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와 종말의 날>은 8월 29일(목) 올레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극장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synopsis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행사 준비가 한창인 어느 고등학교. 안나(엘라 헌트)는 아버지와 대학 입학을 두고 다툰다. 그녀의 친구들인 존(말콤 커밍), 스테프(사라 스와이어) 등도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낸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당일, 전 세계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은 삽시간에 좀비로 변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안나와 친구들은 서로를 만나 뭉치고,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왼쪽부터) 제50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여러 판타스틱 영화제 섭렵

확실히 장르영화제에서 구미가 당길만한 작품이다. 좀비와 뮤지컬을 결합시킨 <안나와 종말의 날>은 국내 상륙 전, 이미 여러 판타스틱영화제를 섭렵했다.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 중 하나인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미드나잇 익스트림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판타지아영화제 등에서 초청받았다. 2018년에는 국내의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돼 신박한 영화에 목말라 있던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디즈니 감성

<안나와 종말의 날>이 가장 먼저 드러내는 요소는 하이틴이다. 십대들의 진로와 사랑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 되는 초반부는 영락없는 하이틴 로맨스다. 거기에 율동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은 <하이 스쿨 뮤지컬>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디즈니 감성까지 잔뜩 묻어났다. 이를 염두에 둔 것일까. 노래 가사에서도 이게 디즈니 영화도 아니고 잘 풀릴 리가 없지라는 유머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근슬쩍 등장하는 19금 드립들은 궁금증을 자극했다. “과연 이 영화의 관람가는 어떻게 될까?”


청불 컬트 영화

그렇다. <안나와 종말의 날>은 청소년 관람불가였다. 하이틴도 결국 수많은 영화의 장르 중 하나였던 것. 좀비들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그 본색을 드러냈다. 주요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좀비들과 맞서고, 화면에는 피와 살점이 난무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진 말자. 좀비들을 무찌르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과 발랄한 분위기는 B급 감성을 극대화했다. 처참히 쓰러져가는 좀비들이 불쌍할 정도. <안나와 종말의 날>은 하이틴 뮤지컬에 컬트 좀비를 섞으며 난생처음 보는 독특한 조합을 완성했다.


후진 없는 코미디

전혀 엮이지 않을 법한 하이틴과 컬트 장르의 가장 큰 공통점은 코미디다. 두 장르 모두 진중한 분위기보다는 가벼운 톤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안나와 종말의 날>은 이들의 결합을 위해 교집합인 코미디 요소를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항마력을 증진시키는 오글오글한 대목과 섹시 코미디, 슬랩스틱부터 말맛을 살린 대사까지. 시종일관 재기 발랄한 유머를 자랑했다. 처음에는 어이없음에서 비롯되는 실소일지라도 묘하게 중독된다. 마치 하정우식 아재개그라고 할까. 당신들이 웃든 말든 내 갈 길을 가겠소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는 맛 vs 모르는 맛

사실 위 장르들을 모두 섞었다는 것에서 <안나와 종말의 날>은 이미 진부함을 벗어던졌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영화 속에는 빠지면 섭섭한, 좀비영화 특유의 클리셰들이 적잖게 등장한다. 잘난체하는 재수 없는 학생, 빌런으로 거듭나는 권위적인 선생님, 중요한 타이밍에 꼭 말을 안 듣는 기계, 나는 틀렸어, 먼저 가 등이다. 그러나 그중 몇몇 요소들은 클리셰 뒤틀기를 시도하며 아는 맛과 모르는 맛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한 언급은 피하지만 당연스럽게 예상하게 만들고, 이를 빗나가게 한 지점들을 엿볼 수 있었다.


고퀄리티 음악

반쯤 정신을 놓고 관람하게 되는 <안나와 종말의 날>에서 유일하게(?) 진중하게 감상하게 되는 부분이 음악과 가창력이다. B급 감성의 영화이므로 음악도 엉성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안나와 종말의 날>은 <라라랜드>, <스타 이즈 본>, <위대한 개츠비> 등의 음악에 참여했던 안소니 세일러가 사운드트랙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이를 소화한 배우들의 실력도 훌륭했다. 여러 장르를 뒤섞은 만큼 음악 역시 발랄한 분위기부터 록밴드의 공연을 보는 듯한 장면, R&B 등 다양한 곡들이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 어색하지는 않냐고? 앞서 말한 듯 모든 엉성함을 재미로 승화시키는 코미디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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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