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일본이 자국 영화 때문에 때아닌 혼란을 겪고 있다. 해외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에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비난과 조롱이 이어지는 상황은 만나기 힘들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각 나라의 영화계에서 ’말‘이 나오고 있는 걸까. 2019년 8월, 해외 뉴스를 정리해봤다.
뭐? 실화를 영화화했는데 영웅주의?
미국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사는? ‘월트 디즈니’가 모범답안이긴 하지만, 영화계를 넘어 ‘영화‘라는 매체 판도를 흔들고 있는 넷플릭스도 영향력이라면 밀리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사업에서 스트리밍 사업으로 전환한 후 누구보다 빠르게 미국을 제패했다. 단순히 작품을 빌려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고객들의 성향을 분석한 빅 데이터로 자체 콘텐츠(<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해 한 번 더 도약했다. 넷플릭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본을 토대로 명감독들을 섭외해 영화 제작에도 발을 들였다. 몇몇은 대성공을 거뒀고, 대부분은 실패했다.
이번에 공개한 <더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도 후자에 가깝다. 이 영화는 크리스 에반스라는 대형 스타를 데려왔지만 생각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 평론가들의 점수가 뜨기 전까지는.
<더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가 공개된 날, 메타크리틱은 빨간 불이 들어왔고 로튼토마토는 바로 썩었다. 넷플릭스가 늘 걸작만 내놓은 것도 아니고, 새삼 주목받을 이유가 있을까. 문제는 평론가들이 제시한 영화의 단점이었다. 평론가들은 <더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를 “백인 영웅주의의 산물”이라고 지칭했다. 로저에버트닷컴은 “백인 구세주”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요지는 백인이 난민들을 구해준다는 설정이 영웅주의라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더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비록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한 아리 레빈슨이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여러 실존인물이 영화에서 한 인물로 재창조하는 건 의례 있는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로튼 토마토 관객 점수는 5점 만점에 4점이 넘고, IMDB 역시 6.5점으로 평작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비판은 북미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으로 이어졌다. “또 PC타령 하는 평론가들”이라며 질색하는 이들과 “평론가들이 맞는 말 한건데 과민한다”는 옹호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어느 쪽이든, <더 레드 씨 다이빙 리조트>로서는 어부지리로 대중들의 관심을 갖게 됐으니 결국 승자는 넷플릭스인가 싶다.
뭐? 게임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이라더니 훈계질?
일본
드래곤 퀘스트. 일본 문화 덕질 좀 해봤다면 모를 수 없는 여섯 글자다. <드래곤 퀘스트>는 게임 시리즈의 이름이자 일본 판타지 장르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86년, 패미컴으로 발매한 게임 <드래곤 퀘스트>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특히 일러스트를 맡은 토리야마 아키라(<드래곤볼>의 작가)가 일본 문화계 전반에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드래곤 퀘스트>는 지금까지 10편의 정식 후속작과 다양한 외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세상에 내놓으며 여전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8월 2일(현지시간) 개봉할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는 일본 대중들이 기다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다. 시리즈 최초 풀3D 애니메이션인데다 원작 시리즈 중 명작으로 거론되는 <드래곤 퀘스트 V>의 리메이크였기 때문이다. <도라에몽:스탠바이미>를 연출한 야마자키 다사키가 메가폰을 잡고 원작 게임 디렉터 호리이 유지가 감수에도 참여했으니, 팬들은 그저 신작을 즐기기만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의 뚜껑을 까자마자 관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개봉 이후 이번 극장판의 점수는 5점 만점에 2.1점까지 떨어졌다. 으레 팬덤이 두터운 영화들이 ‘의리’로 높은 평점을 유지하는데, 이번 영화는 별 반개 세례 속에서 드물게 만점을 주는 충성팬이 있을 뿐이었다. 안그래도 자국 문화에 충성심이 높은 일본에서 국가대표 게임이라 해도 좋을 드래곤 퀘스트를 향한 이 혹평의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엔딩’이었다.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는 <드래곤 퀘스트 V>의 스토리를 본땄지만, 게임의 내용을 고스란히 구현하진 않았다. 야마자키 다사키 감독이 주도하에 완전히 새로운 결말을 선보였는데, 이 결말이 본편과 지나치게 동떨어져있어서 팬들이 느낀 배신감이 그동안의 충성심을 넘어섰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기운 빠지는 허무한 엔딩이 아니라 원작 팬들을 향해 훈계하는 듯한 결말이었으니 <드래곤 퀘스트>를 평생 사랑해온 관객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개봉 2주차이기 때문에 이런 혹평이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 흥행에 어떤 영향을 줄지 미지수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근 30년동안 시리즈의 버팀목이 된 팬덤에게 경각심을 줬을 것이다. 절대로, 시리즈의 이름을 믿고 구매해선 안된다는 것을.
기껏 일본 기술력 짜왔더니 때아닌 불매?
한국
최근 한국 영화계를 흔든 뉴스는 한두개가 아니다. 얼마 전 <나랏말싸미>는 역사 왜곡으로 진통을 앓았고, <봉오동 전투>는 사실보다 과장된 자연 훼손 뉴스로 개봉 전부터 곤혹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 편의 영화에 얽힌 이야기는 사소한 농담으로 만드는 기류가 형성됐으니, 바로 ‘반일 불매 운동’이다.
가장 먼저 몰매를 맞은 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었다. 이 영화는 마블 히어로 스파이더맨이 주인공이지만, 소니 픽처스가 배급을 맡고 있어서 반일 불매운동 제1순위였다. 팬들 사이에선 “소니 픽처스는 미국 콜롬비아 픽처스가 원형이니 미국 회사다”라는 옹호와 ”스스로 소니 코퍼레이션의 자회사라고 명시하는데 그게 왜 미국회사냐”라는 반박이 오갔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마블 팬덤의 힘으로 800만 관객을 돌파하긴 했지만, 영화 외적 요소로 구설수에 오른 것이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여름 극장가는 블록버스터들의 대격돌이 벌어지는 전장이자 여름 방학을 맞이한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영화의 장이 열리는 곳이다. <레드 슈즈>, <마이펫의 이중생활 2>를 비롯해 7월 말부터 대작 애니메이션이 하나씩 개봉했다. 일본 애니메이션도 당연히 이 시류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반일 정서가 깊어지면서 배급사나, 극장이나 일본 작품을 상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원체 팬이 많은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신작 <명탐정 코난: 감청의 권>은 개봉을 강행했으나 전편에 비하면 관객수가 확실히 낮았다. ‘도라에몽’의 신작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달 탐사기>는 아예 8월 14일 개봉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장 난감해진 건 <안녕, 티라노: 영원히, 함께>(이하 <안녕, 티라노>)다. 이 영화는 그동안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연출해온 시즈노 코분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해왔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두 사람의 이름에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반일 불매운동이 일어나면서 <안녕, 티라노>는 부랴부랴 이 영화가 ‘한국 자본 85%, 중국 자본 15%로 제작된 한국 영화’임을 해명해야 했다. 다만 자본 문제와 별개로 <안녕, 티라노>의 원작 <고 녀석 맛나겠다>가 일본 작품이란 건 여전히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다. 개봉을 연기하지 않고 8월 14일 극장에 걸릴 <안녕, 티라노>가 어떤 결과를 거둘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