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개봉한 <겨울왕국>은 애니메이션 최초 천만 관객 돌파는 물론이고 새로운 기록을 하나 세웠다. 바로 한국어 더빙 O.S.T. 발매. 2000년대 초 이후 잠잠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한국어 더빙 O.S.T.가 관객들의 수많은 요청과 ‘렛 잇 고’(Let it go) 열풍에 힘입어 다시 재림한 것이다.
그런 ‘명품 더빙’의 주인공 박지윤 성우와 소연 성우가 <겨울왕국 2>로 돌아왔다. 자매의 우애와 각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전달하며 캐릭터의 매력을 더한 안나 역의 박지윤 성우, 엘사 역의 소연 성우는 이번 속편에서도 ‘꿀보이스’로 관객들의 N차 관람을 이끌었다. 특히 박지윤 성우는 안나의 노래까지 소화하며 팬들에게 ‘안나 그 자체’로 인정받기도. 씨네플레이는 그들을 만나 <겨울왕국 2>와 성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020만 관객을 넘었다고 들었어요(인터뷰 당일 12월 13일 기준). 이른바 ‘쌍천만 성우’가 되신 소감을 듣고 싶어요.
박지윤 전 사실 쌍천만 넘었어요. 한국 영화에 목소리 참여할 기회가 우연찮게 돼서 여러 작품을 했는데, 그중 <베테랑>이 있어요. 제가 나온지 모르시겠지만(웃음). <겨울왕국 2>가 조금 부담됐긴 했었거든요. 그런데 많이 사랑해주셔서 너무 기쁘죠.
소연 <겨울왕국>이 더빙을 하면서 달랐던 부분은 일부러 더빙판을 찾아봐주신 분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더빙 버전은 아이들만 본다는, 이런 경향이 <겨울왕국>에서 무너졌거든요. 이번에도 더빙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겨울왕국 2> 한다며?” 물어보고요. 이 작품은 관심도가 이렇게 다르구나. 그래서 특별히 우리말 버전을 찾아봐주신 관객, 팬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리죠.
<겨울왕국 2>는 2015년 3월경에 처음 제작이 발표됐어요. 두 분은 언제부터 더빙 작업에 들어가셨나요? 혹시 전편처럼 오디션 같은 과정이 있었나요?
소연 새로 들어오는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기존에 있던 캐릭터들은 그대로 가고요. 디즈니든 다른 애니메이션이든 처음 오디션 보고 뽑았던 성우들의 목소리를 유지하길 바라요.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각인된 목소리가 달라져서 ‘어? 이런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하는 걸 지양하니까요.
박지윤 저는 노래 녹음 때문에 시나리오 받기 전 노래 녹음을 먼저 했었어요. 디즈니에서 느낌을 알고 싶다고 그래서 완성되지 않았던 노래로 7월부터 녹음했죠.
소연 (극장 애니메이션은) 보통 개봉 3개월 전쯤에 더빙이 들어가요. <겨울왕국 2> 녹음을 마친 건 10월? 개봉 한 달 전쯤이었어요. 조금 이례적이었어요. 여러 부분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시는구나 싶었어요.
박지윤 저희도 극장판 더빙을 많이 했는데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신다는 게 느껴졌구요.
보통 TV 애니메이션 더빙 현장을 보면 주요 더빙 성우들이 함께 모여서 하는 광경인데 극장판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박지윤 극장판은 호흡이나 이런 게 물리면 편집하기도 힘드셔서 다 개별로 녹음해요.
소연 스크린이 크잖아요.
박지윤 그래서 정말 미세하게.
소연 입모양 같은 게 정말 크게 보이니까 한 사람씩 녹음하죠.
<겨울왕국 2>는 제목은 겨울이지만 가을 분위기가 나잖아요. 단편 <겨울왕국 열기>에선 여름 분위기가 있었고. 두 분은 개인적으로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세요?
박지윤 여름에서 가을 갈 때 있잖아요. 그때가 좋긴 한데,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가지고(웃음). 요즘은 우리나라가 너무 추워지고 더워지니까 여름, 겨울은 조금 힘들더라고요.
소연 저는 늘 가을을 좋아했어요. 보통 여자들이 봄을 타고, 남자들이 가을을 탄다 그러는데
박지윤 맞아 맞아, 가을 타요. 그래서 가을이 좋은가 봐.
소연 가을이 되면 ‘센치’해지고, 그렇게 느껴지는 우울함이나 고독감이 나쁘지 않은… 그래서 막 안 쓰던 시도 쓰고 사진도 찍고, 낙엽도 모아다가 액자에 넣어놓고(웃음).
시는 혹시 발표를…?
(일동 웃음)
박지윤 차곡차곡 모았다가?
소연 차곡차곡 모았다가…!
겨울이 성우분들이나 배우분들에게 목 관리가 되게 중요한 계절이잖아요.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떻게 목 관리를 하시는지.
소연 각자의 민간요법 같은 건 있지만, 한 가지 기본은 꼭 지키는 거죠. 목이 항상 따뜻하고, 목 안이 촉촉하면 감기에 걸리더라도 회복이 더 빠르거든요. 녹음할 때도 물통이라던가 늘 가지고 다녀요. 특히 게임 녹음은 목을 혹사할 일이 있거든요. 바넬로피(<주먹왕 랄프>)처럼 성대를 조여서 하는 경우도 그렇고. 같은 시간을 하더라도 엘사를 할 때랑 달리 바넬로피를 하면 완전히 녹다운 될 정도로 힘들거든요. 그럴 때 대비해 계속 물을 마시면서 목 안쪽의 열감을 떨어뜨리려고 하죠.
박지윤 커피를 되게 좋아하는데, 몸이 으슬으슬하다거나 목이 안 좋은 걸 느끼면 안 먹던 도라지 배즙, 지금 차에 있긴 한데(웃음). 그런 따뜻한 걸 계속 먹으려고 해요. 건강할 땐 물이 없으면 커피 항상 먹는데 이럴 때는 조금 신경 쓰려고 해서요.
성우는 여러 매체와 분야에서 일을 하시잖아요, 특별히 애니메이션을 할 때의 즐거움이 있다면?
소연 저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편이라 직접 그려보기도 하고.
박지윤 그림도 잘 그리세요.
소연 성우분들이 애니메이션 해서 그런지 좋게 말하면 안 늙어요. 선배님들도 어린 감성을 표현하시니까 복장도 자유롭고, 마인드 같은 부분도 젊으시고. 그래서 즐거운 거 같아요.
박지윤 대사 없는 더빙을 갈 때는 사람들 만나서 놀러 가는 느낌으로 가요(웃음). 대사가 많을 땐 힘든데 하면 그렇게 뿌듯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더빙하기 전에 화면이랑 대본 받아서 영상이랑 맞춰보는 ‘시사’라는 걸 하거든요. 아이들이 이제 커가지고 (제 일에) 관심도 많아서 시사할 때부터 “엄마, 쟤가 뭐라 그래?” 물어봐서 “자꾸 말 시키면 엄마 시사가 안 돼. 나오면 보여줄게” 이러면서 해요.
소연 가끔 후배들 중엔 이런 걸 토로하는 친구도 있어요. 악역을 하는 친구들은 애들이 “아빠는 왜 맨날 그런 역만 해, 멋있는 역 좀 하지” 하니까 속상해하는 친구들도 있고. 반대로 <파워레인저> 이런 거 하면 유치원에서 “우리 아빠 파워레인저야!”. 제 딸은 7살 때 어린 엘사랑 안나 오디션을 봤었는데, 같이 할 수 있었다면 정말 특별한 추억이었을 테지만 저희 아이는…(웃음) 엄마가 늘 하는 거라 오히려 관심이 없더라고요.
박지윤 주변 성우 목소리가 다 이모, 삼촌이라서. 엘사 이모, 올라프 삼촌,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커서 성우들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이러면 좋아하면서도 당연한 거니까 신기해하지도 않는 거 같아요(웃음).
소연 조금 더 커봐, 이제 평가해. “엄마 목소리 좀 바꿔봐. 왜 이렇게 똑같아?” 이러면서(일동 웃음).
이번에 안나 단독 넘버(해야만 해, The Next Right Thing)가 있었어요. 녹음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나요? 힘들진 않으셨나요?
박지윤 1편이 곡수도 많고 음역대도 높거든요. 그런데 이번 곡은 원래 부르신 분의 감정과 저의 감정을 맞추면서 맞는 타이밍에 들어가서 노래한다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저한테 이런 감정으로 블러보자 했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원곡을 부른) 다른 사람의 감정선을 무시해선 안 돼서, 다른 곡보다 오래 걸렸던 거 같아요.
소연 그 곡은 오히려 뮤지컬을 하시는 분이 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말씀하신 거처럼 연기를 맞춰가면서 해야 하거든요. 그게 성우를 하면서 노래를 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었다고 생각해요.
박지윤 그래서 그 노래는 녹음을 하고 ‘아 끝났다’ 그랬는데, 가사 한 줄이 바뀌면 불렀던 거에 맞춰 그 부분만 불러야 해요. 나중엔 농담으로 “전화 이젠 하지 마세요” 그럴 정도로(웃음). 영화 개봉보다 O.S.T.가 먼저 발매됐는데, 감독님이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지윤아, 네 게 많이 잘 나온 거 같다”
소연 진짜 좋았어.
박지윤 7월에 화면 없이 곡만 들었을 때 “감독님, 그래서 내용이 어떻게 돼요?” 그랬어요.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길래 안나가 이런 노래를 부르나 궁금해서.
처음 곡을 들었을 땐 스토리라인을 안 알려주셨나 봐요. 더빙 스태프분들도 모르셨거나.
박지윤 디즈니가 워낙 그 부분에 철저하기 때문에요.
소연 전 <어벤져스>도 (블랙 위도우 역으로) 더빙했는데, 대본 제목이 어벤져스가 아닌 거예요. 영상도 다른 이름으로 돼있고 그래요.
박지윤 <겨울왕국> 1편 때 시사회 겸 쇼케이스로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녹음을 한 사람인데, 제가 봤던 화면하고 다르더라고요(웃음).
소연 <겨울왕국 2>를 집에서 시사하는데 딸이 온 거예요. “너 절대 이거에 대해선, 절대 말하면 안돼! 발설했다간 엄마 끌려가!”
박지윤 맞아 맞아.
소연 저희도 보안을 지키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는 사실을 디즈니도 알아주셨으면!(웃음)
개봉 후 일반관에서 관객들과 함께 보셨나요?
소연 바로 가서 반응들을 좀 보죠. 극장을 나오는데, 여러 반응이 있었지만 별로였다는 반응들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 영화는 과연 얼마나 흥행할까 했는데, 사실 놀랐어요. 보통 1편에 대한 기대가 있으면 소포모어 징크스 같은 것도 있고, 5년이나 지났는데 (흥행하고) 특이한 거 같아요.
박지윤 전 가족이랑 나란히 앉아서 봤거든요. 옆에 엘사들이 많이 와있더라고요(웃음). 너무 귀여웠어요. 구두에 땋은 가발에 엘사 옷을 입은 다섯 살 정도 된 애가 있었는데, 얘는 태어나기 전에 1편이 나왔을 텐데 그걸 보고 아빠랑 온 걸 거 아녀요. 그게 너무 귀여웠고. 쿠키 영상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들 엘사가 너무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뒤의 여자애를 요렇게 한 번 보면서 ‘왜 엘사가 좋아?’ 물어볼까 말까, 내가 안난데… 얘기를 할까 하다가 나를 보고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보내줬죠. 그런 반응을 바로바로 알 수 있는 게 재밌는 거 같아요.
두 분 모두 성우로 오래 활동하셨잖아요. TV에서 방영한 외화 같은 경우 방영이 끝나면 다시 보기가 어려운데, 두 분에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까요.
박지윤 아만다 사이프리드 있잖아요. 그분이 한 <맘마미아!>, <레터스 투 줄리엣>, 여러 편을 하게 된 거예요. 표정을 보면 감정이 조금 읽혀서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배우인데, 그때 했던 작품들이 너무 생각이 나요.
소연 <말괄량이 삐삐>를 EBS에서 새로 더빙을 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근데 제안이 저한테 온 거예요. 내가 어렸을 때 보고 자랐던 걸 내가 이 직업을 가지고 더빙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감회가 새로웠죠. 추억이 있는 작품을 제가 커서 더빙하게 됐을 때가 너무 감격스러웠었어요.
성우로서의 동기를 갖게 했던 작품, 아니면 어릴 때 봤던 인상적인 작품이 있나요?
박지윤 사실은 성우라는 직업을 몰랐었어요. 어릴 땐 다 그 사람, 그 캐릭터가 하는 건 줄 알았어요. 성우가 돼야지란 생각은 20대 넘어서 했거든요. <달려라 하니>, <꼬마자동차 붕붕> 이런 건 그때 더빙하셨던 선생님들을 제가 성우가 돼서 뵙잖아요. 그런 게 너무 신기해요.
소연 연기를 전공하면서 연극만 해서는 생활이 어려웠거든요. 차태현 배우의 형이 동기였는데, 그분 어머니가 유명하신 성우셨어요.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셨어요. 제가 애니메이션에 대해 관심 있고, 연기도 바꿔가면서 하는 게 재밌고, 딕션도 좋으니까 교수님도 추천해주셔서 선생님한테 배우기 시작했어요. 사실 디즈니 <라이온킹>, <인어공주> 이때는 한국어 O.S.T.가 없었어요. 그래서 영어만 외웠고, 지금도 영어 가사를 기억하거든요. <겨울왕국>이 히트를 치면서 뒤늦게 한국어 더빙 O.S.T.가 나왔어요. 사람들의 요구가 많으니까. (박지윤 성우를 바라보며) 얘네 때문에 한국어 O.S.T.가 나온 거죠.(웃음)
요즘은 1인 미디어에서 더빙 콘텐츠나 목소리만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얘기가 있을까요?
소연 1인 미디어가 좋은 측면도 있지만, 걸러지는 부분들이 없는 건 아쉬워요. 조금 더 목소리를 어필하시고 싶다, 생각을 하시는 분들은 언어적인 측면, 발음도 그렇고 신경 쓰셨으면 해요. 저희는 우리말로 작업을 하니까 아이들을 상대로 이런 단어가 적합한가도 생각하거든요.
박지윤 저희 세대랑 아이들이 정말 다른 게 모든 정보를 유튜브에서 얻으려고 하더라고요. 그게 어떤 거름망 없이 나오니까 저도 모르게 어디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 거니까 주저하게 돼요.
소연 방송은 심의기관이란 게 있어서 사전에 어느 정도 걸러지는데, (1인 미디어는) 노출이 돼서 문제가 되면 뉴스가 나오잖아요. 그런 부분에 좀 걱정스럽기도 해요.
박지윤 인기 있는 유튜버분들이 그런 부분을 자각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소연 N차 관람이 <겨울왕국>을 거치면서 생겨났던 거 같아요. <겨울왕국>, 특히나 우리말 버전을 찾아봐주시는 부분에서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려요. 이런 관심이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발전을 할 수 있도록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윤 <겨울왕국>을 통해서 대중들이 성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걸 느끼거든요. 예전처럼 ‘성우? 신기한 직업’ 이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느끼시는 거 같아요. 드러난 응원을 해주시는 것도(웃음) 감사하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길게 길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 씨네21 최성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