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유독 퀸을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작년 10월 31일에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두 달 넘게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며 곧 천만 관객을 돌파할 전망이다. '보랩'의 여흥을 만끽하기 위해 찾아보면 좋을, 퀸 노래가 수록된 영화들을 정리해봤다.


<제국의 종말> OST

(Flash Gordon, 1980)

<제국의 종말> OST

<제국의 종말>은 퀸이 ‘음악감독’을 맡은 유일한 영화다. 1930년대 동명의 유명 히어로 코믹스 <플래쉬 고든>을 영화를 옮긴 작품. 퀸의 여덟 번째 앨범 <더 게임>(The Game)의 작업을 막 착수하려던 차에 제안된 이 프로젝트는, 퀸이 처음으로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더 게임>처럼, 80년대 음악 신을 호령하던 신디사이저 OB-X를 전면에 내세운 몽롱한 사운드로 완성됐다.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이 각자 작곡한 18개의 곡은 시뻘건 코스튬과 번쩍번쩍 화려한 금붙이를 과시하는 비주얼의 <제국의 종말>과 묘한 조합을 만들어냈다. 머큐리의 씩씩한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건 메인 테마 ‘플래시 테마'(Flash’s Theme)와 마지막에 흐르는 ‘더 히어로'(The Hero) 두 트랙뿐이라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퀸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늠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록이라 할 만하다. 아, <제국의 종말>의 주연배우 샘 J. 존스가 실제 자신으로 출연하는 <19곰 테드>(2012)에서도 '플래시 테마'를 들을 수 있다.


"A Kind Of Magic"

"Princes Of The Universe" 외 다수

in

<하이랜더>

(Highlander, 1986)

1986년 앨범 <A Kind of Magic>

<제국의 종말>처럼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건 맡은 건 아니지만, <하이랜더>에선 퀸의 노래를 8곡이나 들을 수 있다. 본래는 영국 밴드 마릴리온의 참여가 물망에 올랐으나 밴드의 투어 일정으로 불발되고, 퀸의 음악이 대거 쓰였다. 그런데 정작 당시 <하이랜더> OST는 아예 발매되지 않았다. 영화 속 퀸의 곡들은 영화와 같은 해에 발표된 12번째 앨범 <어 카인드 오브 매직>(A Kind of Magic)에 대부분 수록됐다. 로저 테일러가 작곡한 '어 카인드 오브 매직'은 영화와 앨범 버전이 좀 다르다. <어 카인드 오브 매직>엔 1986년에 개봉한 또 다른 액션 영화 <아이언 이글>에도 사용된 명곡 '원 비전'(One Vision)도 실려 있다.


"Bohemian Rhapsody"

in

<웨인즈 월드>

(Wayne's World, 1992)

"Bohemian Rhapsody" 싱글

퀸의 절대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미국 빌보드 최고 기록은 2위다. 그마저도 노래가 처음 나온 1975년이 아닌 1992년의 기록이다. <SNL> 출신의 명 코미디언 마이크 마이어스의 영화 데뷔작 <웨인즈 월드>(1992)의 흥행 덕분이다. 막나가는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들을 그린 영화는, 웨인(마이크 마이어스)와 그 친구들을 카 스테레오로 '보헤미안 랩소디' 후반부를 틀고 열심히 따라 부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노래를 찾아듣지 않고서 못 배기게 쓰였다. 마이크 마이어스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쓰지 못한다면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이 곡을 아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마이크 마이어스가 <보헤미안 랩소디> 속에서 퀸에게 '보헤미안 랩소디' 발매를 반대하는 EMI 레코드 사장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We Will Rock You"

in

<기사 윌리엄>

(A Knight's Tale, 2001)

<픽셀>

(Pixels, 2015)

1977년 앨범 <News of the World>

듣자마자 절로 사기가 돋는 쿵쿵 짝! 쿵쿵 짝! 때문일까? '위 윌 락 유'(We Will Rock You)는 수많은 영화의 대결 장면에서 사용됐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둘이다. 히스 레저의 할리우드 첫 주연작 <기사 윌리엄>(2001)과 고전 게임 캐릭터들이 쏟아지듯 등장하는 <픽셀>(2015)이다. <기사 윌리엄>은 중세 시대 유럽 배경에도 불구하고 196,70년대 고전 록 음악을 사용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위 윌 락 유'는 영화 처음을 장식했다. 분위기가 꽤나 자연스러워서 시대가 다르다는 걸 모르고 넘어간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픽셀>에선 후렴 부분을 강조하고 극적인 편곡을 더해진 버전이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동키 콩과의 대결 신에서 쓰였다. 주인공들이 동키 콩이 굴리는 나무 술통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간다.


"Don't Stop Me Now"

in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2004)

싱글 "Don't Stop Me Now"

좀비떼를 피해 술집에 몸을 피하고 있던 숀(사이먼 페그) 일행은 에드(닉 프로스트)가 튼 게임기 소리 때문에 발각된다. 어디서 좀비가 나타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별안간 주크박스에선 퀸의 '돈 스톱 미 나우'(Don't Stop Me Now)가 나온다. 에드 왈 "랜덤이야!" 둥당당당 피아노 소리에 맞추듯 당구대로 좀비를 때리지만 골골댈 뿐 죽지는 않는다. 차단기를 아무리 껐다 켜봐도 노래는 계속 울려댄다. 끈질기게 따라붙던 좀비는 주크박스에 머리를 처박히자 드디어 죽는다. "나를 멈추게 하지 말라"던 노래가 멎어야 좀비도 끝장난다는 유머가 돋보인다. 영화 마지막엔 퀸의 '유어 마이 베스트 프렌드'(You're My Best Friend)도 나온다. 이것 역시 웃음이 피식 터지는 활용이다. 결말에 해당하니 직접 확인하시라.


"Somebody To Love"

in

<엘라 인챈티드>

(Ella Enchanted, 2004)

<해피 피트>

(Happy Feet, 2006)

싱글 "Somebody To Love"

웅장한 사운드와 드라마틱 한 전개는 퀸의 음악이 뮤지컬에도 아주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뮤지컬 영화 <엘라 인챈티드>(2004), <해피 피트>(2006)는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를 사용해 장르적 재미를 톡톡히 했다. <엘라 인챈티드> 속 '섬바디 투 러브'는 여러 자리에서 출중한 노래 솜씨를 선보였던 앤 해서웨이의 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처음엔 쭈뼛대며 작게 작게 부르더니만 마법에 따라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열창과 격렬한 춤까지 선보인다. <해피 피트>에서는 브리트니 머피가 '섬바디 투 러브'를 부른다. 펭귄 마을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글로리아 역을 맡을 만큼 뛰어난 노래 실력을 뽐냈다. 핑크가 부른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가 <해피 피트 2>에 나오기도 했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in

<아이언맨 2>

(Iron Man 2, 2010)

싱글 "Another One Bites The Dust"

'아이언맨' 시리즈에는 록 명곡들이 자주 등장한다. 육중한 하드록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아이언맨 2>에도 퀸의 노래가 사용됐다. 생일파티에서 망나니처럼 놀고 있는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를 설득하러 온 로드니(돈 치들)가 싸우는 신에서 나온다. “내가 이 친구 좀 패주는 동안 센 비트 좀 틀어줘”라는 토니의 요청에 DJ는 퀸의 디스코 넘버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튼다. 퀸을 대표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곡이라 한국에선 인기가 좀 덜한 곡인데,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쓴 이 곡은 미국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두 곡 중 하나(나머지는 '크레이지 리틀 씽 콜드 러브'(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다. 퀸의 오리지널 음원을 쓴 것치고는 꽤나 짧게 나오는데, 이마저도 왠지 마블의 부유함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Brighton Rock"

in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2017)

1973년 앨범 <Sheer Heart Attack>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 이어 또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영화다. 만드는 영화마다 자신의 음악 취향을 뽐내길 즐기던 라이트는 작정하고 만든 음덕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2017)에서도 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언제나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베이비(안셀 엘고트)의 '킬러 트랙'은 퀸의 '브라이튼 록'(Brighton Rock)이다. 속사포처럼 때려붓는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솔로가 인상적인 트랙이니, 운전광인 베이비에게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선곡이다. 버디(존 햄)의 두 번째 만남에서 이어폰을 하나씩 껴서 같이 듣는 '브라이튼 록'은 영화 후반부 베이비와 버디의 최후 대결에서도 나온다.

뱃츠: "뭘 듣고 있는 거야?" / 베이비&버디: "퀸!"


문동명 /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