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 <두 교황>이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에 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에 대한 극찬이 특히 뜨겁다. 우리 시대의 가장 거대한 배우 중 한 명인 안소니 홉킨스에 관해 간단히 알아보자.


안소니는 사실 미들네임이다. 필립 안소니 홉킨스가 본명. 웨일스 포트탤벗에서 자란 홉킨스는 학교 공부엔 도통 흥미를 못 느끼는 대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예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15살에 동향의 명배우 리처드 버튼을 만난 그는 곧장 예술학교에 진학했고, 군복무 후 런던의 왕립연극학교에 재학해 외국인으로서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거장 로렌스 올리비에의 눈에 띄어 영국 극립극단에 합류했다.

리처드 버튼 / 로렌스 올리비에


<겨울의 라이온>

1967년 영화계에 입문한 안소니 홉킨스는 이듬해 캐서린 헵번, 피터 오툴 주연의 <겨울의 라이온>에서 리처드 1세 역을 맡아 널리 이름을 알렸다. 대배우 캐서린 헵번은 홉킨스에게 오버 액션을 하지 말고, “대사를 읽고, 그대로 되고, 그대로 대사를 말하라”는 조언을 줬고, 훗날 연기 지침으로 삼았다.


영화/TV와 함께 연극 무대도 병행하던 안소니 홉킨스는 1973년 영국 국립극단에서 <맥베스>를 공연하던 중, 무대 활동이 도저히 자신과 안 맞는다고 판단하고 도중하차했다. 그 이후로 그의 커리어는 영화/TV에 집중됐다.

레이디 맥베스 역의 다이애나 리그와 안소니 홉킨스


<젊은 날의 처칠> / <머나먼 다리> / <매직>

안소니 홉킨스를 유독 편애한 감독이 있다. 영국 출신의 리차드 아텐보로다. 그는 <젊은 날의 처칠>(1972)을 시작으로 <머나먼 다리>(1977), <매직>(1978), <채플린>(1992), <섀도우랜드>(1993) 총 다섯 편에 홉킨스를 캐스팅 했다. 벤 킹슬리가 남우주연상을 싹쓸이한 <간디>(1982)에도 원래 그를 섭외하려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1970년대 중반 아텐보로는 홉킨스를 “동세대의 가장 위대한 배우”라고 칭했다.

<섀도우랜드> 현장의 리차드 아텐보로와 안소니 홉킨스


<광란의 시간> (1989)

1990년대를 앞두었을 당시 안소니 홉킨스는 할리우드에서의 활동을 접고 런던으로 돌아가 웨스트엔드(영국 연극의 중심가)와 BBC TV시리즈에 참여하면서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조나단 드미의 스릴러 <양들의 침묵>(1991)에서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 역을 맡아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시키면서 할리우드의 커리어는 계속 이어졌다.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가 클라리스(조디 포스터)를 처음 만날 때 그녀의 남부 억양을 따라하는데, 이는 대본에 없는 것이었고 당황해하는 조디 포스터의 리액션은 실제 반응이었다. 렉터가 사람의 간을 먹는다면서 입으로 쉭쉭 거리는 소리를 낸 것도 애드립이었다. 실제로 촬영하는 동안 포스터는 홉킨스가 무서워서 그를 피해 다녔고, 촬영 마지막 날에서야 처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홉킨스는 캐서린 헵번과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조합으로 렉터의 목소리를 만들었고,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비디오를 관찰해 촬영 중에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볼티모어에 이송된 렉터가 갇혀 있는 신, 제작진은 원래 그에게 노란 점프수트를 입히려고 했다. 하지만 안소니 홉킨스는 감독과 의상 디자이너에게 새하얀 색을 입히면 좀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거라고 설득했다. 치과의사를 두려워하는 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안소니 홉킨스는 <양들의 침묵>으로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시간에 육박하는 영화에서 딱 24분 52초만 등장하고 얻어낸 성과. <벅시>의 워렌 비티, <케이프 피어>의 로버트 드 니로, <피셔 킹>의 로빈 윌리엄스, <사랑과 추억>의 닉 놀테와 경쟁했다. 그해 <양들의 침묵>은 남우주연상을 비롯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쓰는 쾌거를 이뤘다.


웨일스 출신인 안소니 홉킨스는 1993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2000년엔 미국 시민권까지 얻었다. 그는 1972년에 작업한 두 영화 <젊은 날의 처칠>과 <에드워드 시대>에서 영국의 전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역을 맡았고, <닉슨>(1995)과 <아미스타드>(1997)에서 각각 미국의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존 퀸시 애덤스를 연기한 바 있다.

기사 작위를 받은 안소니 홉킨스 / <닉슨>


<마스크 오브 조로>와 <조 블랙의 사랑>이 개봉되던 1998년 당시, 안소니 홉킨스는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는 영국배우였다. <양들의 침묵>의 속편 <한니발>(2001)을 거쳐 <레드 드래곤>(2002)은 2천만 달러를 받았다.

<마스크 오브 조로> / <조 블랙의 사랑> / <한니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전기영화 <피카소>(1996) 촬영 당시 안소니 홉킨스는 매일 생전 피카소와 같은 식단으로 식사했다.

<피카소>


캐나다 알버타에서 재난 드라마 <디 엣지>(1997)를 촬영하던 중 강에 빠져 저체온증 때문에 죽을 뻔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안소니 홉킨스는 난독증이다. 영화 촬영 전에 대본을 250번 정도 크게 읽고, 매주 시를 한 편씩 외우면서 기억력을 키워 난독증의 난점을 보완했다. <아미스타드> 촬영 당시, 일곱 페이지에 달하는 법정 연설문을 단 한번에 완벽하게 외워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스탭들을 놀라게 했다. 스필버그는 현장에서 그를 “안소니 경”이라 칭했다.


안소니 홉킨스는 1995년에 발표한 연출작 <8월>의 음악을 직접 작곡했다. 1964년에 썼지만 수십 년간 묵혀뒀던 왈츠 곡 'And The Waltz Goes On'이 2011년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에 의해 비엔나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그해 홉킨스의 작품만 모은 앨범 <Composer>도 발매됐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빅팬이다. 2주에 걸쳐 전 시리즈를 '정주행' 한 홉킨스는 직접 <브레이킹 배드>의 주연 브라이언 크랜스턴에게 "당신의 월터 화이트 연기는 내가 이제껏 본 최고의 연기"라는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다.


안소니 홉킨스는 여러 자리에서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들을 꼽았다. 리스트에 포함된 영화가 때마다 달랐는데, 딱 한 작품은 한결 같았다. 엠마 톰슨과 함께 호흡을 맞춘 <남아있는 나날>(1993)이다. 평생을 한 귀족집안의 집사로 일한 중년의 사내가 하녀장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절절한 로맨스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