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 붐인 극장가에서 예전 영화를 보다보면, 저런 배우가 있었지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5월에 재개봉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나 20년 만에 첫 개봉한 <로제타>를 보면서 그랬다. 그 배우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호평받은 작품 속 아역 배우들의 근황을 모아봤다.
에밀리 드켄 Emilie Dequenne
<로제타>
먼저 재개봉 같은 최초 개봉을 맞이한 <로제타>의 에밀리 드켄을 소개한다. <로제타>는 1999년 칸 영화제에서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에밀리 드켄은 이 작품으로 데뷔와 동시에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로제타>는 캠핑촌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며 간신히 살아가는 로제타가 직장을 잃으면서 시작된다. 에밀리 드켄은 사람답게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만 하는 로제타를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담아내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에밀리 드켄은 지금도 꾸준히 영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국내에 소개되는 프랑스 영화가 적어 최근 모습을 스크린에서 못 봤을 가능성이 크다. 2018년 4월 12일에 개봉한 <맨 오브 마스크>에서 에밀리 드켄은 극중 얼굴을 잃은 주인공 에두와르(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의 누이 마들렌 역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에 <디스 이즈 아워 랜드>, <파이어맨>에도 출연했지만 국내엔 개봉하지 않았다. <디스 이즈 아워 랜드> 포스터는 <로제타>처럼 그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그래서인지 보고 있으면 감회가 새롭다.
이바나 바쿠에로 Ivana Baquero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5월 2일, 13년 만에 재개봉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는 유례없이 호평을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다시 <헬보이> 시리즈로 돌아갈 수 있었고, 더그 존스는 독보적인 슈트 액터로 인정받았다. 주인공 오필리아를 맡은 이바나 바쿠에로는 관객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이야기의 얼굴로 남게 됐다.
이바나 바쿠에로는 2004년, <더 헌터>를 통해 데뷔했다. <판의 미로> 직전까지 2편의 극장 영화, 2편의 TV 영화에 출연했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 역 후보는 1천 명가량 됐는데, 심지어 이바나는 시나리오 상에 설정된 오필리아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오디션과 대본 리딩에서의 그의 연기는 제작진을 매료시켰고, 제작진은 오필리아의 나이를 변경하면서까지 이바나를 캐스팅했다. 그는 <판의 미로>로 스페인의 고야 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최연소 수상자’ 기록을 세웠다. 이바나는 이후 연기 활동과 학업(법학과를 수료했다)을 병행하며 지금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현재 넷플릭스 독점 드라마 <알타 마르: 선상의 살인자>를 촬영 중이다.
조르지오 깐따리니 Giorgio Cantarini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의 아름다워> 속 조르지오 깐따리니는 희망 그 자체였다. 누가 봐도 귀엽고 천진난만한 미소만도 물론 사랑스럽지만, 그가 연기한 조슈아는 2차 세계대전의 참담함에서 낙관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아들 조슈아를 위해 거짓말을 꾸며대는 귀도(로베르토 베니니)와 아무것도 모른 채 속는 조슈아의 모습은 전쟁과 대비돼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조르지오 깐따리니는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아들로 잠깐 얼굴을 비춘 후 긴 공백기를 가졌다. 2001년 TV 영화 이후 2007년에 복귀했다가, 다시 2008년 이후 2015년에야 단편 영화로 다시 안부를 알렸다. 보시다시피 연기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가진 않지만, 자국에서 TV 드라마와 단편 영화로 눈도장을 계속 찍고 있어서 영화 <람보르기니>의 조르지오 람보르기니 역으로 오랜만에 상업 영화에 복귀한다. 그 외에도 두 편의 단편과 드라마 <플랫메이츠>를 준비 중에 있다.
자레드 길만 Jared Gilman
카라 헤이워드 Kara Hayward
<문라이즈 킹덤>
웨스 앤더슨의 인물들이 보통 ‘아이 같은 어른’이라면, <문라이즈 킹덤>은 ‘어른 같은 아이’ 커플이 주인공이었다. 보이 스카우트, 가족을 피해 사랑의 도피를 강행하는 샘과 수지는 자레드 길만과 카라 헤이워드가 연기했다. 두 배우는 사랑이란 감정에 푹 빠져 의외로 수위 높은 행각(?)도 서슴지 않는 ‘웨스 앤더스식 로미오와 줄리엣’인 <문라이즈 킹덤>으로 데뷔했다.
대다수 관객들은 두 사람 중 카라 헤이워드가 더 눈에 익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어스>에서 잠깐이지만 놀이공원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는 낸시 역으로 등장했다. 2016년 개봉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도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여자친구 실비로 출연했다. 반면 자레드 길만의 출연작 <투-비츠 왈츠>, <노 레팅 고>는 한국에 개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최근 <패터슨>에서 공동 출연했었다.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이 운전하는 버스에서 토론하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자레드 길만과 카라 헤이워드다. 두 사람을 알아본 관객들은 <문라이즈 킹덤>의 샘과 수지가 자란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감회에 젖은 후기를 남겼다.
아미르 파로크 하스미얀 Amir Farrokh Hashemian
<천국의 아이들>
신발이 한 켤레밖에 없어서, 남매는 신발을 바꿔신으며 학교를 가야 한다. 알리는 마라톤 대회 3등 선물이 ‘운동화’라는 걸 알고 동생 자흐라에게 꼭 3등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천국의 아이들>의 시놉시스는 무척 씁쓸한 현실을 담고 있지만, 영화를 보면 알리와 자흐라를 연기한 아미르 파로크 하스미얀과 바하레 세디키의 사랑스러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연기 경력 한 번 없는 두 배우는 영화를 연출한 마지드 마지디의 ‘촉’으로 캐스팅됐고, 찰떡처럼 호흡을 맞추며 사랑스러운 남매의 매력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아미르와 바하레는 <천국의 아이들>이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두 사람은 모두 배우 대신 자신들의 꿈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둘 다 근황을 알 수가 없는데, 그나마 아미르 파로크는 지인의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된 바 있다.
레너드 프로소프 Leonard Proxauf
하얀 리본
<하얀 리본>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레너드 프로소프의 얼굴은 알 것이다. 포스터 전면에 이를 악문 채 눈물을 쏟는 이가 레너드 프로소프니까. <하얀 리본>은 1931년, 폭력적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마을 인물들의 내면을 그려낸다. 레너드 프로소프가 연기한 마틴은 목사 아버지(버그하트 클로브너)에게 금욕 생활을 강요받는 소년이다.
레너드 프로소프는 <하얀 리본> 이후에도 해마다 얼굴을 비췄지만, 대부분 자국 TV 영화나 단편이어서 국내에 소개된 영화는 <하얀 리본>이 유일하다. <하얀 리본> 이후 장편 영화는 2013년 <에브리데이 프로젝트>와 2015년 <노 코멘트> 뿐이다. 요 근래 독일의 범죄 드라마 시리즈 <SOKO Leipzig>, 의학드라마 <Die Eifelpraxis> 등에 출연했다.
헌터 맥크랙큰 Hunter McCracken
타이 쉐리던 Tye Sheridan
라레미 애플러 Laramie Eppler
<트리 오브 라이프>
숀 펜, 브래드 피트 주연이란 소개에 넘어가 <트리 오브 라이프>를 봤다면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주연이라는 숀 펜은 안 나오고 어떤 가정사만 주야장천 나오니까. <트리 오브 라이프>는 오브라이언 부부(브래드 피트, 제시카 차스테인) 밑에서 자란 삼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브라이언 부부의 세 아들 잭, 스티브, R.L은 각각 헌터 맥크랙큰, 타이 쉐리던, 라레미 애플러가 연기했다.
이중 지금 가장 눈에 쏙 들어오는 건 타이 쉐리던이다. 그는 <트리 오브 라이프> 이후 <머드>에 출연했고, <엑스맨: 아포칼립스>를 통해 ‘사이클롭스’ 스콧 서머스로 발탁됐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덕질하려고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인공 파스발/웨이드 역도 타이 세리던이다.
다른 두 형제, 헌터 맥크랙큰과 라레미 애플러는 <트리 오브 라이프>로 배우 인생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도 두 사람 모두 개인 SNS 계정을 통해 근황을 만날 수 있다. 헌터 맥크래큰은 교통 운영 엔지니어로 지내고 있으며, 라레미 애플러는 텍사스 A&T를 졸업했다고 전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