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네마프로젝트 2019의 두 감독이야기

올해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이하 JCP)에 선정된 네 편의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관객과 소통하며, 영화의 영토를 넓힌다. 제작은 물론 배급까지 지원하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지지가 필요한 영화를 발굴하고 세상과 잇는 다리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라 할 만하다. 그 중 두 편의 영화, <국도극장> 전지희 감독과 <아무도 없는 곳> 김종관 감독을 만나 그들이 지나온 여정을 전한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쓴 시나리오다”

<국도극장> 전지희 감독

<국도극장>은 전지희 감독이 마흔 살에 쓴 첫 장편 시나리오다. “영화과를 졸업하긴 했는데 영화계에서 일하지는 않았다. 광고 쪽에서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명필름랩에 시나리오를 응모했는데 신기하게도 뽑아주셨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의 타이틀이자 주 배경인 ‘국도극장’은 주인공 기태(이동휘)의 질풍노도와 함께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한 공간이다. 오래된 극장이라 이곳의 터줏대감 오 씨(이한위)가 직접 그린 포스터가 걸리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오기도 하는 그런 곳. “하나의 캐릭터처럼 존재해서 기태 인생의 전환점에 영향을 주지만, 너무 존재감이 부각되지는 않았으면 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기태는 사법고시 장수생이다. 원치 않게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초등학교 동창 영은(이상희)을 만난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인간이 조금씩 가진 속성을 극대화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데, 가령 기태는 자존심을 센데 자존감은 낮고 영은은 하고 싶은 말을 꼭 하고 만다. 또한 <국도극장>은 어색한 춤을 추며 차를 따르는 영은의 첫 등장을 비롯해, 코믹한 장면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관객이 제삼자 입장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드라마에 너무 몰입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감독의 의도였단다. “자존감이 가장 떨어졌을 때 자신 있게 이입해서 만든 작품”이지만, <국도극장>이 자기연민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산뜻한 감동을 주는 것은 이러한 ‘이입’과 ‘거리두기’의 적절한 조화에서 기인한다. 늦게 도착했지만, 그만큼 성숙한 고민이 묻어나는 데뷔작이 탄생했다.

임수연·사진 백종헌


경계에서,

마음의 음영을 잡아내다

<아무도 없는 곳> 김종관 감독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소설가 창석(연우진)은 책 출간을 준비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묘령의 여인 미영, 출판사 후배 유진, 아내가 아픈 사진작가 성하, 과거 기억이 없다는 바텐더 주은 등 사람들을 만날수록 창석의 마음 속 그림도 조금씩 변해간다. 김종관 감독의 신작 <아무도 없는 곳>은 그간 보여줬던 영화 세계의 총합이자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모험이라 할 만하다. “<더 테이블>(2016)은 공간이 인물을 바라보는 영화이고 <최악의 하루>(2016)가 하루라는 시간이 중요한 테마였다면, 이번에는 한 명의 인물이 여러 사연들을 통과해나가는 이야기다.” 김종관 감독은 이전처럼 각 에피소드별로 독립된 병렬식 구성을 활용하되 한 남자의 궤적을 통해 복잡 미묘한 감흥을 장편의 호흡으로 완결시켰다. “기억, 상실, 죽음, 늙음에 대한 단상을 뭉쳐 경계를 지워낸 후 여러 가지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대화의 액션만큼이나 리액션이 중요했다는 김종관 감독은 “상대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살려낸 연우진 배우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어둠의 활용이다. 영어제목인 셰이드 오브 더 하트(Shades of the Heart)의 의미처럼 이번 영화는 여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상태, 그러니까 마음의 음영을 섬세하게 잡아낸다. “인물들이 대화하며 서서히 어둠 속에 잠겨가는 느낌, 이야기나 대사가 아니라 영화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걸 탐색해나갔다.” 이른바 영화적것에 대한 고민과 모험들. “독립영화이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가능성과 필요를 보고 기회를 주신 전주국제영화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허구와 현실, 말과 이미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영화는 스크린에 불이 켜진 뒤에도 아름답게 지속된다.

송경원·사진 박종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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