤해하는 재영. 그는 회사 일이 있다며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회사 일이란, 회사에서 썸 타고 있는 아르바이트생과 만나는 일이죠. 다진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길에 두 사람의 모습을 고스란히 눈에 담게 됩니다.

<6년째 연애중> 스틸 이미지

이들은 헤어지게 될까요? 헤어진다고 해도 완벽한 남이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세월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들은 헤어지는 게 답인 것 같습니다. 편안함을 가장한 무시를 계속하고, 익숙함을 대신할 새로움에 흔들릴 거라면 말이죠.


<러브픽션> 스틸 이미지
러브픽션

나는 너를 방울방울해. 연인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다 동원해 깔깔 웃게 만들어 줬으면서, '스쿨버스'라니요? 현실 공감 불러내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러브픽션>은 연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누군가의 모습을 구주월(하정우)이란 캐릭터에 잘 녹여낸 영화입니다.

희진(공효진)은 개성적인 여자입니다. 그녀의 매력에 주월은 바로 빠져들죠. 그녀와 사랑한지 8개월, 그는 그녀를 이루는 수많은 단어들을 하나하나 적립해나가던 중 한 단어에서 멈춰 서고 맙니다. 그녀가 학교에 다닐 시절, 많은 남자들을 만나 '스쿨버스'라는 별명을 지녔다는, (그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소문을 들은 다음 순간부터죠. 그는 결국 그녀에게 핏대를 세우며 화를 냅니다. 이유는 다를 게 없어요. 그녀가 '스쿨버스' 소문의 주인공이기 때문이죠.

<러브픽션>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멋대로 생각하며 인신공격까지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겹쳐지는 많은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왜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는 걸까요? 과거는 지나가면 그만인데 말이죠. 이기적인 사람은 연인으로서 최악이라는 사실, 주월은 모르는 게 분명합니다.


<우리 선희> 스틸 이미지
우리 선희

은희 친구 선희를 데려왔습니다. 영화과 졸업생인 선희(정유미)는 미국 유학 추천서를 받기 위해 최 교수(김상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희가 자신의 '인생 여자'였던 문수(이선균)와 선배 감독 재학(정재영)까지 만나게 되죠. 이들은 모두 같은 소리를 합니다. "선희야, 너 거기서 뭐 해?"

정작 선희는 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세 남자의 입장은 다릅니다. 자신이 선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그녀를 자신 마음대로 정의 내리며, 그것이 맞다고 믿고 있죠. 영화의 마지막 상황은 어쩌면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장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선희>

선희와 창경궁에 온 최 교수. 선희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문수와 재학을 마주합니다. 선희를 보러 왔다는 문수. 물론, 재학도 마찬가지죠. 엥? 선희가 얘네들과 만나는 사이였어? 선희를 원하는 세 남자가 한 공간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장면은 웃음과 동시에 스릴까지 선사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 몇 꼽히지 않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죠. 선희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세 남자끼리 창경궁을 나서죠. 그들은 끝까지 '자신이 아는' 선희에 대해 정의내립니다. 정작 선희는 누구의 여자도 아닌데 말이에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