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두 회사 ‘마블’과 ‘DC’. 실제 슈퍼히어로 영화 열에 아홉은 두 코믹스를 원작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코믹스 원작 없는 오리지널 슈퍼히어로 영화는 없을까? 물론 있다. 오리지널 스토리로 나와 코믹스로 역수출되거나, 기존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비틀어 놀라움을 안기면서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시리즈까지 나온 작품들이 있다. 복잡한 세계관에 휩쓸리지 않고 당당히 한 편을 책임지며 성공한, 코믹스 원작 없이도 사랑받은 오리지널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모아본다.
다크맨 Darkman, 1990
<다크맨>은 잘 만든 슈퍼히어로 오리지널 영화 하나, 열 코믹스 원작 부럽지 않은 대표적인 예다. 원작 영화가 뜨거운 인기를 얻자 코믹스로 역진출했기 때문이다. 1990년에 개봉한 <다크맨>은 <이블 데드> 시리즈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인공피부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갱단의 습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은 후 위험에 노출된 연인과 복수를 위해 ‘다크맨’으로 다시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 복수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리암 니슨이 ‘다크맨’을, <파고>, <쓰리 빌보드>의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줄리 역을 맡았다. 전반적으로 통쾌한 복수극으로 흘러가는 사이, 연인을 그리워하지만 붕대와 중절모로 자신을 가릴 수밖에 없는 ‘다크맨’에게 연민의 정서를 자아낸다. 거기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도 본 인공피부를 이용한 얼굴 해킹 장면은 신선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샘 레이미는 이후 <스파이더맨> 연출을 맡게 되는데, 연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감춘다는 점이 <다크맨>과 묘하게 연결된다. <다크맨>은 제작비를 뛰어넘는 흥행을 거두면서 비디오용 속편이 나왔고, 많은 영화 팬들이 리메이크로 다시 보고 싶은 슈퍼히어로 영화이기도 하다.
더 보이 Brightburn, 2019
<배트맨 V 슈퍼맨>에서 브루스 웨인은 검증되지 않은 초능력을 쓰는 슈퍼맨을 보며 두려워한다. 지금이야 우리를 지켜주는 슈퍼히어로지만 만약 그가 적으로 돌아선다면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더 보이>에서는 이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슈퍼히어로와 SF 호러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더 보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연출한 제임스 건이 제작에 참여해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다. 양부모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다른 세계에서 온 소년이 어느 날 숨겨진 강력한 힘을 깨닫는다는 설정은 <슈퍼맨>을 떠올린다. 스몰빌과 흡사한 시골 마을 브라이트번, 우주선에서 나온 아기,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게 입양되는 모습 등은 단번에 <슈퍼맨>을 연상시키지만, 전개 과정은 전혀 다르다. <더 보이>는 <슈퍼맨>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비틀어 강력한 힘을 사악한 본성으로 풀어낸다. 힘을 깨닫고 각성한 브랜든은 독특한 마크와 함께 붉은 망토를 입은 살인마로 변신해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성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어린 스콧 랭을 연기한 잭슨 A. 던이 브랜든을 맡아 서늘한 연기를 선보였다.
크로니클 Chronicle, 2012
데인 드한, 마이클 B. 조던의 신인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크로니클>도 <더 보이>처럼 초능력을 가졌다 해서 모두 영웅이 되지 않는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세 친구 앤드류, 맷, 스티브가 우연히 정체불명의 물체를 만진 후 엄청난 에너지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한 장난이 점차 도시 전체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크로니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 인물들이 느끼는 불안한 심리를 생생하게 전달해 평단과 관객의 좋은 반응을 얻고, 1200만 달러의 적은 제작비로 전 세계 1억 2천6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상업 영화 데뷔작으로 좋은 성적을 낸 조쉬 트랭크 감독은 <스타워즈> 스핀오프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제안받는 등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판타스틱 4> 촬영 현장에서 불거진 논란과 함께 형편없는 완성도로 경력에 오점을 남겼다.
버드맨 Birdman, 2014
87회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버드맨>은 냉정하게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로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가 점차 대중과 멀어진 배우의 심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짚어볼 만하다. <버드맨>은 퇴물 취급을 받는 주인공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하면서 겪는 압박과 불안감을 세밀하게 담아내며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과거 <배트맨> 시리즈의 주인공 마이클 키튼이 전성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버드맨’ 리건 톰슨 역을 맡아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강렬한 연기로 강렬한 몰입을 이끈다. 그 결과 제72회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많은 트로피를 휩쓸며 다시금 훨훨 날아오르는 데 성공했다. 또한 관객이 직접 브로드웨이의 백스테이지를 누비는 것 같은 롱테이크처럼 연출된 촬영 기법으로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인물의 내면을 더욱 생생하게 전한다.
인크레더블 The Incredibles, 2004
<인크레더블>은 그야말로 제목(Incredible: 믿을 수 없이 놀라운)이 곧 소감이 되는 영화다. <인크레더블>은 픽사에서 제작한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으로 <라따뚜이>,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로 실사와 애니를 넘나들며 활동 중인 브래드 버드가 연출을 맡았다. 한때 세상을 구한 슈퍼히어로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엘라스티 걸이 은퇴 후 자식을 낳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던 중 정체불명의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미션을 받고 다시 본업으로 컴백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외형을 갖추고,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가족 코미디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또한 엑스맨, 어벤져스 부럽지 않을 능력을 가진 가족들이 애니메이션만의 장점을 극대화한 화끈한 액션을 펼쳐 지루할 틈도 없다. 소재나 스타일 면에서 기존 픽사 영화와 다르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호응을 얻어내 비평과 흥행 모두를 잡았다.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2018년에 나온 <인크레더블 2>는 전편 못지않은 재미를 선보이며, 북미에서 6억 달러 월드 와이드 12억 4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겨울왕국> 시리즈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흥행한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핸콕 Hancock, 2008
<극한직업> 유행어로 핸콕을 소개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 "지금까지 이런 히어로는 없었다. 이것은 영웅인가 민폐인가" <핸콕>은 마블과 DC에 편입된다면 세계관 최강자로 불릴 만큼 엄청난 힘과 스피드를 가졌지만, 빌런과 친구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인성은 엉망인 민폐 히어로가 주인공이다. <론 서바이버>, <배틀쉽>의 피터 버그 감독을 연출을 맡고, 윌 스미스와 샤를리즈 테론이 각각 민폐 히어로 ‘핸콕’과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메리’로 출연했다. <핸콕>은 능력과 정의감을 고루 갖춘 슈퍼히어로의 관습을 비틀어 색다른 재미를 유발한다. 예를 들어 슈퍼히어로라 세상을 구하기는 하지만, 교통을 마비시킨다든지, 고래를 바다로 던져 엉뚱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대가가 뒤따른다. 윌 스미스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사람의 비난을 난동을 부리는, 누구나 기피하고 싶은 인물을 탁월하게 소화해 웃음을 자아낸다. 액션 역시 호쾌하다. 후반부 뜻밖의 강자가 나와 벌이는 시가전 장면은 제작비를 여기에 다 부었다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상당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핸콕>은 원작이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임에도 ‘민폐 히어로’라는 설정을 잘 표현해, 전 세계 6억 2천4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후반부에 들어서 이야기가 다소 갑작스럽고 벌여놓은 떡밥을 다 회수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속편이 나와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에그테일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