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부 이상 판매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160만 관객을 돌파했다. 김지영의 일생에 집중했던 소설과 달리,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육아맘 김지영을 비롯해 사회의 다양한 여성 구성원을 하나하나 조명하고, 그들의 고충을 녹여내며 한국 여성들의 현재를 아우른다.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객과 거리를 좁혔던, <82년생 김지영> 속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얼굴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던 여성 조연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김미경 지영의 엄마, 미숙 역

지영의 엄마 미숙은 경력 단절과 육아로 ‘허깨비’가 되어간 딸의 속 사정을 눈치채지 못했단 사실이 속상하기만 하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자랑하는 지영 모녀의 대화 장면, 속상함으로 얼룩진 마음에 목놓아 우는 미숙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기란 어렵다. 연극 무대 위에서 활동하다 딸을 낳은 후, 일보단 가정 일에 집중해야 했던 그녀의 경험이 <82년생 김지영> 속 미숙의 캐릭터를 더 진솔하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김미경은 그간 <또 오해영> <고백부부>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엄마를 연기해왔다. 겉으론 무심한 척하지만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인, 일상과 맞닿은 그녀의 ‘현실 엄마’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곤 했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을 찾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특별출연으로 함께한 <암전>을 제외하면, <오직 그대만>(2011)이후 8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또 오해영>


공민정 은영 역

“능력이 없어도 내 살길은 내가 알아서 한다” 당당히 말하던 지영의 언니, 은영은 <82년생 김지영>의 사이다 캐릭터다. 최근 독립영화를 즐겨 본 이들이라면 그녀의 얼굴이 눈에 익을 것. 제30회 청룡영화상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구경>을 통해 배우로 데뷔한 공민정은 연극,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어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 <풀잎들>에선 죽은 친구를 애도하는 미나를 연기하며 안재홍과 호흡을 맞췄고, 단편 <두 개의 방> <성인식> 등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등의 스크린을 찾았으며, 올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관객상을 수상한 <라이브하드>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곧 그녀를 만나볼 수 있을 작품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수상한 <이장>이다. 아버지의 묘 이장을 앞두고 모인 가족의 이야기로,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 셋째 딸 금희를 연기했다.

<풀잎들>


박성연 김 팀장 역

지영에게 자신이 “좋아 보이냐” 묻고서, 좋은 엄마나 좋은 아내, 좋은 딸이 되는 건 애초에 포기했다며 씁쓸히 미소 짓던 김 팀장. 상사로서의 카리스마와 워킹맘으로서의 애환이 동시에 녹아든 김 팀장의 복잡다단한 얼굴에서 배우 박성연의 내공이 느껴진다. 연극 무대 위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영화 촬영장에 입성한 건 2010년부터다. <의형제> <카트> 등 충무로의 굵직한 영화들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곡성>에선 집에 불을 지른 뒤 나체 상태로 경찰서의 유리 문 앞에서 서성이던 권명주를, <독전>에선 농아 남매(김동영-이주영)와 락(류준열)의 대화를 리얼하게 번역해 웃음을 줬던 수화통역사를 연기하며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82년생 김지영> 이후론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될 단편 <상주>로 스크린을 찾을 예정이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결혼 후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다가 뜻밖의 만남을 통해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50대 가정주부 상주를 연기한다. <82년생 김지영>의 내용과 맞닿은 영화라는 점이 인상 깊다.

<독전>


이봉련 혜수 역

지영이 현시대의 육아맘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라면, 혜수는 미혼의 여성 직장인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회사 생활을 하며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얼토당토않는 범죄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앞장서서 잘못된 걸 바로잡아나가는 캐릭터. 지영에게 복직의 희망을 불어넣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봉련은 여름과 겨울 시즌을 장식하는 한국의 대형 상업영화에 성실히 얼굴을 비춰왔던 배우다. <택시운전사>의 극 초반, 만섭(송강호)의 손님으로 택시에 탑승해 웃음을 안긴 임산부를 시작으로, <암수살인>에선 강태오(주지훈)의 누나를, <마약왕>에선 이두삼(송강호)의 여동생이자 밀수범인 이두숙을 연기했고 <생일>에선 정일(설경구)의 여동생 정숙을 연기하며 극에 밀도를 더했다. 올해 여름, 스크린 속 옥상에서 “따따따 따 따 따 따따따”를 열심히 외치던 배우이기도 했다. <엑시트>에선 만삭의 상태로 엄마의 칠순 잔치에 참석한 용남(조정석)의 셋째 누나를 연기했다.

<마약왕>


김미경 대현 모 역

요즘에도 저런 시어머니가 있다고? 며느리의 마음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자신의 피붙이만 챙기다가도, 지영의 상태를 듣고 보약 한재를 뚝딱 지어보내던 대현의 엄마는 관객의 감정 곡선을 롤러코스터로 만들던 캐릭터였다. 지영의 엄마를 연기한 김미경과 동명이인 배우, 대현의 엄마를 연기한 김미경은 연극계에서 '부산의 박정자'로 불릴 만큼 오랜 내공을 쌓아온 배우다. 스크린 데뷔작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 이후 <이웃사람> <소원> <암수살인> 등 대형 영화에 작은 역으로 출연해왔다. 동시에 독립영화 <대회전> <마트 옆 시장>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2013년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여우연기상을 수상하기도. 올해 상반기 개봉한 <배심원들>에선 쉽사리 판단을 내지 못하는 배심원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캐릭터 양춘옥을 연기하며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배심원들>


(왼쪽부터) <유열의 음악앨범> <82년생 김지영>

김국희 수빈엄마 역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 엄마들끼리 가진 소소한 자리, 엄마들은 자신이 엄마이기 이전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되짚어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각자의 전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수학 문제를 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육아맘과 아이의 동화책을 읽어주기 위해 연기를 전공했다며 너스레를 떨던 육아맘. 올해 여름 개봉한 <유열의 음악앨범>을 본 관객이라면 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쳐주는 한 엄마에게 시선이 쏠렸을 것이 분명하다. 수빈 엄마를 연기한 김국희는 <유열의 음악앨범> 속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를 엄마처럼 품던 캐릭터, 은자를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미소(이솜)의 친구 현정으로 등장한 <소공녀> 역시 그녀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작품. 꿈은 아득해진지 오래, 가정 일 처리만으로도 하루를 다 보냈던 현정이 <82년생 김지영> 속 지영과 같은 처지에 놓인 캐릭터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