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그늘 아래 있으면 적당히 살만했던 거 같은데, 이제는 그늘로 들어가도 습한 공기에 포위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여름이 오면 “아가미로 호흡했으면 좋겠다”는 농담이 유행어처럼 곳곳에서 들릴 정도다. 이럴 때 우리 조상들은 뭐라 했던가.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은 열로 다스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들의 뜨거움으로 무더위를 날려보자. 물론 에어컨은 켜두시고.
※아래 소개할 영화들은 8월 16일(금)부터 8월 23일(금) 정오까지, 네이버 시리즈에서 바로 사용 가능한 즉시 할인 쿠폰을 발급받을 수 있다.
공수창|감우성, 손병호, 박원상|15세 관람가|바로보기
요즘은 한국이 동남아 날씨라고들 한다. 공기가 습해져 후덥지근한 기운이 한층 더해졌기 때문이다. <알 포인트>의 병사들이 느꼈을 날씨가 딱 이랬을 것이다. 사망한 줄 알았던 수색 대원들을 찾기 위해 투입된 병사들은 알 수 없는 기운에 점점 미쳐가기 시작한다. 그 광기만큼 병사들을 더 힘들게 한 건 벗어날 수 없는 밀림과 무거운 공기였으리라. 숲으로, 서늘할 것 같은 폐허로 들어가도 슬그머니 찾아오는 더운 공기. 더운 날씨가 이들을 미치게 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면 동남아 지역 특유의 습한 기운이 스크린 너머로 새어 나오는 듯하다. 무엇보다 공포 영화니까 이 여름에 보기 딱 좋다.
루카 구아다니노|틸다 스윈튼, 랄프 파인즈, 마티아스 쇼에나에츠|청소년 관람불가|바로보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게 여름은 중요한 계절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여름은 찬란해서 아련했다. <비거 스플래쉬>의 여름은 뜨거웠기에 모두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말 한마디 필요 없던 마리안(틸다 스윈튼)과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의 여름에 말 많은 해리(랄프 파인즈)와 그의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가 찾아온다. 친구였던 폴과 해리, 연인이었던 마리안과 해리, 세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피어나고 관망하는 듯한 페넬로페마저 이 관계에서 슬그머니 잠영을 시작한다. 감독이 숨겨놓은 메타포와 함께 이탈리아의 햇볕이 쏟아지는 여름 풍경은 <비거 스플래쉬>를 즐겁게 볼 수 있는 포인트.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건 그 여름뿐이란 사실을 깨닫겠지만.
데이빗 린|피터 오툴|12세 관람가|바로보기
더운 걸 얘기하면 사막이 빠질 수 없다. 사실 살면서 사막 갈 일 없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영상 기술 발전에 힘입어 영화에서 사막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이런 사막 영화의 끝판왕이라면 물론 <아라비아의 로렌스>일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 지역에 파견 간 영국군 T.E.로렌스(피터 오툴)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T.E.로렌스의 자서전을 토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등장인물 미화 논란이 있었으나, 작품이 워낙 뛰어나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은 물론이고 지금도 꼭 봐야 할 영화 순위권을 다투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붙타는 용광로와 같다”는 사막을 가로지는 로렌스와 아랍군의 모습에서 지금 당장 물을 벌컥벌컥 마시거나 샤워기 아래로 뛰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조지 밀러|톰 하디, 샤를리즈 테론, 니콜라스 홀트|15세 관람가|바로보기
이쪽은 그냥 사막도 아니다. 핵 전쟁을 황폐화된 사막이다. 심지어 거의 모든 장면에 차량이 등장한다. 이것만으로도 후덥지근한데, 기타에서 불을 뿜으며 연주를 하는 미친 녀석도 하나 있다. 팝콘은 안 사가도 콜라는 꼭 사 가라는 조언이 필요한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내용은 별거 없다. 임모탄 조(휴 키스-번)의 폭정에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착취당하는 여성들을 데리고 도망가고, 이에 임모탄 조가 부하들과 그를 쫓는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주인공 맥스(톰 하디)는? 수혈용 ‘피 주머니’로 얼떨결에 싸움에 껴들었을 뿐. 아무튼 차량들이 달리고, 부서지고, 뒤집어지고, 파괴되는 와중에 얻어맞고, 쓰러지고, 일어나고, 싸우는 맥스 일행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아쿠아콜라를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은 보너스다.
[ 코어 ]
존 아미엘|아론 에크하트, 힐러리 스웽크, 딜로이 린도|12세 관람가|바로보기
<코어>는 아예 더운 곳으로 가야 하는 영화다. 지구의 내핵이 회전을 멈추면서 전 지구에 이상기류가 발생한 것. 어쩌겠나. 내핵을 돌리려면 내핵으로 가야지. 지구의 내핵은 땅 밑으로 5000km는 가야 하며, 그 온도는 최소 6000℃라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아예 감이 오지 않는다. 36℃만 돼도 “찜통이다”라고 말하는데, 6000℃라니. 다행히 그 내핵으로 향하는 건 필자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닌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와 전문가 6명이다. 이들은 두터운 맨틀을 지나 지금까지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한 내핵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록 무더위 같은 날씨에 관한 건 아니지만 <코어>에서 등장하는 맨틀과 내핵의 세계는 우리 세계는 아직 살만한 거였구나 교훈 같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