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말 2019년 초 한국을 들썩이게 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매력 중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른들의 추악한 신경전을 보며 세상의 폐부를 목격하는 아이들을 연기하는 아역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스카이 캐슬> 외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간단히 정리했다.


강예서

김혜윤

서울대 의대 합격을 가로막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눈을 부라리고 어금니를 물고 못된 말을 내뱉길 망설이지 않을 예서. 분명 재수없는데 보면 볼수록 미워지지가 않는다. 김주영쌤과 우주 앞에서만큼은 '이기적 유전자' 따윈 내려놓고 그 또래애들같은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연약함이 자주 보이기 때문일 터. 머리 좋은 예서가 김주영의 그늘을 벗어나느냐 마느냐의 여부가 <스카이 캐슬>의 운명을 좌우하리라는 건 너무나 명백하다.

나쁜 녀석들

2013년 드라마 <삼생이>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김혜윤은 <나쁜 녀석들>(2014)에서 오 형사(김상중)의 딸 지연, <도깨비>(2016)에서 6.25전쟁으로 헤어져 죽어서야 다시 남편을 만난 할머니 역으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기억됐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쇼핑왕 루이>(2016)에도 짤막하게 출연했다고. '개봉된' 영화 출연작은 <살인자의 기억법>(2017)뿐이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아래 자란 병수(설경구)의 누나 마리아 수녀의 아역이었다. 배우 김윤석이 연출하고, 염정아(!)가 주연을 맡은 <미성년>(2019)에도 참여했다. 염정아 배역의 딸 친구 역으로, <스카이 캐슬>보다 먼저 촬영을 마쳤다.

도깨비

살인자의 기억법


강예빈

이지원

예빈이는 언제나 머리를 바짝 묶어서 눈이 뾰족해지지만 은근 표정이 많다. 못된 표정'만' 보는 건 친언니 예서밖에 없을 것이다. 우등생 언니만 오냐오냐 하는 엄마를 멀찌감치서 볼 때, 훔친 과자들을 짓밟으며 공부 스트레스를 떨칠 때, 자기의 장점을 금세 알아보고 독려해주는 혜나 곁에 있을 때, 저마다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스카이 캐슬>에 사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예빈이를 볼 때만 불안하지 않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이지원은 올해 14살이 됐다. 연기 경력은 벌써 6년차다. 이주노동자의 각박한 현실을 그린 첫 영화 <안녕, 투이>(2013) 바로 다음에 촬영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에서 바로 주연으로 활약했다. 집이 없어 다마스에서 살게 된 친구 지소(이레)의 사정을 듣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낮이고 밤이고 머리를 모으고 함께 뛰어다니는 채랑 역. 망설임 없이 친구의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똘망똘망한 얼굴을 보면서, 이 우정엔 어떤 갈등도 끼어들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호연 이후 이지원의 필모그래피는 1년 한 편 꼴로 차곡차곡 쌓였다. <스카이 캐슬>은 <희생부활자>(2015), <1급기밀>(2016), <오장군의 발톱>(2017), <오목소녀>(2018) 등의 영화를 거쳐 주요 캐릭터를 연기한 첫 번째 드라마다.

오목소녀


황우주

찬희

'모범생'이란 단어에 표본이 있다면 황치영/이수임의 외동아들 우주야말로 그 적격이라 할 만하다. 서글서글한 얼굴과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한 태도, 사교육에 기대지 않아도 특목고 선두를 다투는 성적까지,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는 스카이 캐슬이다. 그늘이 없을 리가. 혜나에게든 예서에게든 늘 믿음직할 것만 같았던 우주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난 욕망과 갈등 앞에선 결국 절규하고 만다. 우주마저 무너지고 나서야, 매사 시시콜콜 정의로워서 답답했던 이수임도 제 자식 일이라면 무조건 결백만 주장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SF9 'O Sole Mio' 뮤직비디오

찬희는 아이돌 그룹 SF9의 막내 멤버다. '연기도 하는 아이돌'인가 싶겠지만, 경력을 따져보면 '아이돌도 하는 배우'에 더 가깝다. 2011년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김재원의 아역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그대에게>(2012) 민호,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2012) 송중기, <화정>(2015) 공명의 아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다. <시그널>(2016)에서는 1999년 인주 여고생 성폭행 사건의 주범으로 누명 쓴 고등학생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영화는 단역으로 나온 <굿바이 싱글>(2016), <임금님의 사건수첩>(2017) 이 있고, 1월 17일 개봉하는 옴니버스 <창간호>에도 참여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

시그널 / 굿바이 싱글


차서준

김동희

허구헌 날 약육강식 경쟁경쟁 호통만 쳐대는 차파국민혁의 훈육법 때문일까. 서준은 늘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차민혁이 어렵게(?) 구한 기출문제집을 성적에 부담을 느끼는 친구들과 돌려 볼 정도로 인간미가 넘쳐 흐르지만, 주눅들어 있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그래서 스카이 캐슬에 벌어지는 균열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란성 쌍둥이 동생에게 무시 당해도 궁시렁 대기만 하더니만, 비밀이 드러나자 하필 누나에게는 거세게 소리 지르는 모습은 어쩐지 좀 쎄했다.

김동희의 전작은 아직 웹드라마 <에이틴>(2018) 하나다. 형에 대한 부모의 편애로 받은 상처를 주변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치유하려는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작년에 공개된 웹드라마 중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에이틴>이 종영된 작년 9월 중순 JYP와의 전속계약을 맺었다.

에이틴

차기준

조병규

한날한시에 났고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기준과 서준은 얼굴처럼 많이 다르다. 권위로 똘똘 뭉친 아버지 눈치를 보다버릇해서인지 상황 변화를 직감하는 데에 빠르고 그게 바로바로 얼굴에 비치는 편이다. 서준에 비해 기준은 좀 더 격하게 감정을 드러낸다. 주로 성내는 표정이라 짙은 얼굴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피라미드를 깨버린 건 백번 속시원하긴 했지만, 나중에 아버지를 안 닮으려면 내면의 화를 삭이기를 바란다. 경쟁보다 상생을 더 믿는 사람들이기에 더더욱.

돈꽃

조병규는 부지런하다. 2015년 <후아유: 학교 2015>로 데뷔한 이래 한해에도 영화, 드라마 골고루 몇 작품씩 소화하고 있다. 2017년엔 드라마만 7편을 찍었다. 복고풍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에선 주인공의 쌍둥이오빠로 발랄한 모습을, 장혁의 아역을 연기한 <돈꽃>에선 어릴 적부터 산전수전 다 겪는 어두운 소년의 얼굴을 소화해 주목받았다. 영화는 주로 단편을 작업했는데, 앳된 얼굴로 고등학생을 연기한 경우가 많았다. 연극, 뮤지컬 무대에도 섰다.

소녀의 세계


차세리

박유나

"하버드 다니는" 세리는 극의 절반이 넘도록 말로만 등장했다. 공부 잘하는 자식을 트로피처럼 여기는 차민혁이 마음놓고 떵떵거릴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11회, 말로만 듣던 세리가 한국에 들어왔고 머지않아 스카이 캐슬은 한바탕 또 난리가 났다. 세리는 제 잘못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을 부정하진 않는다. 캐슬의 아이들 중 가장 당차고 또렷하다. 자기가 무엇을 하길 원하고, 잘해낼 수 있을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리가 단단해질수록, 엄마 승혜 역시 가정을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명확해지는 것 같아 더없이 반갑다.

비밀의 숲

CF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박유나는 2017년 화제작 <비밀의 숲>으로 톡톡히 얼굴을 알렸다. 후암동 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인 김가영 역으로, 다행히 죽지 않고 끝내 살아남아 황시목(조승우) 일행들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비중이 작은 역할임에도 회차마다 꾸준히 등장했다. 쾌활한 역도 잘 어울린다. 올 여름 방영된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걸크러시' 과대 유은 역으로 출연했다. 무뚝뚝하면서도 눈치가 빨라 주변 애들을 잘 챙기는데, 수아(조우리)의 성형과 강남거주에 대한 거짓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먼저 손을 내민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우수한

이유진

수한은 다른 인물들과 별 갈등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성적에 그나마 덜 열을 올리는 집안 환경 덕분이다. 자극적인 드라마 안에서 별로 도드라질 일이 없다. 시험도 60점 맞고 고급 그릇들을 몽땅 깨먹어서 가출을 시도하지만, 그저 동네 형 누나들처럼 공부 한번 잘해보고 싶은 기 약한 남자애의 일탈 정도에서 그친다. 동갑내기 예빈이와의 케미가 보기좋다. 늘 "븅~"하고 면박 주는 예빈이가 조금이라도 가깝게 얼굴을 들이밀면 저 위 이미지처럼 바짝 긴장한다. 막장의 한도를 갱신하고 있는 이 와중, 수한이의 짝사랑에 대한 가벼운 에피소드 하나 있으면 분위기 환기에 좋을 것 같다.

<스카이 캐슬>은 작년 <미스 함무라비>로 데뷔한 이유진의 두 번째 드라마다. 올해 개봉하는 영화 <패키지>에서 곽도원의 아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김혜나

김보라

혜나는 강인하다. 부모의 보필 없이 혼자 생계/학업을 책임지면서도 도무지 떨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까지 다스려야 한다. 애써 유순한 척할 수도 있지만, 상대와 상황에 따라 더 차가운 표정과 말로써 보다 합당한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애쓴다. 문제는 그게 매번 자기 뜻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것.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평생을 그리워하던 걸 눈앞에 마주하게 된 순간부터 그게 더 까다로워진다. 그래서 악수를 두게 되고, 등장인물들은 물론 시청자들의 공감마저 잃게 됐다. 혜나의 마지막이 안타까운 건 뛰어난 지능과 지혜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아이들

김보라는 <스카이 캐슬>의 아역배우들 중 최고 맏이다. 1995년생. 연기 경력은 벌써 10년을 훌쩍 넘겼다.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좋지 아니한가>(2007), <이장과 군수>(2007) 등에서 단역을 맡았고, 2012년 <천국의 아이들>로 첫 주연을 따냈다. 문제아지만 뮤지컬을 배워가며 세상을 살아갈 또 다른 방법을 알게 되는 성아 역이다. 염정아의 아역을 맡은 <로열 패밀리>(2011)를 비롯 <내 딸 서영이>(2012), <화려한 유혹>(2015) 등 인기 드라마에서 조숙한 아역으로 활약하며 아역/성인 배우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개성 있는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영화 <삼례> 속 김보라의 오묘한 매력을 추천한다.

삼례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