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2019년. 올해 마지막 주를 장식할 미개봉 신작은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스노우몬스터>다. 히말라야에 산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동물 예티와 아이들의 모험을 그린 가족 영화다. 스튜디오의 명성을 잇는 화려한 볼거리, 마음을 따듯하게 데워줄 훈훈한 이야기로 무장한 작품.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들의 연말까지 풍족하게 채워줄 <스노우몬스터>를 소개한다.

<스노우몬스터>는 12월 25일(수) 올레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극장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synopsis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할머니와 살아가고 있는 소녀 이(클로이 베넷).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 경비를 모으던 그녀는 옥상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을 마주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설 속의 동물 예티. 이는 누군가에게 쫓겨 상처 입은 예티를 보살펴주고, 그를 고향인 에베레스트산에 데려다주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사촌 진(텐징 노게이 트레이너), 팽(알버트 차이)까지 얼떨결에 합류하며 그들은 험난한 여행길에 오른다. 동시에 사라진 예티를 찾기 위해 희귀 동물 수집가, 동물학자 등이 아이들의 뒤를 쫓는다.


2019년 9월 5주 차 북미 박스오피스 성적(출처: 박스오피스 모조)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석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겠다. 9월 27일 북미 개봉한 <스노우몬스터>는 곧바로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며 <다운튼 애비> <허슬러> <애드 아스트라> <그것: 두 번째 이야기> 등을 제치고 9월 5주 차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비평가들의 평가 역시 청신호. <스노우몬스터>는 극장 개봉에 앞서 토론토국제영화제, 런던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믿고 보는 드림웍스’라는 말에 걸맞게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았다. 현재까지도 유명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150여 명의 전문가 평을 취합한 신선도는 81%를, 일반 관객들의 평을 모은 팝콘 지수는 95%를 유지 중이다.


(왼쪽부터)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질 컬튼 감독, 클로이 베넷, 사라 폴슨, 알버트 차이

29년 차 베테랑 애니메이션 감독의 7년 프로젝트

이런 <스노우몬스터>의 일등 공신은 역시 연출과 각본을 맡은 질 컬튼 감독이다. 1990년대부터 다양한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활동한 그녀는 픽사 스튜디오의 <토이 스토리> 캐릭터 디자이너, <몬스터 주식회사> 원안 등을 맡으며 경력을 쌓았다. 이후 소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라이온 킹>의 로저 엘러스 감독과 함께 <부그와 엘리엇>을 연출, 2012년 드림웍스의 제안을 받아 예티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렇게 무려 7년에 걸쳐 <스노우몬스터>를 완성했다. 출연진으로는 마블의 TV 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에서 주인공 스카이를 연기해 스타덤에 오른 클로이 베넷과 <노예 12년> <캐롤> <오션스 8> 등으로 활약한 사라 폴슨 등이 안정적인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귀염뽀짝 동물 캐릭터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동물 캐릭터다. <쿵푸팬더>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 등으로 동물 캐릭터를 갈고닦은 드림웍스는 <스노우몬스터>에서도 그 실력을 발휘했다. 최고 수혜자는 역시 주인공 예티. 캄캄한 밤에 첫 등장한 그는 처음에는 무섭게 다가왔을 수 있지만 볼수록 정감 가는 매력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빠져들 것 같은 커다랗고 깊은 눈동자, 한올 한올 흩날리는 새하얀 털을 탄생시킨 캐릭터 디자이너들의 피땀눈물에 경의를. 또한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지만 이마저도 유년기라는 설정을 부여해 허당끼 넘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외에도 희귀 동물을 소재로 한 <스노우몬스터>에서는 강아지, 거북이, 쥐 등 다양한 동물들이 나와 감초 역할을 해냈다.


변화하는 인물들

동물 캐릭터에서의 입체는 3D 기술력의 산물이었다면, 사람 캐릭터의 입체는 그들이 가진 성격이 담당했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도 평면적인 캐릭터는 매력이 없는 법. 영화 속에는 사건을 거듭하며 변화하는 여러 인물들이 그려졌다. 그중 예티와 함께하는 세 아이들은 점차 성장하며 친구, 가족 등의 의미를 깨우쳤다. 아버지를 잃은 후 늘 부정적이고 우울했던 이가 활력을 찾고, 스틸컷에서부터 나 재수 없음을 한껏 풍기던 진이 점점 유대를 쌓는 과정 등은 익숙하지만 늘 효과적인 감흥을 자아냈다.

반대로 색다른 전개로 극의 활력을 불어넣은 이들이 아이들을 추적하는 악역들. 희귀 동물을 연구하는 박사와 막대한 부를 가진 희귀 동물 수집가다. 그런데, 사실 둘 중 ‘진짜’ 빌런은 한 사람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흔히 말하는 나름의 사정을 가진 악역. 이를 깨우치고 후에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인물로 변모하며 평이할 수 있었던 이야기에 반전과 재미를 더했다.


꿈의 로케이션

아마 실사 영화였다면 훨씬 어려웠을 듯하다. 애니메이션은 감독이 원하는 피사체나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닌, 창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실사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비주얼도 애니메이션은 보다 수월하게 담을 수 있다. 게다가 괜히 거대 자본이 투자되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아니다. <스노우몬스터>는 확실히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놀라운 비주얼을 뽐냈다.

이를 극대화한 첫 번째 요소가 (실사영화로 비유하자면) 로케이션. 예티가 등장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설산이 등장하리라 예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는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다양한 배경들이 시시각각 펼쳐졌다. 켜켜이 들어선 주택 단지, 화려한 네온에 뒤덮인 고층 빌딩, 사계절을 모두 연상케 하는 대자연까지. 보는 것만으로 여행 충동이 드는 풍광이 눈을 사로잡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처럼 극중 인물들은 여러 산전수전을 겪지만 그마저도 함께 느끼는 듯한 간접 경험을 선사했다.


상상력의 극대화

로케이션과 일맥상통하는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상상력의 허용치다.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고민하는 이 장면을 어떻게 찍지는 애니메이션으로 들어오면 해결되는 문제다. <스노우몬스터>는 예티의 능력을 중심으로 그 한계점을 지웠다. 극 중 예티는 자연과 교감하며 식물을 자라게 하거나, 날씨를 조절할 수 있는 등 신비로운 능력을 선보인다. 덕분에 민들레를 거대화시켜 날아가거나, 대지를 파도처럼 움직이는 경이로운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예티의 능력이 정점에 달하는 설산 장면에서는 <겨울왕국>의 엘사가 떠오르기도. 각각의 장소에 걸맞은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한 노력이 엿보였다.

이에 대해 질 컬튼 감독은 자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감독,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작품들은 늘 나의 상상력을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또한 그 원천으로 <E.T.> <폴터가이스트> 등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판타지를 말하기도 했다.


계획이 다 있구나

그러나 아름다운 화면만을 나열했다면 이는 영화가 아닌 광고. 앞선 비주얼들 모두가 사건 전개, 캐릭터의 사연 등과 촘촘히 연계되며 스토리의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단순히 비주얼을 위해 화려한 장면을 삽입한 것이 아니라 제각각 의미를 담았다. 마치 퍼즐이 맞춰지며 큰 그림이 완성되는 듯한 구성이다. 이쯤 되면 2019년 최고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기생충>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To 드림웍스 or 질 컬튼 감독) 계획이 다 있구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음악

이왕 사용한 김에 한 번 더 사용하겠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과하면 독이 되지만 잘 사용했을 때는 분위기를 200% 이상 끌어올리는 영화 속 음악. <스노우몬스터>는 적재적소의 음악으로 귀를 채웠다. 그 과정을 이끈 이는 DCEU(DC Extended Universe)의 <원더우먼> <아쿠아맨>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루퍼트 그레그슨 윌리엄스. 오케스트라, 밴드를 활용한 곡들과 영화의 배경에 맞게 동양풍으로 풀어낸 곡들을 조화롭게 엮으며 탄탄한 실력을 입증했다. 이외에도 영화 속에는 콜드플레이의 명곡 Fix you가 편곡되어 등장해 반가움을 사기도 했다.

※ 아래 문단에는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알고 봐도 눈물 나는 코드

마지막인 만큼 시원하게 말한다. <스노우몬스터>는 해피엔딩이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스포일러는 아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 중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작품이 몇이나 있었을까. 인물들의 첨예한 심리전, 씁쓸한 블랙코미디 등을 여기서 바라면 안 된다.

그러나 드림웍스를 포함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만남과 이별 코드가 빈번히 사용됐다. <인사이드 아웃> 빙봉, <토이 스토리 3>의 장난감들 등이 대표 격이다. <스노우몬스터>의 마지막 역시 예외 없이 이 대목이 등장했다. 사실 포스터와 시놉시스에서부터 예상했던 예티는 집에 가고, 두 사람은 헤어지겠군. 뻔하다면 뻔한 마무리였지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는 눈물 교육 과정이 따로 있는 것일까. 혹은 영화를 관람하는 러닝타임 동안 어른들도 아이의 시선에 맞춰진 것일까. 어김없이 눈물샘 스위치가 켜졌다. 이미 엔딩을 다 본 것 같다고? 걱정하지 말자. 알고 봐도 슬픈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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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