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계속되진 못했지만 ‘다크 유니버스’의 야심은 거창했다. 과거 황금기 유니버설의 지대한 돈줄을 했던 고전 몬스터 세계관의 영화들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처럼 새롭게 가져와 연계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톰 크루즈와 소피아 부텔라를 캐스팅한 첫 작품으로 <미이라> 리부트를 내세웠고, 데이비드 코엡과 크리스토퍼 맥쿼리, 존 스파이츠 등 쟁쟁한 각본가들이 참여해 기대감을 높였다. 이 프로젝트를 전체 총괄할 자로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리부트 된 <스타트렉> 시리즈의 각본을 맡아 대흥행을 시켰던 알렉스 커츠만과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제작자인 크리스 모건이 선택됐고, 새로운 로고와 대니 엘프만을 고용해 공식 테마도 작곡했다. 차기작엔 쟁쟁한 스타급 배우들도 모셔왔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는 러셀 크로우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투명 인간에는 조니 뎁이 내정됐다. 누가 뭐래도 완벽해 보이는 기획이었다. 첫 포문을 열게 된 <미이라>가 떨떠름한 성적표를 받기 전까지는. 2억 불에 육박한 제작비는 전 세계 수익 4억 불로 간신히 메꿀 수 있었지만, 문제는 자린고비처럼 인색한 비평이었다. 이에 빌 콘돈이 준비하던 차기작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는 제작이 유보됐고, 창대할 것만 같았던 다크 유니버스는 이름 그대로 앞으로의 날들마저 깜깜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몬스터 고전을 부활시킨다는 계획은 좌초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걸 눈여겨보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겟 아웃>과 <할로윈>, <해피 데스데이> 등으로 유니버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저예산 호러의 명가 블룸하우스였다.
블룸하우스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차기작으로 기획되던 <인비저블맨>을 덥석 물었다. 대신 거대한 세계관은 폐기처분하고, 스탠드 얼론에, 자신들이 잘 하는 저예산 호러로 방향을 틀었다. 이 아이템은 <쏘우>와 <인시디어스> 시리즈를 제임스 완과 같이 직조하고, 배우도 틈틈이 하는 동시에 <업그레이드>로 인상적인 연출력을 보여줬던 리 워넬에게 맡겨졌다. 그는 제임스 웨일이 H.G. 웰즈의 원작을 충실히 옮겼던 투명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보이지 않는 공포를 스토킹 피해와 여성 대상의 범죄라는 현대적 상황에 맞춰 변형했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비수기임에도 첫 주말에 3천만 불에 가까운 흥행을 올렸고, 블룸하우스의 기획력과 리 워넬의 영리함, 엘리자베스 모스의 호연이 맞물려 모처럼 나온 투명인간 영화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놨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그간 인류를 반쯤 없애버리거나, 도시를 날려버리고, 차원을 넘나들며, 시간을 되돌리는 등 각종 능력자들의 배틀 경연장이 되어온 최근 할리우드에서 투명 인간처럼 고전적이고 조그마한 능력은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로 치부돼 명맥이 뜸했었는데, 이번 <인비저블맨>의 성공으로 다크 유니버스의 생명 연장의 꿈은 물론, 또 다른 투명인간 영화인 <인비저블 우먼>의 리메이크도 가시권에 들어섰다. 아울러 블룸하우스는 리 워넬과 2년간 영화와 TV 시리즈를 제작, 연출, 집필하는 퍼스트 룩 계약도 맺었다. 이번 <인비저블 맨>의 개봉을 맞아 과거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던 투명인간 영화들과 그 음악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지 않은 작품은 제외했다.)
돌아온 투명인간 (1940)
음악: 한스 J. 솔터 & 프랭크 스키너
제임스 웨일의 고전인 1933년 작의 직접적인 속편으로 7년 뒤인 1940년 조 메이 감독이 연출했다. 전작만큼 뛰어난 특수효과와 전편의 타이틀롤을 맡은 성격파 배우인 클로드 레인스 대신 호러물의 대가 빈센트 프라이스가 형제로 나와 상업적으로 히트했다. 이후 5편의 직간접적인 속편이 더 만들어졌다. 전작과 달리 죄를 뒤집어쓴 주인공이 혐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주된 플롯인지라 음악은 일반적인 장르물과 달리 꽤 얌전하고 목가적인 편인데,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드가 떠오를 정도로 낭만적이고 감미롭다. 음악은 유니버설의 고전 몬스터 영화들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던 한스 J. 솔터와 프랭크 스키너가 공동으로 담당했는데, 이들은 각자 혹은 듀오로 수많은 장르물에서 활약하며 할리우드 스코어의 형식과 스타일을 개척했다. 무려 80년 전 영화인지라 원본으로 녹음된 사운드트랙을 직접 감상하기 어렵지만, 낙소스 산하의 마르코 폴로 레이블에서 존 모건이 악곡을 복원하고, 윌리엄 스트롬버그가 지휘한 모스코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바로 어제 작곡된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투명 인간의 사랑 (1992)
음악: 셜리 워커
H.F. 세인트가 쓴 동명의 SF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원래는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이반 라이트만이 내정되었으나 주연인 체비 체이스와 불화로 하차하고 존 카펜터가 연출해 상업적으로 참패를 맛봤다. 하지만 ILM이 만진 진기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특수효과만큼은 호평받았다. 연출하는 동시에 자신이 직접 음악을 겸하는 존 카펜터지만, <괴물>과 <스타맨>에 이어 그가 음악을 맡지 않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음악은 할리우드 여성 작곡가로 입지전적인 선각자의 길을 걸었던 셜리 워커가 담당했다. <투명 인간의 사랑>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영화로는 최초로 여성 작곡가가 단독으로 음악 크레딧을 올린 영화이기도 하다. 명료한 테마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오케스트레이션과 지휘 그리고 여러 TV와 마이너 장르에서 보조 작곡가로 단련된 경험이 드러나며 상황에 어울리는 미키마우징과 감정을 잘 담아낸 고전적인 언더스코어링은 단단하고 쫄깃하다. 심포닉 사운드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박진감과 파워풀한 선율은 카펜터로 하여금 다시 추후에 <LA 탈출>에서 같이 작업하게끔 만들었다.
할로우 맨 (2000)
음악: 제리 골드스미스
감추어진 욕망과 과도한 폭력성, 그리고 혁신적이고 자극적인 시각적인 효과를 다루는 데 있어 폴 베호벤 감독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투명 인간이라는, 어찌 보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소재를 다뤘음에도 <할로우 맨>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미지근하고 아쉬운 결과물을 안겨줬다. 이 작품의 실패로 쓸쓸히 할리우드를 떠났지만, 그럼에도 에로시즘과 관음증이 기술과 만나 민감한 지점을 건드는 불편한 공포는 끈적끈적하게 남아 관객을 괴롭힌다. 음악은 폴 베호벤과 <토탈 리콜>과 <원초적 본능>을 함께 한 제리 골드스미스가 담당했다. 이런 SF와 스릴러의 요소를 잘 살려내는 영화음악가로선 최적의 조건인 셈인데, 투명함을 상징하는 유려한 신디와 공포스럽게 다가가는 존재감의 오스티나토가 효과적인 조합을 이루지만, 전작들 음악처럼 강력하게 기억되진 못한다. 감추어진 욕망이 보이지 않게 됨으로써 드러나는 아이러니에 집중해 효과적인 측면에만 방점을 찍은 게 제목처럼 (속이) 빈 스코어로 남게 된 듯하다. 그럼에도 거장의 후반기 터치를 맛볼 수 있는 작품.
인비저블맨 (2020)
음악: 벤자민 월피쉬
새로운 투명 인간의 음악은 <그것> 2부작과 제임스 완이 제작한 호러들에서 맹활약한 벤자민 월피쉬가 맡았다. 그가 주안점을 둔 건 보이지 않음을 청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침묵조차 리드미컬하게 활용하고자 한 건데, 버나드 허먼의 <싸이코>에게 예우를 바치는 현악 편성의 스코어와 트렌트 레즈너의 노이즈를 떠올리게 하는 전파 음파들 사이의 빈 공백 속에서도 마치 음악이 존재할 것 같은 – 투명 인간과 같은 존재감을 느끼도록 설계하고 배치하는 게 중요했다고 밝혔다. 스트링과 피아노가 철저하게 피해자 쪽의 불안한 심리와 긴장, 공포를 담당한다면, 거칠고 파괴적인 일렉트릭 사운드 효과들은 투명 인간의 최첨단 기술력과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단면, 잔혹한 형제간의 시그니처를 암시한다. 그리고 이 두 사운드는 관객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충돌하는데, 그 급작스러운 신호와 섬뜩한 고조가 던져주는 기대감은 공포영화 스코어로서 책무를 다한다. 마치 <싸이코>가 ‘나인 인치 네일’을 만난 것 같은 기묘한 조합의 벤자민 월피쉬의 음악은 트라우마와 광기가 만나 벌이는 파국의 게임을 강렬하게 묘사해냈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