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브리지스가 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세실 B. 데밀 상을 수상했다. 세실 B. 데밀 감독의 이름을 딴 이 상은 골든글로브를 주최하는 할리우드 외신 기자협회가 선정하는 공로상이다.
제프 브리지스라는 배우가 낯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다른 나라 관객이 (우리에겐 익숙한) 배우 이경영에 대해 잘 알까. 그렇다고 제프 브리지스와 이경영이 비슷하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제프 브리지스의 대표작을 통해 그에 대해 살짝 알아보기로 하자.
<라스트 픽처쇼>(1971)
제프 브리지스는 22살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다.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의 청춘영화 <라스트 픽쳐 쇼>를 통해서다. 그의 첫 영화였다. <라스트 픽쳐 쇼>는 국내에 <마지막 영화관>, <마지막 상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브리지스가 어린 나이에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건 가족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아버지 로이드 브리지스, 어머니 도로시 브리지스, 형 보 브리지스까지 모두 배우다. 그는 유명 배우였던 “아버지에게 연기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자주 말한다. 데뷔도 아버지가 출연하던 TV드라마 <씨 헌트>에서 했다.
화려한 영화 데뷔 이후 브리지스는 또 다른 전설과 함께 했다. 1974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버디무비 <대도적>에 출연했다. 브리지스는 이 작품으로 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재밌는 건,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던 브리지스가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이름을 영화는 <킹콩>(1976)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킹콩을 때려잡는 잭 프리스콧을 연기했다.
<트론>(1982)
<트론>은 최초의 CG영화다.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았냐고? 아니다. “컴퓨터를 사용한 건 부정행위”라며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다. 아카데미 위원회는 <트론>의 감독 스티븐 리스버그에게 전화를 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어떤 카메라를 이용해서 컴퓨터그래픽 장면을 찍은 건가요?” 이 혁신적인 영화에서 브리지스는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빠지게 되는 케빈 플린을 연기했다. 디즈니가 <스타워즈>에 대항하기 위해 투자한 <트론>은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영화였는지도 모른다. 흥행은 참혹했고 컬트 SF영화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2010년 <트론>의 속편이 제작됐다. 브리지스는 <트론: 새로운 시작>에 케빈 플린 역으로 다시 한번 출연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CG 기술은 젊은 30대의 브리지스와 늙은 브지리스의 모습을 완벽히 만들어냈다. 퍼포먼스 캡처와 정교한 합성 기술이 사용됐다. SF 장르의 팬이라는 분명 제프 브리지스를 <트론>과 <트론: 새로운 시작>으로 기억할 거다.
1980년대 개봉한 영화 가운데 그를 기억할 만한 작품은 외계인을 연기한 <스타맨>(1984), 친형 보 브리지스, 미셸 파이퍼와 함께 출연한 <사랑의 행로>(1989) 등도 있다.
<위대한 레보스키>(1998)
영미권 매체에서는 ‘아이코닉’(iconic)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배우에게 아이코닉이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다. 주로 그 배우를 대표하는 캐릭터 앞에 아이코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제프 브리지스의 아이코닉한 캐릭터는 <위대한 레보스키>의 듀드(dude)다. 블랙 코미디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브리지스는 소위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브리지스는 “<위대한 레보스키>에 코엔 형제의 영화의 모든 게 들어 있다”고 말한다. 참고로 음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듀드가 입에 달고 있는 칵테일 화이트 러시안(영화에선 ‘코카시안’이라고 이름으로 불린다)이 먹고 싶어질 수도 있다.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출연한 테리 길리엄 감독의 <피셔 킹>(1991)도 인생 캐릭터 후보에는 오를 수 있겠다.
<아이언맨>(2008)
제프 브리지스가 출연한 익숙한 영화 하나를 언급해보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 <아이언맨>이다. 브리지스는 빌런 오베디아 스탠 역으로 출연했다. 머리칼을 밀어버려 낯선 기분이 드는 역할이었다. 제프 브리지스는 <아이언맨>에서 황당한 일을 겪는다. 지금은 유명한 얘기지만 촬영 전날 <아이언맨> 시나리오가 폐기됐다. 브리지스는 ‘멘붕’에 빠졌다. 존 파브로 감독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즉석에서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당황스러운 표정의 브리지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수백만 달러짜리 학생영화를 찍는 거나 다름없어요.”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는 뜻이다.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그들에게는 큰 예산과 마음대로 영화를 찍으르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긴 여정의 출발점에 브리지스가 함께 했다.
<크레이지 하트>(2009)
브리지스는 연기 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밴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위대한 레보스키>의 음악을 맡았던 친구 티본(T-bone) 버넷이 <크레이지 하트>를 추천했다. 브리지스는 출연 결정을 신중하게 하는 걸로 유명하다. <크레이지 하트>가 미국에서 개봉할 즈음의 발간된 ‘씨네21’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선뜻 배역을 수락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소문이 진짜인가.
=사실이다. 일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웃음) 늘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야 하는 일은 정말 너무너무 힘들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때 고민을 많이 한다. 거의 11개월 내내 아내와 떨어져서 일을 했는데 앞으로 또 그러고 싶지 않다. 아내는 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니까.
씨네21
친구의 추천으로 출연한 <크레이지 하트>는 그의 한(?)을 풀어줬다. 한때 유명했던 컨트리 가수 배드 블레이크를 연기한 브리지스는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게 됐다. 그전까지 그는 네 차례(<라스트 픽쳐쇼>, <대도적>, <스타맨>, <컨텐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부모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늘을 쳐다보며 “땡큐 맘 앤 대드”를 외치고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쇼비지니스를 사랑했어요. 내가 이 트로피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연장선상입니다.” 또 아내에 대한 말도 잊지 않았다. “지난 33여년 간 나에게 힘이 되어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위 인터뷰 내용에도 있지만 브리지스의 아내 사랑은 각별해 보인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아내에 대한 말을 잊지 않았다. “지난 45년 간 내 곁을 지켜준…” 브리지스는 할리우드의 모범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다. <크레이지 하트>의 감독 스콧 쿠퍼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프는 사생활을 무척 중요시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래서 그가 연기를 하게 되면, 우리는 아무런 편견없이 그를 그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제프는 진짜 배우예요.”
제프 브리지스는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은 당대의 ‘센’ 배우들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브리지스의 연기는 그들 못지 않다. <크레이지 하트> 이후의 행보로 그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었다. 2010년 다시 코엔 형제와 협업한 서부극 <더 브레이브>, 2016년 개봉한 데이빗 맥킨지 감독의 <로스트 인 더스트> 등이 눈에 띈다. 특히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 연기한 늙은 텍사스 레인저 역으로 그는 다시 한번 아카데미 남주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누군가 제프 브리지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새로운 할리우드에 속한 옛 할리우드식 스타다.” 옛 할리우드에서 활약한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그는 타고난 재능으로 새로운 할리우드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글을 위해 미국 ‘GQ’에서 촬영한 제프 브리지스의 인터뷰 영상을 참고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출연한 작품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스스로에게 말한다. “세상에, 내가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네!(Jesus, I made a lot of good movies!)” 앞으로 이 전설의 연기를 더 볼 수 있다는 건 영화팬들에겐 축북과 같다. 다시 한번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그의 (약간은) 기괴한 웃음 소리를 듣고 싶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