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배우들이 있다. 주연 배우는 아니지만 이 작품 저 작품을 넘나들며 출연해 한 번은 본 적 있는, 그러나 대체 어떤 작품에서 본 건지 이름은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아 전전긍긍하게 되는 배우들 말이다. 물론 모든 배우들의 이름까지 외울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알고 있으면 안방이나 극장에서 이들이 나오는 작품을 감상할 때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이들을 신스틸러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유명한 조연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점은 이들로 하여금 안방과 극장이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이다.


1. 오정세

<극한직업>의 테드 창으로 더 유명해진 오정세. <극한직업> 이전에 배우 오정세가 나왔던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에 그가 등장한 <스윙키즈><그대 이름은 장미>, 그리고 <조작된 도시>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실 그는 뛰어난 연기력과 작품의 흥행성에 비해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배우다. 이는 그의 탄탄하며 다작으로 풍성한 커리어 때문이다. 2001년 영화 <수취인불명>에서 단역 경찰역할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오정세는 주연과 조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일해왔다. 20046개 작품, 20057, 20068, 20077개 등 엄청나게 찍어오다가 2013년에는 무려 10개 작품에 출연했다.

<똥파리>의 양익준(왼쪽)과 오정세.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에 짜장면남으로 출연한 오정세를 잊을 수 없다. 빚진 돈을 갚으러 온 용역깡패 상훈(양익준)이 집에 찾아오자 문을 걸어 잠근 채 부재 중인 척 하다가 결국 들키는 남자로 등장했다.


2. 박보미

<개그콘서트>에 출연한 박보미.

KBS<개그콘서트>를 본 사람들이라면, <미스터 선샤인>에서 아가씨. 지는 라브를 하려구유라며 고애신(김태리)에게 사랑을 알려준 소녀를 보고 무릎을 치며 소리쳤을 것이다. “, ! 누구였지? 어디서 본 적 있는데!

<미스터 선샤인>에 출연한 박보미.

<미스터 선샤인>에서 윤남종 역을 맡은 배우 박보미는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이다. 2012EBS <모여라 딩동댕>에서 공주 달이 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다. <미스터 선샤인> 이전에는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봉순(박보영)의 비밀을 알고 도와주는 고등학교 친구 나경심 역할로 등장했다. 일련의 사고를 겪은 봉순에게 자신은 멘탈이 강하다며 애써 괜찮은 척 위로를 건내는 모습은 배우로서의 완전한 착륙을 의미하듯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3. 강신일

<로마의 휴일>의 강신일

<태양의 후예>

강신일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정의로움과 우직함에 비해 아쉽게도 이름까지는 기억되지 못하는, 매일 마주치며 인사하지만 역시나 이름은 모르는 옆집 아저씨 같은 배우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동공에 각인이 되었을 정도로 그의 영화에 단골 출연했다. 한국 액션영화의 새로운 시작이었던 <공공의 적> 시리즈 뿐 아니라 천만영화 <실미도>를 비롯해 <한반도>, <이끼>, <글러브>, <전설의 주먹> 등에 죄수, 도굴꾼, 지검장, 교감선생, 방속국 국장 등 조연과 주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한 다작 배우다. <태양의 후예>에서는 윤명주(김지원)의 아버지 윤중장 역을 맡아 젊

은 연령층에도 얼굴을 알렸다.


4. 태인호

<라이프>의 태인호.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에서 풍기는 치명적 피톤치드에 넘어가 역시 이수연 작가가 대본을 쓴 <라이프>로 편승한 시청자라면? 말끔한 양복과 무표정으로 기업과 병원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선우창을 주의깊게 살펴봤을 것이다. 그리고 불현듯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 성대리다.”

<미생>에 성대리로 출연한 태인호.

한석율(변요한)에게 된통 당하고 섬유 1팀 대리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이직을 결심하고 가르마와 머리만 올린 채 병원에 온 것 같은 이 남자의 이름은 바로 태인호다. 언제나 굳은 표정이기에 이 사람이 내게 호의적인지 나를 이용하려는 것인지 속마음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알수없음이 태인호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에게 무게감과 미스터리를 부여하고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미생>의 성대리, <태양의 후예>의 한석원 등으로 대중들에게 익숙하지만, 사실 그는 드라마보다 영화에 더 많이 출연한 이력이 있다. <고수>(1997)에서 단역으로 출연했으며 총 32개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상업영화에서는 주로 단역과 조연을, 독립영화에서는 주연을 주로 맡아왔다.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 거실에서 꼬마들의 재롱장치를 보며 셔츠에 넥타이를 맨 체 박수를 치고 있는 남자 윤기주로 짧게 등장하기도 했다.


5. 염혜란

<라이프> 염혜란

염혜란 역시 드라마 <라이프>를 통해 인기를 끌었다. 그는 동네 영어학원의 원장선생님같이 엄숙하고 단호하며 가끔 다정함을 보일 것만 같은 이미지를 가졌다. <라이프>에서는 구승효(조승우)가 화정그룹 회장 비서직을 떠나 일반직으로 갔을 때부터 손발을 맞춰온 사이인 팀원 없는 팀장 강경아 역으로 등장했다.

<아이 캔 스피크>에 출연한 염혜란.

2016<디어 마이 프렌즈>로 방송에 첫 등장했으며, <도깨비>의 지연숙과 <슬기로운 깜빵생활>의 한양엄마를 포함해 9편의 방송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염혜란 특유의 능청맞음과 친화력 그리고 무게감의 적절한 조절은 많은 무대 생활과 영화출연 경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녀는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사랑해 엄마> 12개의 공연에 참가했다. 나문희 주연의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슈퍼마켓 주인 진주댁으로 등장해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최근 <국가부도의 날>에서 공장주 갑수(허준호)의 부인 희원으로 등장했고, 곧 개봉할 <증인>에서는 살인 피의자 미란 역을 맡아 점점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6. 케빈 두런드

<PMC: 더 벙커>의 마쿠스를 연기한 케빈 두런드.

육중한 덩치와 웃기만 해도 스크린을 넘어 몸속으로 파고드는 비열함을 지닌 남자. 멜로보다는 액션, 그것도 악역에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항상 그런 역할만 맡아도 전혀 아쉽지 않은 배우. 케빈 두런드는 그런 배우다. <PMC: 더 벙커>에서 에이헵(하정우)에게 총을 겨누기 전에 살짝 웃을 때부터 “난 배신자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배우는, 사실 한국관객들에게 상당히 오랫동안 얼굴을 알려왔다.

<레지던트 이블 5: 최후의 심판 3D>

시간을 되돌려보자. 2012년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5: 최후의 심판 3D>에서 에이다 웡, 레온 케네디와 함께 주축을 이루어 앨리스와 질 발렌타인을 구하기 위해 웨스커와 전투를 벌인 배리 버튼이 바로 케빈 두런드다. 아무리 봐도 악역인데 198센티미터, 108킬로그램이라는 신체조건은 그로 하여금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인간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쓸쓸한 위안을 기회삼아 최소한의 선을 실현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사기적인 신체조건 탓인지 그에게 들어오는 역할은 주로 제한적이었다. 1999년 데뷔한 이후 41편의 영화에서 그가 주연을 맡은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도 적다. 그가 자신에게서 우러나오는 인상을 관객에게 단단히 알린 계기는 아마도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 아니었을까. 영화를 통틀어 10분도 나오지 않는 단역 더 블롭’(발사된 포탑을 막아 역으로 전차를 폭발하게 만든 육체 강화계 뮤턴트)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7. 데이비드 맥기니스

<미스터 선샤인> 데이비드 맥기니스

세상에는 닮은 사람들이 참 많다. 이 배우를 소개하려다 앞서 케빈 두런드와 헷갈렸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부모로 두고 있는 혼혈외국인지만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외국작품보다 한국작품을 통해 기억되고 회자되고 있는 배우. 데이비드 맥기니스는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을 국내 작품으로 채웠다.

우리는 가장 최근의 그의 모습을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이병헌)의 전우 카일 무어 소령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외에도 드라마를 즐겨보는 시청자라면 <아이리스 2>의 레이, <태양의 후예>의 아구스 등 주로 주인공의 계획을 방해하는 맥기니스를 알고 있을 것이다.

188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선한 인상과 어딘가 불안한 의미심장함을 감추고 있는 듯한 남자. 그는 이전에도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존재를 알린 바 있다. 2007년 가수 프리스타일의 <수취인불명> 뮤직비디오에서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하는 복서, 2001년 박상민의 <연인> 뮤직비디오에서 공사장 책임자이자 고대 전사로 출연한 바 있다.


씨네플레이 이준한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