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영화감독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특유의 흔적을 남긴다. 영화만큼이나 재미있게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감독들을 소개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블랙 스완>, <마더>

2017년 작 <마더!> 발표 당시 포스터, 촬영 현장, 프로모션 투어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언어로 ‘mother!’를 뜻하는 낱말이 영사된 이미지들까지 거의 ‘도배’ 수준으로 홍보 게시물을 올리던 시기 이후엔 간간이 세계 각지에서 포착한 순간들을 올린다. 아로노프스키의 영화가 죄다 진지하고 점점 장황해지는 것에 반해, 뉴욕과 시카고는 물론 몽골, 이탈리아, 러시아, 푸에르토리코, 일본 등에서 담아낸 풍경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심지어 꽤나 유머러스하다. 중간중간 프로듀서를 맡은 VR 시리즈 <스피어스>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원 스트레인지 락>을 홍보하기도.


알폰소 쿠아론

<그래비티>, <로마>

늘 (멕시코의 공용어인) 스페인어와 영어를 함께 코멘트로 남기는 알폰소 쿠아론의 인스타그램은 크게 둘로 나뉜다. 2017년 10월 멕시코를 위한 캠페인들을 처음 올린 직후엔 아들과 딸의 포스팅을 ‘리그램’ 하거나, 기예르모 델 토로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 멕시코 출신 영화감독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2008년 7월, <그래비티>(2013)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신작 <로마>의 프로모션이 시작된 이후에는 이듬해 4월까지 종종 <로마> 관련한 이미지만 올라왔다. 하지만 쿠아론의 홍보는 조금 달랐다. 여느 경로에선 볼 수 없었던,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로마>의 현장 사진들을 소개했다. 4월 이후에는 아무런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으니 그를 팔로우 하지 않더라도, <로마>를 사랑했더 이들이라면 꼭 방문해서 쭉 감상해보길 권한다.


박찬욱

<올드보이>, <아가씨>

그 흔한 영화 홍보도 없을 뿐더러, 이 계정 주인이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좀체 알아챌 수가 없다. 프로필에 이름만 지운다면 어느 사진가가 운영하는 계정처럼 보인다. 평소 영화는 물론 음악,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갈래의 작품들이 선보이는 자리에 그를 봤다는 목격담이 자주 들리는 박찬욱 감독은 2018년 8월부터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틈틈이 올리고 있다. 일상의 흔적을 바로바로 남기는 것 같진 않다. 2013년 사진도 올라오는 걸로 보아 평소 마음에 들어하던 사진을 올리는 듯하다. 쭉 보고 있으면 실력 좋은 사진가의 작품집을 넘겨보는 감흥이 인다.


존 파브로

<아이언맨>, <라이온킹>

존 파브로의 계정은 마치 디즈니 중역의 것 같다. <라이온킹>,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정글북>, 11월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될 <만달로리안>까지 지난 3년간 디즈니에 참여한 작품들에 관한 이미지들로 빼곡하다. <아이언맨> 1, 2편을 연출하고 해피 호건 역으로 출연까지 했던 파브로인 만큼 그의 인스타그램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계정 다음으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직찍’이 많이 올라온다.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를 만들고, 요즘엔 넷플릭스의 <셰프 쇼>라는 예능을 진행하고 있는 파브로는 종종 자기가 직접 만든 듯한 (딱히 맛있어 보이진 않는) 음식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라이언 존슨

<브릭>,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데뷔작 <브릭>부터 범상치 않은 비주얼 감각을 선보인 라이언 존슨은 일상의 흔적들을 흑백으로 남기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가 찍은 초상 사진은 유독 따뜻하다. 일하면서 마주한 스탭과 기자의 모습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출연한 배우들이 피사체가 될 때 이미지 안에 담긴 애정이 더욱 크게 만져진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촬영 현장이 화기애애 했을 거라고 믿게 될 정도다. 대니얼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등과 함께 한 신작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이 개봉할 즈음이면 또 어떤 사진들이 대거 올라올지.


스파이크 리

<똑바로 살아라>, <블랙클랜스맨>

지난해 발표한 <블랙클랜스맨>으로 재기에 성공한 스파이크 리는 인스타그램 헤비 유저다. 현재 게시물만 4300개가 넘는다. 사시사철 모자와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는 셀피, 인종문제와 관련한 기사들(도널드 트럼프는 스파이크 리의 계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백인이다), 자신이 게스트로 참여하는 행사들의 이미지 등, 올리는 것들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그의 초기 걸작 <똑바로 살아라>의 개봉 30주년을 맞아 그에 관한 걸 부쩍 자주 업로드 하고 있다.


조던 필

<겟아웃>, <어스>

조던 필의 인스타그램은 스크랩북에 가깝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는, 간간이 자기가 관여한 작품의 포스터를 올리거나 재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을 당시 찍었던 화보를 올린 걸 제외하면, 팬들이 올린 <겟아웃>과 <어스> 관련 짤들을 퍼와서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이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4월 이후에는 딱 그쳤다. 타임라인을 한참 거슬러가다보면 온갖 인물들로 분장한 코미디언 조던 필의 셀피를 볼 수 있다. 그의 최신 소식이 궁금하다면 프로필에 ‘조동필’이라고 떡 하니 새겨진 트위터 계정이 유용할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택시 드라이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양 옆에 두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도 틈틈이 인스타그램으로 근황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올초 공개한 밥 딜런 다큐멘터리 <롤링 썬더 레뷰>와 과거 스콜세지의 영광을 함께 한 대배우들과 다시 한번 작업한 <아이리시 맨> 홍보물이 올라오는 사이, 57세에 만난 늦둥이 프란체스카와의 단란한 순간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엔 루카 구아다니노의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We Are Who We Are)에 프란체스카가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리시 맨>이 개봉할 즈음엔 로버트 드 니로, 하비 케이틀, 알 파치노, 조 페시 등 황금기 시절 스콜세지 사단에 단체 사진을 기대해봐도 좋겠다.


제임스 완

<컨저링>, <아쿠아맨>

ID부터 ‘오싹한 인형’(creepy puppet)인 제임스 완의 인스타그램은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쏘우>로 데뷔해 <컨저링> 유니버스로 공포영화의 대가로 올라선 감독답게 종종 기괴한 조각상을 올리는가 하면 (수녀 귀신 피규어를 올리면서 ‘뷰티풀’하다고 코멘트를 남긴다), 수녀 귀신을 연기한 배우이자 연인 잉그리드 비수와 달달한 셀피를 남기기도 한다. 반면 약혼 소식도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사랑꾼이다. 한참 타임라인을 지나면 3년 전 <컨저링 2> 개봉 당시 한국에서 프로모션 일정을 소화한 흔적도 볼 수 있다.


에드가 라이트

<새벽의 황당한 저주>, <베이비 드라이버>

에드가 라이트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감독이 아닐까? 4627개. (2019년 8월 26일 기준) 에드가 라이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개수다. 하루에 하나씩 올렸다고 치면 거의 13년에 달하는 양. 촬영 현장, 프로모션 투어, 덕질, 셀피… 뭐 하나 쏠리는 데 없이 골고루 올린다. 요즘엔 신작 <라스트 나잇 인 소호>(Last Night in Soho)를 한창 촬영 중이라 현장 사진이 유독 많은 편이긴 하다. 스탭들, 특히 촬영을 맡은 정정훈 감독과 사이가 좋은지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정작 정정훈 감독은 자기 인스타그램을 연 지 7년이 넘는 가운데 자기 얼굴은 딱 하나만 올렸다.) 알아주는 ‘덕후’인 에드가 라이트는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사진을 남겼는데, 특히 <새벽에 황당한 저주>와 <베이비 드라이버>에 음악을 사용한 퀸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와의 ‘쓰리샷’을 보면 ‘성덕이란 이런 걸까’ 중얼거리게 된다. <베이비 드라이버> 개봉 당시에도 한국에서 수많은 흔적들을 남긴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페이지를 내려도 2017년 8월 게시물이 나오지 않아 찾는 걸 포기했다. 아, 에드가 라이트는 종종 지금 뭘 듣고 있는지 올리곤 하는데 그 선곡이 매우 훌륭하니 참고하시길!


아녜스 바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2019년 3월 28일 우리 곁을 떠난 아녜스 바르다 역시 생전에 인스타그램을 활용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라면 무엇이든지 시도했던 이 위대한 예술가는 인스타그램을 운영할 때도 자신의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낼 줄 알았다. 말년에 협업했던 작가 JR과 세대를 뛰어넘어 꽁냥꽁냥 우정을 과시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푸근하다. 지난해 칸영화제 참석 당시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행복한 라짜로>를 콕 집어, 감독과 배우의 모습을 흔들리는 피사체 그대로 올리면서 묵직한 지지를 던지는 걸 볼 때는 또 어떤가. 바르다는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AGNES V.'가 새겨진 감독 의자 위 반려묘 니니의 모습과 함께 자기 작품이 TV에 방영될 예정이라는 공지를 마지막 인사처럼 남겼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