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 극장보다 집 안 스트리밍 플랫폼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보고 싶어요’ 리스트에 저장 후 여러 이유로 보기를 미뤄왔던 과거의 영화들을 찾아보기 적합한 시즌. 그중에서도 영화 감상과 덕질을 함께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주목하시라. 충무로의 믿고 보는 배우들도 처음부터 스타는 아니었다. 그들의 파릇파릇한 신인 시절이 담긴 단편영화들을 소개한다. 이 중 몇 편은 왓챠플레이, 유튜브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정유미

<폴라로이드 작동법>

선아(정유미)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배우고 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작동법을 알려주고 있어 어떤 내용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선아의 얼굴은 달아오르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자신이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모든 신경이 오로지 한 사람에게로 쏠리는 첫사랑의 감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클로즈업으로 담긴 정유미의 섬세하고 표정들,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가 작품의 매력을 배로 늘린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데뷔한 정유미는 이듬해 <사랑니> <가족의 탄생> 등에 출연하며 충무로에 재능 있는 신인배우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종관 감독의 유튜브 채널에서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감상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이제훈, 연우진

<친구 사이?>

순정 만화 같은 분위기의 퀴어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로 소년들의 사랑에 주목했던 김조광수 감독. 이듬해 그는 청년들의 사랑에 주목한 영화 <친구 사이?>로 돌아왔다. 석(이제훈)이 입대한 애인 민수(연우진)의 면회를 갔다가 그의 어머니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다. 러브 신 촬영에 많은 배우들이 부담을 느껴해 캐스팅 난항을 겪기도 했다고. 그때 제작진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가 있었으니, 신인 시절의 이제훈과 연우진이었다. 단편영화로 커리어를 쌓고 있었던 이제훈, 100명이 넘는 경쟁자를 뚫고 처음 연기에 도전한 연우진의 풋풋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예리

<백년해로외전>

한예리는 신인 시절 수많은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쌓았다. 첫 주연작 <기린과 아프리카>로 미장센단편영화제 연기상을 수상한 그녀는 2010년 <백년해로외전>을 통해 또다시 같은 상을 수상했다. <백년해로외전>은 차경(한예리)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혁근(이종필)의 일상을 비춘다. 차경은 중간중간 인터뷰 형식으로 등장해 인상 깊은 대사들을 늘어놓는다. 경쾌하고 귀여운 표정으로도 공허함과 슬픈 감정을 전달하는 한예리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백년해로외전>은 2013년 <환상 속의 그대>라는 제목의 장편영화로 재탄생했다. 한예리와 이희준, 이영진이 출연했다. 두 작품 모두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엄태구

<유숙자>

엄태구 역시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긴 무명 생활을 보낸 배우다.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단편 <유랑시대>로 존재감을 알린 그는 2010년부터 형 엄태화 감독 작품의 단골 배우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백년해로외전>을 포함한 네 편의 단편을 장편으로 묶은 영화 <촌철살인>에선 엄태구의 과거 시절이 담긴 영화 <유숙자>도 확인할 수 있다. 아파트 현관에 누군가 내놓은 음식을 먹고, 구걸을 하며 삶을 이어가지만 집은 있는 노숙자 만식을 연기했다.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한 엄태구의 부리부리한 눈이 특히 인상 깊은 영화. 10년 전에도 반짝반짝 빛났던 엄태구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왓챠플레이에서 감상 가능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안재홍

<구경>

최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재홍도 빠질 수 없다. <족구왕>을 통해 독립영화계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알고 보면 그 이전부터 수많은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믿음을 더해온 배우다. 10년 전 앳된 안재홍을 확인할 수 있는 단편은 <구경>. 캠퍼스 속 한 커플의 싸움이 주위 시선으로 인해 더 크게 번지는 소동을 담은 영화다. 안재홍이 건국대학교 재학 시절 출연한 영화로, 건국대 영화과 출신 김한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안재홍과 함께 배유람, 공민정의 신인 시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구경>은 2009년 청룡영화상의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이후 안재홍은 김한결 감독의 두 번째 단편, <술술>에도 출연했다. <술술>은 제10회 미장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변요한

<목격자의 밤>

“30편 이상의 독립영화를 찍었다”고 밝힌 변요한도 과거 시절 출연작이 많은 배우 중 하나다. 2011년 데뷔작인 단편 <토요근무>로 눈도장을 찍은 후 이듬해부터 단편 다작 배우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인상 깊은 성과를 거둔 작품은 <목격자의 밤>. 마지막 학기 등록을 위해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지훈(변요한)의 삶이 한 여성의 뺑소니 사고를 목격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지훈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목격자가 되어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변요한은 지훈의 복잡한 심경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목격자의 밤>은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받았고, 프랑스 끌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의 국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왓챠플레이에서 감상 가능하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