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

김상중, 마동석, 박해진, 조동혁, 강예원이 나온 <나쁜 녀석들>이 아니다. 박중훈, 주진모, 양익준, 김무열이 나온 그 후속 드라마는 더더욱 아니고. 숀 펜이 나왔던 옛날 고릿적의 1983년 영화도 넣어두자. 바로 마이클 베이의 감독 데뷔작이자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의 출세작인 동시에 제리 브룩하이머의 전성기 시절 나왔던 액션 코믹 버디 무비 <나쁜 녀석들>이다. 1995년 1탄을 시작으로, 8년이 지나 2003년 속편이 나왔으며, 무려 그로부터 다시 17년이 지나 올 초 세 번째 시리즈가 공개됐다. 젊디젊던 두 형사의 날렵한 포스와 쿨한 농담 따먹기는 이제 펑퍼짐한 아재로 변해 입만 살은 꼰대 만담 콤비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신작들의 개봉이 미뤄지며 결국 이 <나쁜 녀석들: 포에버> 2020년 상반기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히트한 영화가 되었다.

<나쁜 녀석들: 포에버>

사실 3편이 나오기까지 이리 시간이 걸릴 일은 아니었다. 2편의 성공 이후 2008년부터 속편 기획에 들어갔지만, 당시 윌 스미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폭등한 상태였고, 폭발성애자라 불리던 마이클 베이 역시 변신 장난감 로봇 시리즈에 미쳐 연출할 짬이 도무지 나지 않던 상황이었다. 표류하던 프로젝트를 맡은 건 <나크>와 <스모킹 에이스>로 두각을 나타낸 조 카나한이었고, 2부작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한다는 계획까지 발표했지만, 결국 그도 물러나 각본 크레딧으로 만족해야 했다. 새로 연출을 맡은 건 벨기에 출신의 88년생 아딜 엘아르비와 86년생 빌랄 팔라 듀오였다. 젊은 피의 수혈로 방황하던 시리즈는 1월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오프닝을 기록했고, 소니는 프랜차이즈의 반가운 귀환에 4편 제작이란 발 빠른 환대로 답했다.


힙합과 R&B, 라틴과 레게의 마이애미 스타일

<나쁜 녀석들 2>

마이클 베이 전매특허와도 같은 폭발과 큰 스케일, 현란한 편집에 질주감으로 점철된 과거와 달리, 시간이 많이 흘러 두 아재들은 <리쎌 웨폰>의 머터프처럼 몸을 사리지만, 시그니처 같은 이너 써클의 ‘Bad Boys’를 중얼대며 빈정거리는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의 케미는 여전하다. 그리고 그 뒤를 신명나게, 혹은 감미롭게 받쳐주는 랩과 힙합, R&B가 얽힌 블랙 뮤직의 파워도 여전히 위력적이다. <나쁜 녀석들> 1편과 2편의 사운드트랙은 차트에서 강세를 보였다. 짱짱하던 뮤지션들이 버티던 1995년 3월 발매된 1편 앨범은 빌보드 200에 26위까지 오르며 선전했고, 영화제목과 유사한 ‘배드 보이 레코드’가 처음으로 사운드트랙에 도전해 2003년 7월 발매된 2편 사운드트랙은 빌보드 200 정상에 올라 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대박을 터트렸다.

힙합과 R&B, 인더스트얼 락이 공존하며 인기를 끌던 90년대답게 세 분야의 곡들이 적절히 안배된 1편의 영화 상 삽입곡들은 호평을 받았으나, 사운드트랙은 주로 R&B와 힙합에 치중됐다. 아쉽게도 클럽에서 흘러나왔던 스태빙 웨스트워드나 딩크, 펑크밴드 대그의 곡들은 제외됐다. 차트에서 인기를 끌었던 건 그 시절의 강자 베이비 페이스와 다이애나 킹, 워렌 지, 노토리어스 빅, 투팍, 키스 마틴 등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수혜를 입은 건 앞서 잠깐 언급한 이너 써클의 동명의 곡 ‘Bad Boys’였다. 발표 당시보다 93년 방영된 다큐 시리즈 <더 캅>의 테마송과 바로 연이은 <나쁜 녀석들>로 인해 이 레게 곡은 불멸의 생명력을 얻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경찰들을 상징하는 곡이 되어버렸다.


블랙 뮤직의 진수가 담긴 사운드트랙

그리고 2편의 사운드트랙을 매만진 건 당시 가수로나 프로듀서로나, 또 사업가로서도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P.대디, 바로 퍼프 대디였다. 제이-지와 넬리, 스눕 독, 저스틴 팀버레이크, 비욘세, 팻 조, 메리 제이 블라이즈, 룬, 폭시 브라운, 퍼렐 윌리엄스, 레니 크라비츠, 사후의 비기와 50센트, 디안젤로 등 그야말로 올스타급을 총동원시킨 이 앨범은 작정하고 만든 블랙 뮤직 사운드트랙의 탁월한 예로 손꼽히며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다. 평이 좋지 못했던 영화만큼이나 퍼프 대디의 악소문도 무성했지만, 워낙에 탄탄한 음악적 완성도와 압도적인 아티스트들의 향연에 어느 누구도 그 음악들을 거부하긴 힘들었다. 이중 제이 지의 ‘La-La-La’와 넬리와 퍼프 대디, 머피 리가 함께 한 ‘Shake Ya Tailfeather’는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고,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3편의 사운드트랙을 총괄한 건 DJ 칼리드다. 그는 정육점에서 일하는 무기상으로 영화에 직접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쟁쟁했던 2편이나 1편만큼은 아니지만, 블랙 뮤직과 최근 대세처럼 떠오른 라틴 뮤지션들을 적절히 혼합해 마이애미 현재 스타일을 들려준 솜씨는 인정할 만 하다. 블랙 아이드 피스와 믹 밀, 핏불, DJ 듀렐 그리고 칼리드와 각별한 릭 로스 등 네임 밸류 있는 힙합 씬과 라틴 뮤직에서 핫한 인기를 얻고 있는 니키 잼이나 J 발빈, 현재 자메이카 레게를 주름 잡는 부주 반톤 등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사운드들이 화려한 액션과 코미디 사이에 수놓고 있다. 게다가 1편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가 아버지 영화 사운드트랙에 참여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보면, 세월의 무상함마저 느껴진다.


짐머 사단이 거쳐 간 <나쁜 녀석들> 영화음악

마크 맨시나

트레버 라빈

론 밸프

사운드트랙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건 바로 한스 짐머의 리모트 콘트롤 프로덕션 작곡가들이 참여한 스코어였다. 전통적으로 <나쁜 녀석들> 프랜차이즈는 짐머 사단이 번갈아 가며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한스 짐머가 처음 영화음악창작 집단인 '미디어벤처'를 세웠을 때 창단 멤버였던 마크 맨시나가 1편을 맡았고, 그 뒤 바통을 이어받은 건 한스 짐머나 마크 맨시나와 인연이 있는 락밴드 '예스'의 기타리스트 출신의 트레버 라빈이었다. 그리고 2편의 추가 음악을 맡았던 스티브 자브론스키는 이때부터 마이클 베이의 전담 영화음악가가 되어 베이의 감독 작품이나 플래티넘 듄스 제작 영화에서 활약했다. 세월이 흘러 3편의 음악을 맡은 건 현재 짐머 사단 중에서 가장 열일 중인 론 밸프가 맡았다.

<나쁜 녀석들>

마이애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레게 사운드를 도입한 1편의 팝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스코어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메인 테마는 사운드트랙에 포함돼 큰 인기를 누렸으며, 심지어 그 신명나는 배경음악 때문에 사운드트랙을 산 팬들이 맨시나의 스코어가 너무 적어 실망했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는 바로 전해 나온 <스피드>의 음악을 매우 좋게 들었고, 자신이 제작하는 차기 액션 영화의 작곡가로 그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대중음악을 했던 경험이 풍부한 맨시나의 스코어는 탁월한 멜로디 감각 때문에 당시 꽤 많은 인기를 누렸는데, 먼저 언급한 <스피드>를 포함해 <어쌔신>, <트위스터>, <머니 트레인> 등은 그 감각이 잘 살아있는 작품들이다. <나쁜 녀석>은 그 정점에 작곡된 작품으로 이후 ‘짐머레스크’라는 획일화의 낙인이 찍히기 전의 개성적인 색채감을 지니고 있다.

<나쁜 녀석들 2>

다만 저예산의 액션 코미디였던 1편과 달리, 2편은 제작비가 7배 이상 커진 블록버스터였고, 감독과 제작진은 마크 맨시나의 스타일이 영화의 스케일이나 무게감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따라 창작 견해 상 마크 맨시나가 물러나고, 대신 맨시나와 작업을 해봤고 꾸준히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 영화에 참여한 트레버 라빈을 중심으로 스티븐 자브론스키나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 등 당시 짐머 사단의 신예들로 재편되어 락킹하고 일렉트릭 요소가 강해진, 전형적인 짐머레스크 스코어로 완성됐다. 하지만 전편만의 인장처럼 작용하던 레게 스타일이 거세된 채 과도한 스케일과 파워에 집중한 몰개성적인 액션 스코어링은 음악적 재미를 전혀 주지 못했다며 혹평의 융단폭격을 받았고,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더욱 강해지고 더욱 독해진 론 밸프의 액션 음악

론 밸프

이번 3편의 음악을 맡은 론 밸프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평가는 좋지 못했던 2편의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듯, 1편의 마크 맨시나가 작곡한 메인 테마와 스타일을 최대한 가져와 자신만의 액션 스코어로 재편했고, <터미네이터: 제네시스>나 <미션 임파서블: 풀아웃>의 좋은 전례를 따라 탁월한 액션 스코어를 들려준다. 멘토로 그 유명한 한스 짐머가 버티고 있고, 제임스 뉴톤 하워드나 클린트 만셀, 막스 리히터 등과도 공동 작업을 해봤으며, 리모트 콘트롤 소속으로 유명 프랜차이즈들과 거장들 작품을 경험하며 노련한 감각이 덧입혀진 론 밸프는 전형적이고, 동어반복적인 짐머레스크에서 발을 빼고, 기존의 테마가 가진 매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들을 들려준다.

<나쁜 녀석들>

<나쁜 녀석들 : 포에버>

따라 1편의 인장과도 같았던 레게 사운드의 메인 테마를 고스란히 가져오고, 1편 음악에 참여했던 닉 글래니 스미스를 모셔와 지휘를 맡기며 그 분위기를 살리되, 라틴 색채가 물씬 풍기는 퍼쿠션과 기타, 코러스를 대동해 2020년식 업데이트를 가한다. 아울러 <콜 오브 듀티: 모던 어페어2>나 <크라이시스2>, <어쌔신 크리드3> 등 다양한 게임들과 <레고 배트맨 무비>, <13시간>, <퍼시픽 림: 업라이징>, <제미니 맨> 등 다양한 액션영화에 참여했던 감각들을 총동원해 박진감 넘치며 호쾌한 풍취를 선사한다. 이런 지점들은 오리지널 작곡가인 마크 맨시나가 함께 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이내 날려버릴 정도다. 늙었음을 자각하는 캐릭터들의 푸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피디하고 짜릿한 론 밸프의 <나쁜 녀석들: 포에버>의 음악은 다음 편에서도 계속 이어질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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