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캐릭터 영상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폭탄 테러 작전을 그린 스파이 영화 <밀정>이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밀정>은 특정한 실존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실들을 상당 부분 살려낸 상태에서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허구를 강조해 영화적인 재미를 이끌어내기보다 실제 인물과 그의 일화를 가능한 한 비슷하게 가지고 와 ‘역사영화’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밀정> 속 캐릭터와 그들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을 비교해봤다.



이정출(송강호) / 황옥

<밀정> 속 의열단이 진행하는 폭탄 밀수 작전은 흔히 ‘황옥 경부 폭탄사건’이라고 불린다.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 이정출이 바로 그 황옥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캐릭터다. 황옥은 조선인 출신으로서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부(현재의 5급 공무원 해당)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경무국장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라는 명을 받고 의열단원 김시현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서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의열단의 폭탄 반입을 함께 추진한다.

여기까지, 황옥과 <밀정>의 이정출의 행적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황옥이 위장한 친일파였는지, 의열단에 잠입한 일제의 스파이였는지에 대한 사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실제로 그 당시 폭탄이 국내에 반입된 데에 대해서 이를 황옥의 공으로 돌리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이 사건을 일제가 의열단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꾀한 공작이라고 본다. 황옥은 6.25 때 납북되어 행방불명됐다.
   


김우진(공유) / 김시현

공유가 분한 김우진은 의열단원 김시현을 토대로 한다. <밀정>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김시현 역시 황옥이 총독부의 명을 받아 의열단에 잠입한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황옥과 동업자로서 아편(영화 속에선 도자기)밀수를 계획하면서 적극적으로 친분을 쌓고, 곧이어 의열단장 김원봉과 접견시켜 그를 의열단으로 포섭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그 이후 전개를 지나는 가운데서도 김우진과 김시현은 상당 부분 닮았다.

광복 후에도 김시현은 줄곧 올바른 길을 모색하려던 사람이었다. 여러 차례 복역과 석방을 거듭하던 그는 광복 후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쳐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60년 4.19혁명으로 석방돼 같은 해 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시현은 임종을 앞두고 아내에게 “권 동지 미안하오. 내가 그래도 조국 독립을 위해 몸 바쳐 투쟁했는데도 반쪽 독립 밖에 이룩하지 못했소. 남은 여생을 조국 통일 사업에 이바지해 주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연계순(한지민) / 현계옥

<밀정>의 연계순은 실존인물과의 접점이 가장 흐린 캐릭터다. 실존인물 현계옥과 한지민이 분한 연계순의 뚜렷한 공통점은 그들이 유일한 ‘여성’ 의열단원이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연계순이 보여준 어떤 순간에서 실제 현계옥의 흔적을 미약하게나마 더듬어볼 순 있다. 중국 천진에 있는 폭탄을 상해로 운반해야 하는 일을 할 때 현계옥은 삼엄한 경비를 뚫기 위해 주변의 서양사람 옆에 가서 부부처럼 위장했다고 한다. <밀정>의 연계순이 헝가리인 폭탄 기술자 루비크와 부부로 위장해 일제의 의심을 피한다는 설정은 이 사실에서 빌려왔으리라.

잘나가는 기생이었던 현계옥은 지식인 현정건(<운수 좋은 날>을 쓴 현진건의 사촌형)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를 따라 의열단원이 됐다. <밀정>에서 김우진과 연계순 사이에 엷게 감도는 로맨스는, 아마도 현계옥에게 따라붙는 ‘사랑하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김장옥(박희순) / 김상옥

김상옥은 (‘황옥 경부 폭탄사건’ 2달 전인) 1923년 1월 12일 조선인 탄압의 상징이었던 서울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했다. 이후 일본 경찰을 피해 열흘간 은신하다가 1월 22일 3시간 반에 달하는 교전을 벌였다. <밀정>의 오프닝인, 박희순이 연기한 김장옥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기와지붕을 뛰어다니며 펼치는 대규모 액션이 바로 이 사건을 토대로 한다. 영화 속에서는 끝내 궁지에 몰린 김장옥이 한때 상하이에서 친분을 쌓았던 일본경찰 이정출과 독대 하다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제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데, 실제로 김상옥과 황옥이 만났다는 이야기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조선과 일본 사이를 방황하는 이정출의 내적갈등을 강조하기 위한 허구다.


정채산(이병헌) / 김원봉

특별출연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이병헌은 의열단장 정채산을 연기했다. 정채산은 물론 실제 의열단장이었던 김원봉에서 비롯된 캐릭터다. 강한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짤막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정채산이 이정출을 만나 폭탄 반입을 직접 부탁하는 대목을 제외하고는, 정채산과 김원봉을 빗대어 볼 만한 지점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병헌의 짙은 얼굴과 근사한 목소리가 주는 묵직한 안정감만으로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였던 김원봉의 카리스마는 충분히 전해진다. <암살>에서는 카메오로 출연한 조승우가 김원봉 역을 맡은 바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