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가 속편의 시대가 된지 오래다. 속편이 아니면, 리부트나 리메이크를 해서라도 원작 팬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속편의, 시리즈의 시대에 참전을 시도했다가 무참히 무너진 영화들이 있다. 어떤 영화들이 속편을 예고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는지 정리해봤다.
1. 콘스탄틴 2
설마 아직 이 영화를 안 놓아준 관객이 있을까? <콘스탄틴>은 2005년 개봉한 영화로, 천사와 악마가 사는 현대사회에서 퇴마사로 활약하는 존 콘스탄틴이 주인공이다. 현대 사회에 숨어든 천사와 악마라는 배경부터 존 콘스탄틴을 연기하는 키아누 리브스의 멋짐까지 부족한 게 하나 없는데, 지금까지 속편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콘스탄틴 2>를 제작할 예정이고, 키아누 리브스가 복귀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이후 한참 표류하다 2013년 드라마 <콘스탄틴>과 워너의 영화 <저스티스 리그 다크>가 발표되면서 팬들의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마 <저스티스 리그 다크> 또한 미뤄지면서,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가 존 콘스탄틴을 다시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로 뽑으며 일말의 희망이 생기는 듯했지만, DC의 드라마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에서 맷 라이언의 콘스탄틴을 다시 기용하며 산산조각 났다. 일단은 워너-DC가 저지른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혹여 다시 계획한다 해도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다.
2. 헬보이 3
<콘스탄틴>은 그나마 깔끔하게 마무리라도 지었지, <헬보이 3>를 생각하면 답답해서 가슴을 치는 팬들이 많다. <헬보이 2: 골든 아미>에서 ‘세계의 종말’이란 엄청난 떡밥을 남겼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3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사실 1편도 흥행 실패에 가까웠기에 2편에 투자했던 사람들이라면 속편 제작의 뜻을 굳이 꺼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단 시리즈의 가장 방대한 세계가 그려질 텐데, 쪽박 찰 것이 뻔하다면 누가 투자하겠는가. 그렇게 <헬보이 3>은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2017년 갑작스럽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SNS에 거론됐다. 델 토로 감독은 팬들이 원한다면 다시 속편 제작을 추진해보겠다고 밝혔는데, 며칠 후 결국 100% 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3편으로 논의되던 마이크 미뇰라의 시나리오는 이후 리부트로 방향을 바꿨고, 리부트 영화 <헬보이>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론 펄먼 대신 데이비드 하퍼가 새로운 헬보이로 발탁됐다. 하지만 2019년 4월 개봉한 <헬보이>는 수많은 관객들의 질타를 받으며 흥행에 참패했고, 이제는 <헬보이 3>뿐만 아니라 리부트 <헬보이>의 속편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 황금 나침반 2
<황금나침반>은 2007년 기대작 중 기대작이었다. 2007년은 <반지의 제왕> 삼부작,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해리 포터> 시리즈 등 다양한 판타지 영화가 뜨거운 인기를 구사하던 시기. 국내에선 인지도가 낮지만 판타지 장르 팬들에겐 필독서인 『황금 나침반』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데다, 니콜 키드만, 다니엘 크레이그, 에바 그린, 이안 맥켈런 등 출연진도 화려했으니까. 야심 차게 삼부작으로 발표하며 첫 영화 <황금나침반>을 공개했지만 흥행도, 팬덤의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금나침반>이 취하는, 종교에 대해 반발하는 메시지에 기독교 신자들의 반대 집회가 열렸으니 여론도 좋지 않았다. 흥행도 그저 그런데, 이런 반발까지 사면서 삼부작을 완성한다? 영화를 제작한 뉴라인 시네마는 그걸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영화가 개봉한 다음 해인 2008년, <황금나침반> 시리즈는 제작 중단을 발표했다. 영화는 취소됐지만, 원작자 필립 풀먼의 적극적인 영상화 추진에 힘입어 HBO에서 드라마 <히스 다크 마테리얼>(<황금나침반>의 원제)을 제작해 연내 방영 예정이다.
4. 디스트릭트 9 2 10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 돌아올 건데!!” <디스트릭트 9>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 돌아온다고 말한 친구가 약속한 시간을 훨씬 넘어 10년이 된 지금도 소식 하나 없으니까. 사실 <디스트릭트 9>는 애초 시리즈로 기획된 영화가 아니다. 닐 블룸캠프 감독의 단편 <얼라이브 인 요하네스버그>를 장편화한 것이고, 제작 단계나 개봉 직후에도 속편에 대해 언급한 바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속편이 나올 것 같은 여운을 남기며 끝난 덕분에 닐 블룸캠프 감독의 신작 소식이 들릴 때마다 팬들은 “그래서 디스트릭트는 언제 나옴?”이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닐 블룸캠프 역시 영화 못지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엘리시움>과 <채피>로 흥행에 실패하고, <에일리언 5> 감독으로 발탁됐다 해임되는 등, 소식은 들리는데 신작 보기 어려운 감독이 되었다. 그나마 2017년 ‘오츠 스튜디오’를 설립해 틈틈이 작업물을 내놓다가 현재 <로보캅> 리부트 작업에 투입됐다. 2017년 당시 “디스트릭트 세계관을 활용한 속편을 기획 중이다”라고 밝혔으나 <디스트릭트 9>의 직접적인 속편을 나오지 않을 거라며 확인사살했으니, 팬들은 그저 속을 비우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5. 존 카터 2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시리즈라고 ‘서막’, ‘비긴즈’라는 부제를 붙이면 낭패볼 수 있다. 얼마 전 리부트를 선언한 <파워레인져스>도 국내에는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이었고, 지금 소개할 <존 카터>도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이하 <존 카터>)으로 개봉했다. 결과는? 둘 다 속편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신세다. SF 소설의 기반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화성의 공주』를 영화화한 <존 카터>는 망해서 더 유명해진 케이스다. 영화 사상 가장 망한 영화 열 편을 꼽으면 항상 거론될 정도로 망해서 당시 디즈니 회장이 교체되기도 했다(비슷한 시기에 다른 영화도 망했기 때문). 원작 소설 시리즈가 11권이었고, 이중 일부 내용을 삼부작으로 만들려고 했던 포부는 1편의 대폭발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래도 디즈니인데 언젠가 만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관객을 위해 첨언하자면 『화성의 공주』 판권은 2014년 원작자의 유족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적어도 이 영화의 속편이 제작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6. 아이 엠 넘버 포 2
<판타스틱 4>는 유명해서 제목 드립이라도 나오는데, <아이 엠 넘버 포>는 그런 드립조차 없다. 피타커스 로어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아이 엠 넘버 포>는 지구 곳곳에 퍼져있는 9명의 로리언 행성인이 모가도어인의 공격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넘버 원, 넘버 투, 넘버 쓰리가 죽은 후 넘버 포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모가도어인과 싸워야 한다. 대충 스토리만 읽어도 블록버스터급 액션 영화를 만들기 참 좋은 작품인데, 원작 소설은 무려 6권에 달한다. 당연히 시리즈화를 염두에 뒀을 텐데, 극장 개봉에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서 계획이 꼬이고 만다. 영화를 연출한 D.J. 카루소는 영화 제작 후에 속편을 만들고 싶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표명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고. 도리어 최근 들어 드라마나 다른 영상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7. 페르시아의 왕자 2
나 어릴 때 게임 좀 해봤다, 하는 분이라면 ‘페르시아의 왕자’를 기억할 것이다. 동명의 게임을 영화화한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을 맡아 광활한 사막과 중동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 모험을 그린다. 영화는 깊이 있거나 감탄할 만큼 완성도가 빼어난 건 아니었으나 ‘게임 원작 영화’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에선 수작에 속한다. 하지만 결국 흥행에는 실패했다. 전반적으로 스릴이 넘치고 꽤 잔인한 묘사가 일품인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를 디즈니가 제작했으니, 너무 순진한 영화가 되고 만 것이다. 거기다 게임의 트레이드 마크인 퍼즐과 함정 요소 또한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원작 팬이든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든 그렇게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던 것. 원작 게임이 삼부작으로 진행된 만큼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도 원한다면 삼부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관객들은 이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 외치지 않았고, <페르시아의 왕자>는 단발성 영화로 막을 내려야 했다.
8. 고질라 2
2014년 <고질라>를 말하는 게 아니다. 1998년 개봉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다. 국내에서 CF로 패러디될 만큼 유명한 작품인데 왜 속편이 취소됐을까. 첫 번째는 역시 돈 문제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대규모 블록버스터인데, 그것도 <인디펜던스 데이>로 8억 달러가량을 벌어들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작품인데, 전 세계 3억 8천만 달러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찍었다. 두 번째는 원작 파괴에 대한 반향이었다. 고질라는 원래 일본 토호사의 상품으로(그래서 원래 발음은 고지라다) 할리우드에 영화화를 맡긴 것인데, 원작 훼손과 어처구니없는 완성도로 더 이상의 영화화를 반대하게 된 것이다. 재밌게도 <고질라>는 이후 새로운 고질라의 등장을 암시하는 일종의 프롤로그격으로 기획됐는데, 이 프롤로그가 엉망진창인 탓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못한 셈. 결국 레전더리 픽처스가 <고질라>를 제대로 제작한 2014년까지 고질라는 할리우드의 불명예 전당에 올랐다. 뭐, 2014년 <고질라>도 속편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가 애매한 성적을 거두며 앞으로의 향방이 모호해졌지만.
9. 마스터 앤드 커맨더 2
이렇게 시리즈가 범람하는 시대에, 어쩌다 보니 속편 없는 배우가 된 러셀 크로우. 첫 영화부터 용감하게 시네마틱 유니버스임을 천명한 <미이라>도 전면 취소됐고, 정말 긴 시간이 흐른 후 속편을 꺼내드는 <글래디에이터>도 여러 의견이 오갔으나 러셀 크로우의 출연은 없는 걸로 확정됐다. 그래도 그가 가장 아쉬워할 만한 영화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러셀 크로우가 잭 오브리 선장을 연기한 이 영화는 평단에서나 관객 반응이나 무척 훌륭한 영화라고 호평을 받았다. 특히 해전 관련 영화 중 필견의 것으로 꼽히고 있는데, 역시 속편은 제작되지 않았다. 원작 소설이 20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흥행만 했다면 분명 속편이 나왔을 영화 중 하나다. 실제로 러셀 크로우도 연기를 위해 원작을 다 읽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2017년에야 러셀 크로우가 직접 “속편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는데, 정작 지금까지 어떤 진행사항도 전해지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가능성만 있는 거지, 진짜 제작에 도전할 제작사는 없는 모양이다.
10. E.T. 2
놀라지 마라. 진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걸작 <이티>는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흥행과 완성도 모두 잡은 영화다. 영화를 안 봤어도 하늘을 나는 자전거나 검지 끝을 맞대는 제스처 정도는 알만큼 <이티>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근데 2편이 있다고? 흥행도 성공했는데 왜 안 만들었지? 답은 간단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2편의 스토리는 이렇다. 엘리엇과 친구들이 외계인에 의해 납치되고, 그걸 E.T.가 구해주는 것. 딱 듣기에도 <이티>의 동화적이고 순수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스필버그 또한 이 각본을 기획하는 데 참여했지만, <이티>의 순수함을 해쳐선 안된다고 판단해 속편 제작을 전면 중단했다. <이티>는 소설을 통해 사춘기를 맞이한 엘리엇과 이티가 만나는 속편을 출간한 바 있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영화 <이티>는 <이티>만으로 끝맺을 것 같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