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는 슈퍼히어로가 없을까? 히어로 관련 영화를 볼 때마다 늘 드는 궁금증이다. 할리우드의 마블이나 DC 영화처럼 그 수는 많지 않아도 한국형 슈퍼히어로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들은 더러 있었다. 고전소설의 영웅부터 소시민 초능력자까지, 한국 역사와 사회에서 파생되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관객의 흥미를 끌었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와는 또 다른 매력이 담겨 있는, 한국영화 속 히어로를 소개한다.


퇴마록 1998

1998년에 개봉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퇴마록>은 ‘악에 대항하는 영웅’이라는 측면에서 슈퍼히어로 장르와 연결된다. PC 통신에서 연재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은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악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 다양한 능력을 가진 퇴마사들이 힘을 합해 싸우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당시로는 지금까지 한국영화와는 다른 놀라운 CG효과와 다채로운 구마 액션을 선보이며 서울 관객 45만 명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허술한 이야기와 원작과 달라진 캐릭터 묘사로 원작 팬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전우치 2009

<전우치>는 고전소설 ‘전우치전’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각색한 토종 슈퍼히어로 영화다. 족자 속에 갇힌 도사 전우치(강동원)가 500년이 지난 현대에 풀려나 숙적 화담(김윤석)과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타짜>를 연출한 최동훈 감독 차기작으로 큰 관심을 받았고, 강동원, 김윤석, 임수정, 유해진 등 지금 봐도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낳았다. <전우치>는 조선을 대표하는 히어로답게 부적을 이용한 도술과 적재적소에 맞는 변신술로 독특한 볼거리를 선사했고, 캐릭터들의 매력과 입담이 빛나는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2009년 12월에 개봉해 전국 62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성공적인 예로 손꼽힌다.


초능력자 2010

<초능력자>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가진 특별한 매력 중 ‘대결’에 많은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조정할 수 있는 초인(강동원)은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하게 돈을 훔치려 오지만 그의 눈을 보고도 조정당하지 않는 규남(고수)을 만난다. 당황한 초인이 규남의 사장을 죽이면서 두 사람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시작된다. 강동원과 고수가 초인과 규남 역에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았는데, 두 배우가 선사하는 비주얼이 진정한 초능력이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악행을 저지르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빌런과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장하는 히어로가 등장해, 캐릭터 설정에 큰 공을 들이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흡혈형사 나도열 2006

<흡혈형사 나도열>은 경찰 나도열(김수로)이 엄청난 힘을 가진 흡혈귀가 되면서 정의를 위협하는 범죄 조직을 무찌르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드라큘라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가 한국의 형사 목을 물어 흡혈 영웅이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나도열 역을 맡은 김수로의 몸을 아끼지 않는 코믹 연기로 할리우드와는 다른 한국형 슈퍼히어로 탄생을 보여줬다. 개봉 전부터 3부작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고, 흥행 역시 150만 관객을 모아 성공해 시리즈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아직까지 속편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염력 2018

평범한 경비원 석헌(류승룡)이 물건을 움직이는 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염력>은 소시민 슈퍼히어로가 가진 매운맛을 선사한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이자 류승룡, 심은경, 박정민이 캐스팅되어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석헌이 갑자기 슈퍼 파워를 갖게 되면서 겪는 소동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위기에 처한 철거민을 도와주는 히어로라는 점에서 사회문제를 녹여낸 장르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호불호가 나눠지는 후반부와 다소 황당한 표현 방식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어 <부산행>의 성공으로 높아진 영화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자 2019

<사자>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뒤 세상에 대한 불신만 남은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알 수 없는 손바닥 상처로 힘들어하던 중 여기에 특별한 힘이 있다는 안신부(안성기)를 만나 악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청년경찰> 김주환 감독과 박서준이 다시 만났고, 안성기가 <퇴마록> 이후 다시 악에 맞서는 신부 역으로 돌아와 반가움을 더했다. 소재나 이야기가 여러모로 한국판 <콘스탄틴>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특히 용후가 엄청난 격투 실력을 가진 ‘신의 사자’라는 점에서 엑소시즘보다 더 강한 주먹 한방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말미 다음 이야기를 예고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흥행 성적으로 속편 제작 여부는 불투명하다.


마녀 2018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는 김다미의 스크린 데뷔작 <마녀>도 한국형 슈퍼히어로 무비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윤(김다미)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해 그와 가족이 위협을 받게 되면서 과거 인간병기로 살았던 기억을 되찾는 이야기를 그린다. 신인 배우가 단독 주연을 맡고,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된 인간병기들이 싸우는 생소한 소재로 걱정이 컸지만,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와 강렬한 액션을 선보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극중 자윤 역을 맡아 신비로운 매력을 보여준 김다미는 청룡영화상을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연기상을 휩쓸었다. <The Witch: Part 1. The Subversion>라는 영화의 영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속편 제작을 염두했는데, 흥행도 성공했고 김다미, 박훈정 감독 둘 다 여러 인터뷰에서 속편 참여 의사를 밝힌 만큼 제작 소식이 들리길 기대해본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2008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간절히 영웅이 되고 싶은 주인공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믿는 남자가 남을 돕기 위해 엉뚱한 행동을 벌이고 다큐멘터리 PD이 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 사연이 밝혀지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공포소설 『어느 날 갑자기』를 집필한 유일한 작가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말아톤> 정윤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믿는 미친 사람 역은 황정민이, 거짓 감동 포맷에 질린 다큐멘터리 PD 송주성 역은 전지현이 맡아 이야기를 이끈다. ‘커다란 쇠문을 여는 건 힘이 아니라 아주 작은 열쇠’라는 명대사처럼 남을 돕는데 주저하지 않는 슈퍼맨이 필요한 세상에 영화가 전하는 진심이 마음을 울린다.


히어로 2013

<히어로> 역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처럼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지만 영웅이 되고 싶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주연(오정세)에게 유일한 소원은 아들 규완이 건강을 되찾는 것이다. 병실에만 있는 규완은 ‘썬더맨’을 정말 좋아하는데 시청률 문제로 방송이 폐지되고 실의에 빠지자 주연은 아들을 위해 직접 ‘썬더맨’이 되기로 한다. <히어로>는 아빠가 아들을 위해 착한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 슈퍼히어로와 <인생은 아름다워>가 합쳐진 모습이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스토브리그>에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오정세가 주연 역을 맡아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아빠의 모습으로 뭉클한 감정을 자아낸다.


에그테일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