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바보상자(idiot box)로 취급 당해왔다. 지금도 그런가. 어떤 이는 더 이상 바보상자가 아닌 지식상자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당장 TV를 끄고 책을 보라고 주장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뭐가 됐든 텔레비전, 방송은 친밀하고 영향이 큰 미디어다. 영화는 지금 이 시대를 반영하기에 텔레비전 방송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때 진지한 저널리즘 관점에서 텔레비전을 다루는 영화를 높게 평가하기 마련이다. 해외 매체 ‘인디와이어’의 설문에 참여한 평론가들의 생각은 어떤지 알아보자. 그들은 ‘텔레비전에 관한 최고의 영화는 무엇인가?’(What is the best movie ever made about television?)라는 질문을 받았다.
<군중 속의 얼굴>(1957) - 엘리아 카잔
평론가들의 선택에는 늘 그렇듯 고전이 포함된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군중 속의 얼굴>은 방송 제작과정과 셀러브리티 문화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등으로 유명한 엘리아 카잔 감독은 <군중 속의 얼굴>에서 부랑자가 TV 스타가 되고 타락하는 과정을 통해 미디어의 이면을 보여준다. 시놉시스만 봐도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점이 섬뜩하다.
<앵커맨>(2004) - 아담 맥케이
<앵커맨>은 <새터데이 나이트 쇼> 출신의 아담 맥케이 감독이 윌 페렐, 폴 러드, 스티브 카렐 등과 함께 만든 코미디 영화다. <앵커맨>은 기본적으로 막장 혹은 병맛 코미디 영화지만 뉴스룸의 뒷 모습을 볼 수 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박장대소하기에는 뻘쭘할지도 모른다. <빅쇼트>, <바이스>를 연출하고 <앤트맨>의 각본을 쓴 아담 맥케이 감독과 코드가 맞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다. 2013년에 <앵커맨>의 속편 <앵커맨 2: 전설은 계속된다>가 제작됐다.
<브로드캐스트 뉴스>(1987) - 제임스 L. 브룩스
방송국 놈들은 다 거짓말쟁이인가. 우리가 보는 뉴스의 화면은 모두 진실인가. <브로드캐스트 뉴스>를 보면 이 질문들의 답을 구할지도 모른다. 톰(윌리엄 허트), 아론(앨버트 브룩스), 제인(홀리 헌터) 등 야망을 품은 세 언론인이 <브로드캐스트 뉴스>의 주인공이다. 캔자스 시골 출신 톰은 강간 피해자 여성 인터뷰를 통해 승승장구하고, 잘나가던 보스톤 출신 아론은 톰에 뒤쳐지게 된다. 아론과 PD 제인은 인터뷰의 진실을 파헤친다. 인터뷰 도중 흘린 톰의 눈물은 진짜였을까. 영화 속 시청자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진실은 화면 바깥에 있다.
<굿모닝 에브리원>(2010) - 로저 미첼
<굿모닝 에브리원>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비교한 글을 봤다. 이 두 영화가 비교되는 이유는 열정 가득한 신참과 노련한 고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굿모닝 에브리원>의 주인공은 지역방송국 출신 PD 베키 풀러(레이첼 맥아담스)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앤 해서웨이)와 닮았다. 앤디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에게 시달리는 것처럼 풀러도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그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유명 앵커 마이크(해리슨 포드)를 영입했다. 문제는 수다쟁이 앵커 콜린(다이안 키튼)와 마이크의 기싸움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베키는 난감해진다. <노팅 힐>의 로저 미첼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감각은 <굿모닝 에브리원>에서도 발휘된다. 생방송의 묘미를 잘 살린 것은 보너스다.
<네트워크>(1976) - 시드니 루멧
<네트워크>는 영화 혹은 저널리즘 교과서에 나올 법한 영화다. <네트워크>는 신랄한 풍자로 가득하다. 시청률에만 목을 메는 방송, 매스미디어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시대를 풍미하던 앵커였던 하워드 빌(피터 핀치)이 퇴출 통보를 받은 뒤, 방송 도중 권총으로 자살하면 시청률은 잘 나오겠다고 한 농담이 영화의 시작이다. 빌은 실제 방송에서 자살할 것이라고 말했고 방송국 사람들이 그를 끌어내리는 장면이 생방송 됐다. 시청률은 치솟았다. 시스템에 이용당한 빌은 방송에서 “지금 당장 TV를 끄라”고 말한다. 참, 시청률은 돈과 동의어다.
피터 핀치는 영화를 찍은 다음해 사망했다.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핀치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시상식에 참석할 수는 없었다. <네트워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을 수상했지만 감독상과 작품상은 받지 못했다. 이때 작품상 후보가 쟁쟁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대통령의 음모〉, 할 애시비 감독의 〈바운드 포 글로리〉, 존 G. 아빌드슨 감독의 〈록키〉 등이 있었다. 작품상과 감독상은 〈록키〉에게 돌아갔다.
<트루먼 쇼>(1998) - 피터 위어
‘리얼’이라는 말은 방송국에서 좋아하는 말이다. 그게 진짜이든 진짜 같은 가짜이든 중요하지 않다.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 <트루먼 쇼>는 진짜 같은 가짜를 거부하는 방송을 다룬 영화다. 트루먼(짐 캐리)은 오로지 쇼를 위해 태어났다. 그의 삶은 24간 실시간으로 생방송 된다. 이를 보며 대중은 울고 웃고, 위안과 편안함을 얻는다. 자신의 삶이 모두 쇼인지 모르고 30년을 산 트루먼은 어떡하냐고? 시청률보다 한 남자의 삶이 중요한가. <트루먼 쇼>를 보고도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UHF 전쟁>(1989) - 제이 레비
<UHF 전쟁>은 주인공 조지를 연기한 위어드 알 얀코빅의 영화다. 패러디, 병맛이 키워드인 영화이기도 하다. 1989년 개봉 당시 맞붙은 영화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고스터 버스터즈 2> 등이여서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물론 국내에도 개봉하지 못했고 팬들에게만 알려진 작품으로 남았다. <UHF 전쟁>은 ‘인디와이어’의 설문에 참여한 평론가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선정작이다.
<윌 석세스 스포일 락 헌터?>(1957) - 프랭크 타쉬린
<윌 석세스 스포일 락 헌터?>(Will Success Spoil Rock Hunter?)는 <UHF 전쟁>에 이어 평론가의 취향이 드러나는 선정작인 듯하다. <윌 석세스…>는 프랭크 타쉬린의 코미디 영화로 TV 광고 작가 헌터(토니 랜들)가 유명 여배우 리타(제인 맨스필드)에게 자신이 홍보하는 립스틱을 쓰게 만들기 위해서 연인인 척 연기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씨네플레이가 선택한 베스트 텔레비전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2005) - 조지 클루니
‘인디와이어’의 리스트에 있었으면 하는 영화 한 편을 추가한다. 조지 클루니가 연출하고 출연한 <굿 나잇 앤 굿 럭>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1950년대 미국에 매카시 광풍이 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당시 CBS에서 활약하던 실존인물인 뉴스맨 에드워드 머로우(데이빗 스트라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방송, 뉴스, 언론인이 해야 할 일들을 담은 교훈적인 영화다. 그럼에도 꽤 재밌다. 특히 재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이 주제와 상관 없이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