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길들이기> 포스터

세상은 넓고 볼 애니메이션은 많다. 디즈니, 픽사, 지브리, 드림웍스, 일루미네이션,…. 이 많은 제작사의 작품들을 다 볼 수 없다면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이때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지침으로 <드래곤 길들이기>를 맨 앞에 둘 것을 추천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는 너른 사랑을 받아왔던 <드래곤 길들이기>가 지난 17일, 시리즈의 완결인 3편 개봉을 앞두고 1편을 재개봉했다. 그것도 4DX로. 소문으로만 접했던 <드래곤 길들이기>가 궁금한 분들은 물론, 팬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기회다. <드래곤 길들이기>의 매력, 도대체 뭐길래?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 버크섬

북쪽으로 12일 동안 가면 나타나는, 얼어붙은 희망처럼 추운 ‘버크 섬’. <드래곤 길들이기>의 배경 버크 섬은 밝음보다는 어둠이, 삶보다는 죽음이 지배하는 거친 세계다. 바이킹들의 터전인 이곳에선 인간을 위협하는 드래곤 소탕 작업으로 늘 혼란하다. 드래곤의 머리와 심장을 도려낼 수 있는 용맹함이야말로 곧 버크 섬 주민들의 미덕. 용맹하기로 제일 가는 족장 스토익은 바위처럼 거대한 몸집으로 손 닿는 족족 드래곤을 무너뜨리지만, 그의 아들 히컵은 너무도 연약하다(이름마저 겁먹은 아이를 연상시키는 ‘히컵’, 딸꾹질 소리라니). 게다가 그는 이 구역의 사고뭉치, 말썽쟁이로 통한다. 드래곤을 무찌를 실력도 배포도 없는데, 어디로 튈지 모를 호기심과 당돌함은 언제나 일을 어렵게 만들고 만다. 여기까지는 히컵의 흑역사에 해당한다.


# 아웃사이더

모두의 눈에 히컵은 ‘너무 잘난 아버지’를 뒀지만 ‘터무니없이 작은 그릇’에 불과했다. 아버지 다음가는 버크 섬의 영웅 고버는 그에게 “넌 뱁새지 절대 황새가 아냐”라는 말도 했다. 주인공이 너무 멋없는 거 아니냐고? 절대! 용맹한 자가 출세하고, 용맹하지 못한 자는 도태되는 이곳의 순리를 완벽하게 뒤집는 사람이 바로 히컵이니까.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전혀 다른 미덕을 발휘해 결국 히컵은 리더가 된다.


# 드래곤

우선,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용’이라는 소재를 끌어온 <드래곤 길들이기>는 동명 소설을 각색한 애니메이션이다. 원작 소설가 크레시다 코웰이 주목한 용은 동서양 모두의 판타지에서 다뤄왔던 소재였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이 용을 상상하는 태도는 다소 달랐다. 동양의 용(龍) 이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존재, 신성한 존재로 인식됐다면, 서양의 드래곤(dragon)은 악마의 동물, 마녀의 수족, 재난의 상징으로 그려지곤 했다. <드래곤 길들이기>가 애니메이션에 구현한 드래곤의 모습도 훌륭한 볼거리지만, 서양에 지배적이었던 드래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뒤집는 스토리는 더 매력적이다.


# 나이트퓨리

히컵은 용의 심장을 도려낼 천운의 기회를 얻지만 실패한다. 사실 실패라기 보다 포기다. 드래곤에 들이민 칼을 스스로 놓게 만든 건 날카로운 용의 발톱도, 거대한 몸집도, 내뿜는 불도 아니다. 정작 히컵을 무력하게 만든 건 맥없이 스러져가는 드래곤의 눈. 바로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졌으나, 죽였다고 하는 사람도 없이 전설로만 전해지던 ‘나이트 퓨리’와의 첫 만남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나이트 퓨리는 크기도 훨씬 크고, 역시 소문대로 무시무시한 용이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다. 히컵이 칼을 내려놓고 다가가자 차츰 마음을 연 나이트 퓨리는 오직 그에게만 강아지처럼 선한 눈망울을 보여준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장벽을 허물고 더디지만 견고한 믿음을 쌓아가는 둘. 강아지 저리 가라 싶은 극강의 애교를 보여주는 나이트 퓨리를 보고 마음을 뺏기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


<릴로 & 스티치>의 스티치

<포켓 몬스터>의 이상해씨

<드래곤 길들이기>의 감독 딘 데블로이스와 크리스 샌더스는 <릴로 & 스티치>를 공동 연출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트 퓨리의 생김새가 ‘스티치’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넓은 미간에 커다란 눈, 커다란 입에 튼튼한 이빨이 꽤 비슷하다. <포켓 몬스터>에 나오는 ‘이상해씨’를 더 닮은 것 같긴 하지만. 때론 무섭다가 어쩔 땐 귀여워지고, 다시 믿음직스러워지는 나이트 퓨리의 반전 매력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생김새다.


# 3D # 활공비행

2009년 <아바타>의 성공적 3D 이후, 2010년 개봉한 <드래곤 길들이기>도 3D 상영 포맷을 택했다. 관람객들은 <드래곤 길들이기>는 ‘꼭 3D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아바타>가 상영 포맷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릴 것이라 믿었던 영화계는 불필요한 3D영화들을 무더기로 개봉시키곤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관객은 2D와 3D영화 각각이 지닌 장단에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때문에 “3D로 봐야 할 영화”라는 평가는 제작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이었다.


왜 <드래곤 길들이기>가 3D로 관람해야 할 영화인가 묻는다면 간결하게 답할 수 있다. 하늘을 비행하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시각의 반경을 한없이 위로 확장한 드래곤의 활공 비행은 땅 위에서만 이뤄지는 신들에 비해 깊은 감도를 체감하게 해준다. 힘차게 날아오른 드래곤을 타고 발아래를 보는 부감샷, 돌기둥이 각기 솟은 아름다운 버크 섬, 구름 속을 뚫고 누빈 한 폭의 그림 같은 석양은 관객들의 마음을 충만한 감상으로 이끈다. 더불어 형형색색의 빛깔로 휘감은 다양한 종의 드래곤들이 무더기로 날기라도 하면 아, 이래서 3D 지! 하는 황홀경에 차게 된다.


# 메시지

재차 말하지만 히컵은 애초에 이 구역의 문제아였다. 하지만 모두가 드래곤을 향해 각종 무기를 집어 들 때, 히컵은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도 드래곤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어쩌면 이건 싸울 용기보다 훨씬 어려운 용기다. 우연히 교감하게 된 나이트 퓨리로 인해 히컵은 어떤 용감무쌍한 바이킹보다 더 손쉽게 드래곤을 조련하게 됐다. 그리고 이 따뜻한 능력은 버크 섬의 질서를 변화시킨다.


그렇게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 얻은 신뢰와 우정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결함을 가진 건 단지 히컵 만이 아니었다. 히컵이 던진 포획망에 꼬리를 다친 나이트 퓨리는 중심을 잡지 못해 더 이상 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히컵이 인공 꼬리를 달아주면서 그 결핍을 메꿔 준다. 마치 자동차 기어를 넣듯, 인공꼬리와 연결된 페달을 밟아주는 히컵과 함께라야 둘은 완전해진다. 나이트 퓨리는 날 수 있고, 이때 히컵은 문제아 꼬리표를 뗄 수 있다. 서로의 빈 구석을 메우는 둘의 끈끈한 관계는 영화의 후반부,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하면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결말로 하여금 더 단단해진다.


씨네플레이 심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