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해도 흥겨워지는 소리, 눈을 뗄 수 없이 빠른 발놀림의 탭댄스. <스윙키즈>(12월 19일 개봉)는 한국전쟁 중 탭댄스로 우정을 쌓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영화에서 탭댄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마도 처음인 듯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선 꾸준히 등장했다. 이 기회에 할리우드에서 탭댄스로 유명해진 인물들은 누가 있는지 정리해봤다.
진 켈리
Gene Kelly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연 겸 공동 연출. 이 영화만으로도 탭댄스 배우로서의 인지도는 감히 세계 1위라 할 수 있다. 진 켈리는 어린 시절부터 댄서로 활동했다. 한때 법학을 공부했으나 전업 댄서가 되기 위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1942년, <포 미 앤 마이 갈>로 할리우드에 발을 들였다. 2년 후, 당대 최고 여성 배우 리타 헤이워드와 <커버 걸>에 출연하며 톱스타의 자리에 앉았다.
어린 시절부터 단련한 춤 실력도 일품이었지만, 영화라는 매체에 춤을 옮기는 기획력이 그의 장기였다. <닻을 올리고>(1945)에선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함께 춤을 췄고, <춤추는 대뉴욕>(1949)에선 스튜디오를 벗어나 길거리에서 뮤지컬 장면을 촬영했다. 그의 커리어 정점은 당연히 <사랑은 비를 타고>(1952). <춤추는 대뉴욕> 스탠리 도넌 감독과 함께 영화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뮤지컬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막 태동한 유성 영화를 받아들이는 시대상을 인기 배우와 무명 연극배우의 사랑으로 풀어냈다.
프레드 아스테어
Fred Astaire
한국에선 진 켈리보다 인지도가 낮지만, 프레드 아스테어는 미국에서 뮤지컬의 대부로 통한다. 그는 진 켈리가 활동하던 1940년대 이전, 할리우드에서 댄스영화의 부흥을 견인한 배우. 어린 시절 보드빌(vaudeville, 1890년대 중엽에서 1930년대초 사이에 미국에서 인기 있던 가벼운 쇼) 무대에서 활동한 그는 1933년 <댄싱 레이디>로 데뷔한 후 <톱 햇>(1935), <스윙 타임>(1936), <브로드웨이 멜로디 오브 1940>(1940) 등으로 유명해졌다.
진 켈리가 “영화 속 춤의 역사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함께 시작됐다”고 평할 만큼 아스테어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할리우드의 스타 시스템은 잘생긴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프레드 아스테어는 스크린에서 춤을 추며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을 선사했고,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무엇보다 탭댄스뿐만 아니라 왈츠, 탱고 등 상대 여성 배우와 합을 맞춘 우아하고 신사적인 춤사위는 프레드 아스테어를 독보적인 댄스 배우로 만들었다. 또한 뮤지컬 영화가 서서히 몰락한 이후에도 <그날이 오면>, <타워링>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진저 로저스·엘리노 포웰
Ginger Rogers·Eleanor Powell
댄서 배우를 논하면서, 혹은 프레드 아스테어를 언급하면서 잊어선 안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진저 로저스. 두 사람은 1933년 <플라잉 다운 투 리오>에서 만나 <톱 햇>, <로버타>, <스윙 타임>, <플로우 더 플릿>, <쉘 위 댄스> 등 10편의 영화에서 함께 했다. 위키백과엔 ‘프레드 아스테어 앤 진저 로저스’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다. 진저 로저스는 프레드 아스테어가 만난 수많은 파트너 중에서도 그의 우아한 춤사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 배우였다.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한쌍이라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두 사람을 따라 했던 가짜 배우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진저와 프레드>를 연출하기도 했다.
진저 로저스만큼 아스테어와 환상의 짝으로 뽑히는 배우는 엘리노 포웰. 10대 시절부터 가수로 활동한 그는 1935년 <조지 화이트의 1935 스캔달>로 할리우드에 입성하자마자 독보적인 댄서 배우로 등극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는 딱 한 작품,<브로드웨이 멜로디 오브 1940>에서 함께 했으나 두 사람 다 최전성기의 실력으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탭댄스 장면을 남겼다. 이후에도 레드 스켈튼과 함께 한 <쉽 아호이>(1942), <아이 두드 잇>(1943) 등으로 댄서 배우의 족적을 남겼다.
빌 로빈슨 & 셜리 템플
Bill Robinson & Shirley Temple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중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가 TV를 보다 탭댄스를 따라 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여기 삽입된 영화는 셜리 템플과 빌 로빈슨의 <리틀 코로널>. 이는 당시 할리우드에서도 가장 신선한 조합이었다. 중년의 흑인 댄서와 어린 백인 아역배우의 만남이었으니까. 두 배우는 <꼬마 반항아>, <써니브룩 농장의 레베카>, <저스트 어라운드 더 코너> 등에서 함께 했다.
5살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빌 로빈슨은 ‘보쟁글스’(Bojangles)라는 고유의 별명도 얻었다. 셜리 템플과 함께 출연한 그는 자신만의 리드미컬한 안무를 통해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경쾌하고 간결한 댄스를 선보였다. 할리우드 스타라기엔 평생 14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를 빼놓고 뮤지컬 영화를 논할 수 없는 댄서 배우 1세대라 할 수 있다.
니콜라스 형제
Fayard Nicholas & Harold Nicholas
앞서 소개한 배우들이 남녀 듀오로 다소 로맨틱한 느낌이라면, 파야트 니콜라스와 해롤드 니콜라스 형제는 기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박수를 받았다. 둘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부모 밑에서 자라며 음악을 가까이했고, (빌 로빈슨을 포함한) 보드빌 출신의 유명 스타들을 보며 탭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둘은 1930년대에 필라델피아에서 무대에 올랐고, 이를 본 사무엘 골드윈 프로듀서가 이들을 영화에 기용했다. 1936년 <더 빅 브로드캐스트 오브 1936>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활동 자체는 많지 않으나 1940년대에 쏟아지는 뮤지컬 영화들에서도 이들만의 스타일리시하고 독창적인 댄스들은 관객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선사했다. 특히 <폭풍우의 날씨>의 계단 퍼포먼스는 지금 봐도 입을 다물 수 없는 명장면이다.
그레고리 하인즈
Gregory Hines
1980년대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이라면, 그레고리 하인즈를 기억할 것이다. 형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탭댄스를 배운 그는 8살에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만큼 재능을 타고났다. 그는 1981년 멜 브룩스 감독의 <세계사>로 할리우드에 얼굴을 비췄고, <백야>(1985)와 <승리의 탭 댄스>(1989)로 미국 최고의 탭댄서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한 편을 탭댄스로만 이끌어가는 <승리의 탭 댄스>를 보노라면 그가 왜 미국 최고의 탭댄서로 극찬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57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제이미 벨
Jamie Bell
탭댄스 배우 계보의 마지막은 제이미 벨에게 안겨줘야 한다.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역의 제이미 벨은 2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 그는 실제로 6살 때부터 발레를 비롯한 다양한 춤을 익혔고, 발레를 배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벨의 과거는 탄광촌에서 발레를 배우면서 가족과 대립하는 빌리의 삶과 겹쳐져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극중 빌리는 발레를 가르치려는 선생님과 형의 대립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의 막바지에서 제이미 벨이 선보인 탭댄스는 이 댄스 천재가 보여주는 수많은 춤 가운데서도 특히 인상적이다. 할리우드식 탭댄스가 유쾌하고 발랄했다면 이 장면의 탭댄스는 폭발적이고 격동하는 에너지를 그대로 보여주며 많은 팬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탭댄스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계보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지금까지도 뮤지컬 영화엔 탭댄스가 자주 등장하는데, 지금 활동 중인 배우들의 탭댄스 장면도 몇 개 모아봤다. 보기만 해도 발을 구르게 되는 매력적인 장면들이다.
<시카고>의 한장면. 리차드 기어는 이 장면을 위해 3개월간 탭댄스를 연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