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세뱃돈을 주고받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덕담으로 가장한 오지랖과 잔소리를 듣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뒹굴뒹굴 VOD가 준비해봤다. 달갑지 않은 설날 잔소리에 피가 날 것만 같은 귀를 달래 줄 영화 5편을! 5편의 영화들 모두 각기 다른 청각적 매력을 지니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한 편을 골라 연휴의 마지막 날 느긋하게 보길 추천한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2월 2일부터 2월 8일까지 할인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참고하시길.


패터슨 Paterson , 2016

감독 짐 자무쉬 / 드라마 / 12세 관람가 / 118분

미국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는 버스 드라이버다. 그는 매일 아침 6:30분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버스를 운전한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퇴근해 아내와 저녁을 먹은 후 강아지 ‘마빈’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저녁 산책을 하며 향한 곳은 동네 단골 술집. 그의 하루는 그곳에서 맥주 한 잔과 함께 마무리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짜인 것처럼 반복되는 그의 일상 사이로 자리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시’이다.

단순히 시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그 자체로 시가 된 영화 <패터슨>. 약 20년 전 각본을 구상했다는 짐 자무쉬 감독은 <패터슨>을 통해 일상의 매 순간, 모든 물체가 시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묵직한 목소리로 아담 드라이버가 낭독하는 시를 듣다 보면 ASMR이 필요 없을 정도. 설날 소음에 피로한 귀와 눈 모두 달래줄 편안한 영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면 조용히 책상에 앉아 빈 노트를 펼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바로보기


리틀 포레스트: 사계절 Little Forest: Four Seasons , 2017

감독 모리 준이치 / 드라마 / 12세 관람가 / 138분

도시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치코(하시모토 아이)’. 몇 년 전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기에 비어버린 집에서 이치코는 홀로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직접 쌀농사를 짓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제철 재료들로 매일 매끼를 만들어 먹으며 소박하게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치코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바로 사라졌던 엄마가 보내온 것! 편지를 읽고 난 이치코는 자신이 왜 도시에서 도망쳐 왔는지, 엄마가 왜 떠나버린 건지 생각하다 결심을 내리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 사계절>은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2: 겨울과 봄>을 한 편으로 편집한 영화다. 국내에서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로 리메이크되어 개봉하기도 했다. 매 계절마다 재철 요리를 눈과 귀로 맛보는 게 특징이다. 요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온갖 소리들이 귀를 기분 좋게 간지럽히고, ‘이따다끼마스(잘 먹겠습니다)’를 말하며 미소와 함께 밥을 먹는 이치코가 마음을 차분히 다독인다. 계절마다 감성이 묻어나는 풍경들로 눈 호강하는 것은 덤이다. 한 편의 휴식과도 같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사계절>. 하지만 빈속으로 보는 것은 금물이다. ▶바로보기


청설 聽說 , Hear Me, 2009

감독 청펀펀 / 멜로, 로맨스, 드라마 / 전체 관람가 / 109분

음식점을 하시는 부모님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는 티엔커(펑위옌). 어느 날 도시락을 배달하러 간 수영장에서 장애인 수영 선수인 언니 샤오펑(천옌시)를 응원하는 양양(진의함)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수화를 사용하는 양양과 손으로 대화하며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하지만 티엔커와 데이트를 간 사이 화재사고가 발생하고 샤오펑은 병원으로 실려간다. 수영 선수 생활에 지장이 가자 샤오펑은 선수 생활을 포기하려 하고, 그녀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던 양양과 갈등하게 된다. 샤오펑의 사고와 포기를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는 양양은 티엔커와 거리를 두려 한다.

말로 하지 않아도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입으로 내는 말은 아니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손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우리는 티엔커와 양양의 사랑의 순간들을 본다. 소리로 나오는 대사가 얼마 없지만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두 주인공의 설레는 마음에 요란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로한 두 귀를 쉬게 해주기엔 충분할 것. 첫사랑 영화계의 바이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속 주인공 ‘션자이’역을 맡았던 천옌신이 양양의 언니 ‘샤오펑’으로 등장한다. ▶바로보기


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 , 2013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 드라마 / 15세 관람가 / 105분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은 뉴욕에서 포크송을 부르는 가난한 뮤지션이다. 가벼운 주머니 때문에 매일 밤 잘 곳 없이 아는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술집에서 이름 모를 남자에게 얻어맞고 난 뒤 그의 일상은 점점 더 꼬여가기 시작한다. 친구 ‘짐(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동거하던 여자 ‘진(캐리 멀리건)’은 르윈에게 '임신한 것 같은데 그게 네 아이 같다'라고 말해오고, 돈이 필요한 르윈이 회사를 찾아가 보지만 돌아오는 건 겨울 코트 하나. 게다가 부탁을 받아 데리고 있던 고양이까지 도망쳐버렸다. 결국 르윈은 시카고로 오디션을 보러 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나지만 어렵게 도착한 그곳에서 돌아온 건 혹평뿐이다. 뉴욕의 겨울은 르윈에게 이다지도 삭막하다.

<인사이드 르윈>은 르윈의 삶 중 단 7일이라는 짧은 조각만을 보여준다. 르윈의 7일은 좋아지는 것 없이 혹독하기만 한 기록이다. 다른 사람과 삶에 무감해진 그의 눈빛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추위 속에서 더욱 빛을 잃어간다. 그러나 그가 비로소 노래하기 시작하자 눈에는 미미하게나마 생기가 깃들고, 시종일관 지난하기만 했던 영화 속에서 우리는 잠시 안식처를 발견한 것 마냥 숨이 트인다. <인사이드 르윈>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영화가 끝나면 르윈이 부르던 60년대의 포크송이 귀에 맴돌고 있을 것이다. 르윈을 연기한 오스카 아이삭은 이 영화로 2014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다.(참고로 오스카 아이삭은 줄리어드 음대 출신이며, 극 중 르윈이 부른 곡들은 전부 현장에서 녹음한 곡들이라고 한다.) ▶바로보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 1968

스탠리 큐브릭 / SF, 드라마 / 25세 관람가 / 150분

이름 모를 유인원들이 서식하는 땅. 어느 날 갑자기 검은 돌기둥이 생기고 유인원들은 그 주위를 맴돈다. 세력 싸움을 하던 것도 잠시, 유인원이 들고 있던 뼈에서 우주선으로 급격하게 장면이 전환되고 엄청난 시간의 간격을 넘어 카메라는 미래를 비춘다. 그곳엔 검은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목성으로 향하는 디스커버리호와 선원들이 있다. 그곳엔 선장 ‘보우만’과 승무원 ‘풀’ 그리고 인공지능 컴퓨터 ‘할’이 타고 있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여정이 흘러가는 듯싶었으나 ‘할’이 스스로 발전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 이 두 개의 인격체가 생존을 두고 대립하게 된다.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가도 괜찮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SF 영화계의 마스터피스로 뽑힘과 동시에 난해하고 졸린 영화로도 손꼽히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곳곳에 숨겨둔 무수한 메타포들을 읽어내려면 단 한 번의 관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만 영화를 사랑하는 씨네필이라면 필람 리스트에 올려야 할 영화 중 하나. 대다수의 SF 영화들이 이 영화를 오마주하기 때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음악’이다. 대사보다 웅장한 클래식의 향연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클래식 공연처럼 인터미션이 존재하기도 한다. 영화와 음악에 있어서 경외심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영화에 도전해보길. 단, 큐브릭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잡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바로보기


씨네플레이 문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