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주디>는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가진 뮤지컬 스타 ‘주디 갈란드’ 삶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전기 영화입니다. 세계적인 스타 배우의 화려함보다는 그녀의 굴곡진 인생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그녀가 겪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 만약 법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움도 느껴집니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주디를 위한 법의 조력을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주디(르네 젤위거)는 2살 때부터 무대에 섰고 10대에 영화사 MGM의 대표 루이 B. 메이어와 계약을 체결하고 배우 일을 시작합니다.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는 ‘법률행위’로서 우리나라 민법은 19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법률행위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요구합니다. 법정대리인의 동의없이 미성년자 혼자 체결한 계약은 취소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10대가 부모의 동의없이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체결하면 부모가 그 계약을 취소할 수 있어요.

메이어는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10대의 주디한테 수면제를 지속적으로 먹이면서 하루 18시간씩 일을 시키는데요. 우리나라는 가수와 연기자별로 두 종류의 표준전속계약서를 마련해놓았는데, 2019년부터 가수 등이 청소년(만 19세 미만)이면 추가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청소년 대상 표준부속합의서에 의하면, 15세 미만 청소년은 주당 35시간 이내, 15세 이상 청소년은 주당 40시간 이내만 일할 수 있고,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일하는 시간을 제한하고 있어요. 주디의 하루 18시간 노동은 법에 명백하게 위반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주디는 영화 촬영을 요구(일할 것을 요구)하는 직원에게 점심에 1시간 휴식시간을 보장하기로 되어 있다면서 쉬게 해달라고 애원하는데, 영화사는 법위반 여부를 떠나서 계약내용조차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죠. 계약위반과 법위반의 차이점은 계약은 개인간의 합의이므로 계약내용을 위반하면 계약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고 위반정도가 중대할 경우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법을 위반하면 법에서 정하는 조치나 벌칙을 받게 되는데, 행정조치에는 등록취소, 영업정지, 과징금 부과 등이 있고, 벌칙에는 징역, 벌금, 과태료 부과 등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법과 표준계약서(부속합의서 포함)는 청소년의 수면권, 휴식권, 학습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과거에는 이런 기본적인 내용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결국 법으로 준수의무를 강제하고 위반하면 제재를 가하게 된 것이죠.

영화는 런던 공연 매니저였던 로잘린(제시 버틀리)등이 주디와의 작별인사를 위해 준비한 케잌을 먹는 장면에서, 주디가 케잌 한 입을 먹는데도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는지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주디는 거의 먹지 않고, 주로 흡연을 하고 술을 마시고 알약만 먹습니다. 그 이유를 과거 장면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는데, 메이어는 주디를 영화 배역에 맞는 말라꺵이로 만들려고 음식을 못 먹게 하고 음식 대신 약을 먹입니다. 가수나 연기자가 청소년일 경우 살이 찔까봐 음식을 못 먹게 하고 원하지 않는데도 약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표준계약서 위반과 법위반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특히 18세 미만인 경우에는 아동복지법상 아동에 해당하여 아동학대범죄에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주디는 영화사 MGM과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메이어로부터 계약내용을 지킬 것을 강요받는데요. 연기자뿐만 아니라 영화사, 기획사도 계약의 당사자이므로 계약내용 준수의무를 당연히 부담하겠죠. 기획사 등이 계약내용을 위반하면 연기자나 가수는 기획사 등을 상대로 전속계약부존재(무효)확인청구 등을 통해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연기자나 가수가 계약상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기획사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고, 실제 판례를 살펴보면 기획사의 연습실 제공의무, 보컬 및 레슨의무 불이행 등을 이유로 가수 쪽의 전속계약해지주장을 받아들인 사례가 있고, 반대로 연습생의 연습실 무단이탈 등의 이유로 기획사의 손해배상청구주장을 받아들인 것도 있습니다. 결국 전속계약이 불공정한 계약이 아니라면 계약상 의무 준수여부가 분쟁의 쟁점이 되는 것이죠.

주디는 사망 2년 전에 자살시도를 하여 기관절개술을 받았고, 사망 3개월 전 미키 딘스(핀 위트록)와 결혼으로 총 5명의 남편이 있는데요. 3번쨰 남편 시드니 러프트(루퍼스 스웰)와는 양육권과 금전 분쟁이 있습니다. 대스타 주디의 인기를 이용하여 남편들(영화에서는 시드니, 미키)은 사업을 하였거나 하려고 하는데, 사업은 망하고 주디는 계속 일을 하는데도 아이들과 같이 살 집 한 채가 없고 호텔 숙박비조차 낼 돈이 없어요. 영화에서 주디가 시드니에게 다시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화내는 것으로 보아 시드니와의 결혼 결심에는 이런 약속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되고, 미키는 주디의 이름을 딴 극장 체인 500개을 만들어서 매출의 10%를 받는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제안하면서 주디의 결혼 결심을 굳힙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묘사된 정도만으로는 주디가 시드니와 미키와의 결혼이 사기 결혼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요. 우리 민법은 상대방의 기망에 의해 혼인하게 된 경우 혼인취소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판례가 인정하는 혼인취소 사유에는, 직업, 재력 등을 적극적으로 속이고 돈을 계속 요구하여 빚을 지게 만들거나, 이혼전력을 속이거나, 불치병을 속인 경우 등 미리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을 정도로 사유가 중대해야 합니다. 참고로 혼인을 취소하면 이혼과 달리 처음부터 혼인하지 않은 것으로 되기 때문에 혼인관계등록부가 깨끗해지는 장점이 있으나, 취소사유를 알게 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만 가능하다는 제한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디는 시드니에게 자신이 나쁜 엄마를 겪어봤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하고, 메이어는 10대의 주디가 휴식시간을 달라고 벌인 작은 항의에 게이 아빠와 돈에 눈먼 엄마를 상기시키면서 일을 할 것을 강요합니다. 굴곡 많은 주디의 인생과 비참한 말로는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이 남네요.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