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인 <트랜스포머>라니?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 가장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캐릭터 범블비의 솔로 무비 <범블비>의 개봉(12월 25일)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다. <범블비>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지구에 내려온 범블비가 찰리(헤일리 스테인펠드)라는 소녀와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스핀오프인 만큼 기존 시리즈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 자체로 완벽한 영화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트랜스포머> 시리즈 <범블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홍콩에 다녀왔다.


화려한 호텔 복도 끝에 인터뷰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날 <범블비> 감독 트래비스 나이트와 주연 배우 헤일리 스테인펠드, 존 시나, 그리고 제작을 맡은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를 만났다. 트래비스 나이트는 제 89회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작품상 부문에 후보로 오른 <쿠보와 전설의 악기>를 연출한 감독으로 감성적인 애니메이션 연출이 주특기다. 기계를 좋아하는 소녀 찰리 역은 <지랄발광 17세>에서 주연 네이딘을 연기한 헤일리 스테인펠드가 맡았다. <비긴 어게인>에서 댄(마크 러팔로)의 딸 바이올렛을 맡아 한국에서도 얼굴이 익숙한 배우다. 존 시나는 WWE 레전드 챔피언 출신 배우로 정부의 일급 비밀 기관인 섹터-7의 번스 요원으로 등장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제작자인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도 자리에 함께 했다.

감독부터 배우, 제작자까지 만날 수 있다니. <범블비>에 대해 궁금했던 모든 것들을 전부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홍콩에서 진행된 행사인 만큼 아시아 각국에서 온 기자들이 저마다의 질문을 던졌다. 덕분에 영화의 핵심 포인트부터 인상 깊은 에피소드 등 영화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왼쪽부터)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 헤일리 스테인펠드, 존 시나, 로렌조 디 보나벤츄라


애니메이션 경력만 있는 감독, 트래비스 나이트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은 <쿠보와 전설의 악기>을 통해 감성적이고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그는 애니메이션 감독임과 동시에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라이카의 CEO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애니메이션 쪽에선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범블비>는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스핀오프 영화인데 트래비스 감독은 지금까지 실사 영화, 게다가 대규모 할리우드 영화를 맡은 적이 없다. 어떻게 <범블비>에 합류하게 됐나.

=트래비스/ 2년 전에 로렌조(제작자)가 <트랜스포머> 영화에 참여하겠냐고 제안을 했다. 조금 놀랐다. 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내가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를 이어나갈 만한 후계자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전혀, 정말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고민하면 할수록 이 선택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트랜스포머의 이야기를 다른 방법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렌조는 어떤 이유로 트래비스 감독을 선택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로렌조/ 트래비스 감독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그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다만, 규모가 큰 영화는 마치 대기업 같아서 이를 잘 운영해 나갈 능력도 필요하다. 대규모 영화를 만들게 되면 압박이 상당히 심한데 트래비스 감독은 창의적인 작업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회사 운영 경력도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

-트래비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연출 경력이 <범블비>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로렌조/ 트래비스는 범블비를 만들 때 기존의 범블비와는 다른 모습과 모션을 주자고 얘기했다. 예를 들어, ‘눈을 좀 더 크게 만들자’거나, ‘귀를 위아래로 움직일수 있게 하자’는 식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이니까 이런 걸 얘기할 수 있는 거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렇다면 트래비스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연출한 장면은 무엇인가.

=트래비스 내가 제일 걱정하고, 준비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장면은 찰리와 범블비가 만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만남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머지 장면들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장면을 프로젝트 초반에 촬영해야 했다. 그때만하더라도 헤일리와 내가 그렇게 친하진 않았다. 모든 감정을 다 불러 일으켜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절벽에서 손잡고 뛰어 내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헤일리는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그는 너무 잘해줬다. 이 장면을 촬영한 뒤에 “아, 됐다! 이걸로 영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시리즈와는 달리 주도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범블비>

기존의 <트랜스포머> 시리즈 속 여성들은 대개 조력자로 등장하며 섹시함을 강조했다. 그들은 사건의 중심이 되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이라기보단 화려한 폭발신처럼 볼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범블비>에서는 이러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를 좋아하는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비판이 있었는데, 소녀인 찰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를 의식한 것인가.

=트래비스/ <범블비>는 우리가 전하고 싶은 <트랜스포머> 얘기였다. 수년간 이어지던 <트랜스포머> 영화의 틀에서 벗어난 것이다. 내 회사(라이카)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처음 만든 장편 작품이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었다. 그때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지원을 받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다들 거절했다. 그때 들은 말이 ‘여자 주인공은 애니메이션에 있을 수 없다. 단, 요정이거나 공주라면 가능하다’였다.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난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게 참 문제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이게 안된다, 애니메이션에선 저게 안된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먼저 해결하면 다음번엔 반응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첫 스핀 오프 주인공인데, 헤일리는 대규모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지.

=헤일리/ 그런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이런 변화에 몸 담게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제서야 여성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여성 작가) 크리스티나 호드슨이 <범블비> 각본을 정말 멋지게 써줬다. 찰리와 같은 아직 어린 여성들의 성장을 잘 다뤄줬다.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여성의 목소리로 쓴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


<범블비>도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작품?

홍콩에서 진행된 아시아 행사다 보니 중국 자본, 시장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시장이 거대한 만큼 할리우드 쪽에서는 중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중국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을 의식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중국에서 크게 흥행을 했다. 그렇다면 <범블비> 역시 이러한 요소가 있을까.

-할리우드에서는 인터넷 서비스 및 게임 서비스 전문 기업인 텐센트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하게 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는지.

=로렌조/ 투자를 누가 했느냐에 따라 영화가 바뀌진 않는다. 영화라는 공통적인 언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갖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에 다른 프로덕션들과 함께 작업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느낀 것이 누구나 다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다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은 대규모 시장이기 때문에 간과할 순 없다. 다만, (중국과 할리우드) 양쪽이 영화를 만들 때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는 공통된 것 같다.

-존 시나에게 묻겠다. 중국어를 잘 한다고 들었는데, 중국 시장에서 <범블비>의 전망은 어떨 것 같은가.

=존 시나/ 스토리 자체가 국가에 상관 없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굳이 미국이나 중국 시장에 국한시켜서 보고 있진 않다. 게다가 범블비는 말을 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어떤 문화에서든지 잘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아예 말을 안 하는 건 아니니 번역은 필요하겠지만. 굳이 문화적, 언어적 배경이 필요한 이야긴 아니다.


주연 배우 헤일리 스테인펠드와 존 시나가 말하는 <범블비>

주연 배우들의 이야기와 에피소드도 안 듣고 넘어갈 수 없다.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캐릭터와 닮아 있는지 등 <범블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배우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우선 이틀 전 생일(12월 11일) 축하한다.

=헤일리/ (조금 놀란 듯이) 오, 감사하다.

-영화에서 찰리는 기계를 좋아하는 톰보이 같은 소녀로 등장한다. 실제로도 기계 다루는 걸 좋아하는지.

=헤일리/ 찰리는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다. 그점은 나와 비슷하다. 그러나 찰리가 갖고 있는 기계에 관한 지식에 대해서라면, 아니다. 그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진 않다. 다만 세 살 위인 친오빠가 자동차 레이서여서 자동차에 관한 건 전부 물어봤다. 어떻게 보면 오빠가 사전 같은 역할을 해준 셈이다. 내가 보도듣도 못한 공구를 사용해야 한다거나, 차 관련된 지식을 알아야 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세트에 와서 도움을 줬다.

=트래비스/ 실제로 헤일리 오빠가 범블비 운전을 한 적이 있다. 스턴트 드라이버들이 내가 부탁한 걸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헤일리 오빠가 대신 운전을 해줬다. 당연히, 한 테이크만에 끝났다.

-영화에서 찰리는 싸우면서, 운전도 하고, 게다가 수영까지 해야 하는데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헤일리/ 전부 멋진 경험들이었다. 이 영화를 찍는 동안은 단 한 번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운전을 함과 동시에 연기를 하고, 또 길가에 누군가를 치지 않게 주의하는 것이 어려웠다.

-범블비는 CG니까 허공에서 연기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헤일리/ 그렇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처음엔 ‘차차 익숙해 지겠지’란 생각이었지만 금방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연기를 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부엌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던지 하는 장면은 정말 반갑더라. 범블비와 연기할 때 뛰거나 도망치는 장면도 힘들었지만 역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감정신이었다. 앞에 아무것도 없으니 범블비와 나와의 관계를 충분히 구축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트래비스 감독과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 촬영 한참 전부터 말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서 촬영을 시작했을 때 눈 앞에 있는 것이 테니스 공이 붙어 있는 막대든, 상체 밖에 없는 범블비든 상관 없이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로렌조/ 이런 식(허공에 대고 연기하는 것)으로 작업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헤일리만큼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WWE 레전드 챔피언인 만큼 액션 관련된 캐릭터를 도맡아 왔다. 지금까지 주로 보여줬던 것처럼 액션쪽 역할만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 적 없는지 궁금하다.

=존 시나/ 솔직히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처음엔 액션영화가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게 비즈니스적으로도 옳다고 생각해 그런 역할들만 담당 했다. 그렇지만 그 영화들 자체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들이 그닥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지금까지 내가 출연한 전 작품들을 본 적 없다면 일부러 보진 말길 바란다. (웃음)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보다는 WWE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영화에 애착이 생기더라. 그래서 이번 기회가 굉장히 감사했다. 범블비의 스페어 타이어로만 나와도 기뻤을 텐데 이렇게 좋은 역할을 줘서 정말 좋았다.

-영화에 출연하는 것 중 어떤 점이 힘들었나.

=존 시나/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대단한 열정이다. 2년 넘게 걸리는 제작 과정 뿐만 아니라 완성된 다음 홍보도 만만찮은 일이다.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고, 열정을 가진다면, 또한 관객들이 좋아만 해준다면 난 그냥 하루 종일 이렇게 떠들어도 상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저 기쁘다.

-만약 트랜스포머를 갖거나 될 수 있다면 어떤 트랜스포머가 탐나나.

=존 시나/ 간단하다. 계속해서 이 얘길 해왔는데, 트랜스포머 중 ‘존 트론’이란 걸 만들어 달라고 얘길 했다. (웃음) 메가트론(디셉티콘의 리더)과 유사하지만 앞에 메가 대신 ‘존’이 붙는 것이다. 트랜스폼 했을 땐 ‘존’(john)이 된다. 변신 효과음은? 물론 물 내리는 소리다.

*미국에서 존(john)은 화장실을 뜻하는 속어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존의 <트랜스포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범블비>는 미국에서 이미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최고작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시나리오와 함께 ‘펑!’ 터지기만 했던 전작들은 잊어도 좋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애증으로 보는 팬들도 한 편도 보지 않은 관객들도 모두 즐길 수 있다. 스핀오프로 끝나기엔 아쉬운 <범블비>.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범블비의 이야기를 볼 수 있을까.

-트위터에 ‘#범블비’를 치면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범블비>가 스핀오프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로렌조/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어떤 영화를 만들던지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원해야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너무 섣부르게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는 건 지금의 행운을 해칠 수도 있다. 일단 여기 있는 훌륭한 배우들과 트래비스 감독은 나중에 어떤 계획이 있던지 또 할 수 있다면 한다고 이미 말을 했다. 그러니 앞으로 범블비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트래비스/ 결론은 관객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 라는 말이다.


씨네플레이 김명재 인턴 기자 / 통역 김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