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드 2>

이건 뭐 거의 <스타워즈>와 동급이다. 시리즈 역사만 봤을 때 그렇다. <크리드 2>가 2월 21일 개봉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을 맡은 시리즈의 첫 영화 <록키>가 1976년에 개봉했다. 역시 실베스터 스탤론이 시나리오에 참여하고 제작도 하고 조연을 맡은 <크리드 2>까지 이어진 시간은 무려 40여년이다. 그 사이 <록키> 1~5편, <록키 발보아>, <크리드> 1~2편 등 모두 8편의 시리즈 영화가 개봉했다.

<록키>

<록키> 시리즈가 쌓아올린 영광의 역사는 사실 늘 찬란하지 않았다. 아무도 <록키 5>를 기억하지 않는다. <록키 4>를 비롯한 몇몇 영화들은 평단이 싫어했다. <록키> 시리즈 말고도 훌륭한 권투영화는 많다. <크리드 2>의 개봉에 맞춰 씨네플레이가 매우 주관적으로 꼽은 베스트 권투영화 5를 소개한다. 순위는 없다. 내 마음 속 1위 권투영화 <록키>와 시리즈 영화는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성난 황소>

<성난 황소>(1980)

이것은 교과서다.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영화다. 권투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봐야 할 영화.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에 이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의 협업의 정점에 있는 영화. <성난 황소>는 권투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링 바깥에 있던 카메라를 링 안으로 옮겼다. 이로써 관객은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제이크 라모타와 마주할 수 있었다. 권투 시합을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게 만든 카메라. <성난 황소>의 위대한 업적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김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받은 오스카 트로피를 언급해본다. 클리트 이스트우드 감독상, 모건 프리먼 남우조연상, 힐러리 스웽크 여우주연상 그리고 작품상!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남우주연상, 폴 해기스는 각색상, 조엘 콕스는 편집상 후보에 올랐다. 2005년 국내 개봉 당시 발간된 ‘씨네21’ 기사에 이런 문장이 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복싱영화지만 한편으로 복싱영화가 아니다.” 이 말 뜻을 헤아려보자.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당시 74살의 나이로 57번째 출연과 27번째 연출, 10번째 작곡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다.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그것이 모든 걸 말해준다. 고집 세고 착한 보수주의자 ‘동림옹’의 세계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있다. 그렇다고 권투 자체를 허투루 다룬 것은 아니다. 폴 해기스가 각색상에 오른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20년 동안 링 위에서 컷맨(권투 시합에서 지혈을 돕는 사람) 역할을 한, 69세에 데뷔한 작가 제리 보이드의 소설이다.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운다>(2005)

평일 오후, TV를 켰다가 우연히 프로권투 신인왕전 중계를 본 적 있나? 그것은 처절한 싸움이다. 프로가 되기 위한 눈물겨운 스트레이트가 거기 있다. 피가 철철 흘러도,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 쓰러질 듯해도 그들은 주먹을 뻗는다. 비록 그 주먹이 한없이 가냘파 보일지라도.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는 이 신인왕전에 출전한 왕년의 복싱스타 강태식(최민식)과 소년원 수감자 유상환(류승범)의 대결을 담았다. 이 두사람의 시합은 결코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이들은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류승완 감독은 2015년 개봉 10주년 기념 상영 때 “10년 전 이 영화를 만들었던 나 자신이 부럽다”고 말했다. <주먹이 운다>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이 부러울 것이다.


<파이터>

파이터(2010)

“미쳤다, 미쳤어.” <파이터>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분명 들었다. 여기서 미친 건 영화가 아니라 사람이다. 크리스찬 베일이 <파이터>에서 미친 연기를 보여준다. 마크 월버그, 에이미 아담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베일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은 것 같다. 권투선수 미키(마크 월버그)와 미키의 전담 트레이너이자 형인 디키(크리스찬 베일)의 매니저 역할을 해온 엄마를 연기한 멜리사 레오만이 유일하게 베일과 마주 앉아 겸상할 수 있었다. 라이트웰터급 세계챔피언인 미키 워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파이터>의 쿠키영상을 놓쳐선 안 된다. 영상에서 미키와 디키 형제의 실제 모습이 등장한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베일의 미친 연기가 왜 미쳤는지 완벽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백엔의 사랑>

<백엔의 사랑>(2014)

이치코(안도 사쿠라). 그녀에게 남은 건 권투밖에 없다. 왜 그녀는 그토록 권투에 집착하게 됐을까. 주변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서른 둘이나 먹은 백수. 이치코는 동생과 다투고 난 뒤 홧김에 독립을 선언한다. 돈이 있을 턱이 없다. 자주 가던 100엔샵에서 그녀는 심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거기서 만난 남자가 권투를 했다. 그렇게 이치코는 글러브를 끼게 됐다. 살기 위해 이치코는 권투에 집착한다. 그녀에게 관심 있는 사람은 오직 관객뿐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볼 마음이 들었다면 부디 끝까지 봐주길 바란다.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또한 안도 사쿠라는 배우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백엔의 사랑>은 거칠다. 권투를 소재로 해서 그런 게 아니다. 안도 사쿠라의 이치코가 거칠어서 그렇다. 안도 사쿠라는 ‘날것’이라는 말의 뜻을 보여준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