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길들이기> 동화 시리즈

<드래곤 길들이기>

크레시다 코웰의 동명의 동화 시리즈 <드래곤 길들이기>(How to train your dragon)를 원작으로 삼은 <드래곤 길들이기>가 대망의 마지막 편인 ‘히든 월드’를 선보인다. 지난 10년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았지만, 언제나 타사 경쟁작들(1편은 <토이스토리 3>와 <슈퍼 배드>에, 2편은 <레고 무비>와 <빅 히어로>)에 밀려 좋은 평가에도 압도적인 흥행력을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시리즈를 총괄했던 딘 데블로이스 감독은 “3편을 끝으로 완결을 짓겠다”고 선언한 상황인데, 과연 유종의 미를 거두며 박수받은 채 떠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사전 반응은 전작들처럼 매우 좋은 편이다.

<드래곤 길들이기 3>

드래곤과 싸우는 버크 섬의 바이킹으로 태어나 살육 대신 공존을 택한 소년 히컵과 그에게 특별한 친구로 다가온 드래곤 투슬리스의 우정과 성장을 다룬 이 시리즈는 섬세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묘사와 탁월한 드래곤의 비행 장면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마치 고양이를 떠오르게 만드는 투슬리스의 치명적인 귀여움과 4DX에 가히 최적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찔하고 놀라운 활강 신의 연출은 이 애니만의 백미로,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진화하며 찬사를 받았다. 거기에 덧붙여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의 또 다른 장점을 뽑아본다면 바로 존 파웰이 맡은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음악이다.


한스 짐머가 선택한 후계자

존 파웰

1963년 런던에서 태어난 존 파웰은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역사와 전통의 명문 트리니티 음악 대학을 나왔다. 초창기엔 다른 영화음악가들이 그렇듯 밴드 활동을 하고, 광고 음악에도 뛰어들고, 유명 작곡가(파웰의 경우 패트릭 도일이었다) 밑에서 조수 생활도 했는데, 광고 시절 인연을 맺게 된 한스 짐머의 추천으로 <페이스 오프>를 맡게 되며 영화음악가로 데뷔하게 된다. 애초에 오우삼이 원했던 건 <브로큰 애로우>를 함께 한 짐머였지만, 작업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짐머는 자신이 눈여겨 본 파웰을 천거했고, 그의 데모 음악은 제작진과 감독을 만족시켰다. 짐머가 프로듀싱하는 조건으로 그들은 영화 경력이 미천한 파웰을 영화음악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미디어 벤쳐(현 리모트 콘트롤 프로덕션) 소속의 작곡가들도 그랬듯 파웰은 영화 제작진이 한스 짐머를 원하지만 무산됐을 때 그 대타로 들어가는 땜방(?) 작곡가나 공동 작업 시절을 거친다. 상업적 데뷔는 빨리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건 한스 짐머 스타일과 철저히 닮아야 하는 걸 의미했다. 다행히도 짐머는 좋은 스승이자 동료였고, 신인 작곡가의 기용에 불안해하는 제작진을 방어할 수 있는 영향력과 위치에 있었다. 신인들은 ‘짐머레스크’라는 미명 하에 유사한 사운드 뒤에서 다양한 스타일과 혁신적인 시도를 펼칠 수 있었다. 짐머는 그들에게 시스템과 기술을 제공했고, 짐머가 선택한 유럽과 북미의 작곡가 지망생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며 현재 할리우드 영화음악계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짐머를 넘어 자신의 음악으로, 그리고 애니로

<본 아이덴티티> 사운드트랙 표지

파웰이 그 시발점으로 뽑은 건 바로 <본 아이덴티티>를 위시한 <본> 시리즈였다. 더그 라이먼은 이 영화를 <007>과는 전혀 다른 첩보물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선택한 작곡가가 코엔 형제와 협업으로 유명한 카터 버웰이었다. 그러나 그가 여러 이유로 하차하고 난 뒤 그 대타를 구하기 위해 여러 데모 음악을 들었고, 짐머 사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파웰의 음악 자체가 맘에 들어 그를 기용하게 된다. 알다시피 존 파웰의 본 시리즈는 할리우드 액션 스코어링의 지형을 바꿨고, 그가 내세운 미니멀한 현악 오스티나토에 강력한 타악 배치 조합은 21세기 초 전 세계 액션 영화음악의 기준점이 되었다. 파웰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하게 된다.

<드래곤 길들이기> 사운드트랙 표지

더그 라이먼과 폴 그린그래스라는 강력한 협업자를 두게 된 그는 2010년부터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게 되는데, 바로 애니메이션 음악만 전담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에게 이쪽은 전혀 생소한 분야가 아니다. 데뷔하자마자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와 함께 짝을 맞춰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창립작인 <개미>를 필두로 <치킨 런>과 <슈렉>의 음악을 담당한 바 있고, 한스 짐머와 오랜만에 공동작업인 <쿵푸 팬더>로 여전히 드림웍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20세기 폭스 산하의 블루 스카이에서 제작한 일련의 작업물 <로봇>과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 그리고 워너의 <해피 피트>와 디즈니의 <볼트>까지 모두 다 만족스러운 히트를 기록하며 그는 어느덧 이 분야의 장인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 정점이 바로 <드래곤 길들이기>였다.

완벽한 영화음악, 드래곤 길들이기

<드래곤 길들이기 2> 사운드트랙 표지

드림웍스에선 처음 단독으로 음악을 맡은 그는 여기서 현대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드와 맥스 슈타이너 등 황금기에 선보였던 환상적이고 자유스러운 어드벤쳐 스코어의 향수를 놀랍도록 신명나게 재현한다. 바이킹이 배경에 나서지만 게르만이나 노르딕 사운드를 시도하기보다 자신의 고향의 소리인 켈틱 사운드로 이국적인 뉘앙스를 강조했다. 따라서 전통적인 피들이나 백파이프, 틴 휘슬, 하프 등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악기들이 동원돼 익숙한 판타지 세계관을 들려준다. 이건 제임스 호너가 다양한 작품에서 써먹으며 일종의 컨벤션화된 공식이기도 한데, ‘또 켈트야?’라고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파웰이 전통적인 바이킹 톤을 유지하기 위해 남성 코러스와 혼(horn), 다양한 퍼쿠션을 사용해 용맹함과 묵직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도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드래곤 길들이기 3> 사운드트랙 표지

액션 스코어링에 일가견이 있는 파웰이기에 <드래곤 길들이기>에서도 단연 빛을 발하는 건 스피디하고 호쾌한 비행 장면이라든지, 후반부 드래곤들을 타고 펼치는 액션 시퀀스에 깔리는 음악들이다. 90인조가 넘는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대동해 박진감 넘치게 몰아치는 현란한 사운드는 진짜 용 위에 앉아있는 듯 관객들을 질주하게 만든다. 2편의 음악은 히컵과 투슬리스의 성장에 따라 더 커지고, 조금은 어두워졌으며, 여전히 아름답고 멋진 사운드를 안겨준다. 영화의 개봉에 맞춰 2월 1일 발매될 3편의 음악에도 존 파웰이 굳건히 크레딧을 지키고 있으며 역시나 만족스러운 스코어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파웰은 이 작품으로 한스 짐머 사단 중에선 최초로 2011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기록한다.

3부작을 함께한 욘시의 주제가

밴드 '시규어 로스'의 프론트 맨 욘시

북유럽 사운드에 대한 아쉬움을 만회라도 하려는 걸까. 시리즈 내내 주제가를 담당하는 건 재밌게도 바이킹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아이슬란드 태생의 욘시다. 환상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포스트 락 밴드 시규어 로스의 프론트 맨이기도 한 욘시는 드래곤의 신비함과 소년의 성장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섬세하고 진취적인 아티스트로 제격이다. 1편에서는 ‘스틱 & 스톤즈'(Sticks & Stones)를, 2편에서는 ‘웨어 노 원 고우즈'(Where No One Goes)를,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편인 이번 ‘히든 월드’에서는 ‘투게더 프롬 아파르'(Together From Afar)를 선보이며 특유의 민속적인 리듬에 경쾌 발랄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를 들려주고 있다.

이쯤에서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와도 이별이란 게 참 아쉽지만, 언제고 죽은 인물도 되살려내며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할리우드이기에 일말의 희망까진 접지 않으련다. 그러기에 존 파웰이 이 시리즈에서 구현한 음악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환상적이었다. 드림웍스와 블루스카이, 디즈니와 일루미네이션, 그리고 워너에서까지 거의 모든 메이저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음악을 석권한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